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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유럽을 강타했다고?

글쓴이 : 소곤이 날짜 : 2011-06-15 (수) 05:21:52

90년대초 한 스포츠신문의 연예기자로 부서를 옮겼을 때 일본의 오리콘 차트에 대한 얘기를 처음 들었다. 미국에 빌보드가 있다면 일본엔 오리콘이 있었다. 음반 판매량의 랭킹을 매기는 차트로 상당한 권위와 신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방송국에서 만난 한 뮤지션이 일본의 오리콘 차트에 한국 가수가 오른다면 대단한 일이라고 하는 것을 고개 끄덕이며 듣기도 했다. 그런 한국의 연예산업이 오늘날 일본, 중국은 물론, 아시아와 중남미, 유럽, 미주로 뻗어나가는 것을 보노라면 가히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이 실감이 난다.

한류(韓流) 열풍이 분다 해도 우리와 문화와 정서가 비슷한 아시아 정도에서나 통할까 다른 대륙을 불가능할 것이라는 진단을 비웃듯 오늘날 한국 가수와 드라마에 출연한 연기자들이 국제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드라마와 음반은 기획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류 현상은 1차적으로 세계 곳곳에 흩어진 재외국민과 한민족 동포들의 모국 문화에 대한 향수가 발화(發火)의 역할을 했고 이들을 통한 주변 외국인들에 대한 2차적 확산, 3차적으로 외국인 스스로 한국의 가요와 드라마에 관심을 갖고 애정을 기울이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요즘 미주와 유럽에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는 10대 20대를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이 한국문화를 접하는 주요 경로 중 흥미로운 대목은 인지도가 높은 아시아의 문화로 일본을 선호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한류를 알게 된다는 점이다. 특히 미주 유럽에서 자리잡은 일본의 ‘망가(漫畵)’ 열풍이 한류 확산에도 긍정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

사실은 일본에 관심을 갖고 들어갔는데 일본속에 퍼진 한류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고 이후엔 직접 한국의 문화를 알기 위해 접속하는 방식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결국 일본이 한국을 알리는 매개(媒介)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투브를 비롯,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킹이 지구촌을 실시간으로 묶어 주고 자생적인 사이트를 만들어내며 한류 확산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류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분류하기엔 국지적이고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다. ‘한류’를 영어로 ‘Korean Wave’ 혹은 ‘Hallyu’ 라고 표기하지만 생경(生硬)함을 떨쳐내기 어렵다. 한류에 열광하는 외국인들은 냉정하게 볼 때 소수의 매니아 계층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며칠전 파리에서 SM타운 공연이 있었다. 슈퍼주니어 샤이니 소녀시대 f(x) 등 소속 아이들 그룹이 총출동하면서 프랑스는 물론,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등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소녀들이 열광하는 무대였다.

 

▲ 사진출처=SM 팬클럽

이를 놓고 한국의 매체들은 ‘한국의 K팝 유럽강타’라는 대문짝만한 보도로 전했다. 물론 자랑스러운 일이다. 우리의 대중문화에 대한 인지도가 언제 이렇게 높아졌는지 어리둥절할 정도다. 알고보니 프랑스는 한류의 진원지 역할을 하고 있단다. ‘망가’를 소재로 한 한국 드라마에 매료되고 화려한 군무와 패션이 어우러진 K팝에 빠지면서 팬들의 공연 청원운동까지 벌어졌던 곳이다.

국내 언론의 보도만 놓고 보면 이제 유럽은 K팝 열기로 가득하고 10대들은 누구나 한국 가수 한 두명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바야흐로 유럽에 한국인이 가면 K팝과 한국드라마 덕분에 덩달아 대접받고 어깨를 으쓱할만큼 자랑스러움이 들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우리 미디어의 관행을 잘 아는 필자로선 이같은 보도는 터무니없이 과장됐다고 믿는다. 동영상을 통해 본 공연장의 열기는 뜨거웠지만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매니아 입장에서 ‘아이돌’ 그룹이 한명도 아니고 단체로 몰려 왔는데 열기가 안넘친다면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유럽전역에서 몰렸다고 하지만 대중교통으로 이웃집 가듯 국경을 넘나드는 이 동네에선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니다.

더구나 이번 공연은 SM의 단독기획이 아니라 정부에서 한류와 K팝의 확산을 위해 정책적으로 밀어준 것이었다. 열기가 넘쳤다는 보도만 홍수일뿐 공연티켓 판매 등 수익금이 이들 스타들의 개런티와 대관료, 각종 홍보비 등을 얼마나 만회(挽回)했는지에 대한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애당초 수익금은 문제가 아닌 SM 소속가수들의 쇼케이스 공연이었던 셈이다.

물론 한류와 K팝의 시장을 키우기 위한 투자와 홍보로 본다면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문제는 과연 그만한 효과가 있었느냐는 점이다. 일각에선 한류로 포장됐을뿐 SM의 주식을 올리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다는 힐난(詰難)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지난해 SM은 동방신기 탈퇴와 해체 파문속에 노예계약 문제로 구설을 빚은 적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SM의 불공정전속계약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리자 전속계약기간을 기존의 10년에서 7년으로 수정하고 과다한 위약금 조항을 낮추기도 했다. 나이 스물 전후에 반짝하는 댄스가수들의 전속계약이 10년이라면 사실상의 종신계약이다. 계속 새로운 아이돌이 공급되는 상황에서 댄스가수로서의 가치가 없어지면 그것으로 끝이 아닌가. SM타운이 아니라 노예타운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MBC 일밤-뜨거운 형제들에 출연한 ‘비스트’의 이기광은 “난 연봉이 800만원이다. 아이돌 그만두고 힙합하겠다”고 농담성 멘트로 쓴웃음을 짓게 했다. 그가 정말 연봉 800만원짜리 가수라고 믿지 않지만 SM의 이수만 회장은 주식으로 1천억대 부자인 반면 간판 아이돌은 계약이라는 족쇄로 인기에 걸맞지 않는 돈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SM타운의 파리 공연 직후 프랑스의 권위있는 르몽드 지는 K팝 열풍의 이면을 조명하는 기사로 눈길을 끌었다. 르몽드는 “음악을 수출품으로 만든 제작사가 길러낸 소년·소녀가수들이 긍정적이며 역동적인 국가 이미지를 팔 수 있다고 여기는 한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이돌의 교육기간 중 성형수술이라는 극단적 수단도 동원된다”면서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관행을 언급하기도 했다.

르 몽드의 기사는 지극히 객관적인 것으로 비난도 찬사도 아니다. 그러나 긴장하시라. K팝이 소수 매니아에서 하나의 대중문화로 확산이 되고 한류열기의 가능성이 보인다면 르 몽드와 같은 매체들은 한국의 왜곡된 연예산업을 제대로 파헤치는 기사를 쓰게 될 것이다.


현 싯점에서 K팝이 J팝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한들 유럽과 미주에서 한류라는 말을 함부로 쓰는 것은 자아도취적이다. 오리콘과 같은 차트조차 변변히 없는 한국의 연예계 아닌가. 코리아의 국가 브랜드가 높아지고 K팝과 한류가 21세기의 문화상품으로 자리잡으려면 사육되듯 만들어지는 아이돌스타 중심의, 대형 연예기획사의 배만 불려주는 공급방식은 반드시 개선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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