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성. 2004년 아테네올림픽 결승에서 통쾌한 돌려차기한방으로 금메달을 차지한 태권도 영웅, 2008년엔 IOC 선수위원으로 당선되는 영광도 누렸다. 태권도로 석박사학위를 받고 동아대 교수로 재직중인 대표적인 스포츠 엘리트.
그런 그가 인생의 나락에 빠질 위기에 처했다. 국회의원 금배지 욕심이 禍根(화근)이다. 새누리당의 이미지를 쇄신할 젊은피로 공천을 받아 총선에 나가면서 그의 과거사가 조명되면서 급기야 치명적인 학문범죄의 전말이 드러날 판이다.
정치만 안했더라면 계속 숨길 수 있었을지 모른다. 본인에겐 후회막급이겠으나 좀더 공정한 세상을 위해선 다행스런 일이다. 바야흐로 문대성의 논문표절 논란은 漸入佳境(점입가경)이다. 표절을 넘어 대필논란으로 비화하고 있기때문이다. 아직은 의혹제기 수준이지만 베끼고 짜깁기한 것을 본인도 아니고 남이 했다면 최소한의 염치도 없는 일이다.
스포츠에서 ‘도’가 붙는 운동은 몇 개 되지 않는다. 태권도와 같은 스포츠는 페어플레이의 정신을 넘어 우리 민족의 얼이 담겨있기에 진정한 태권도인들은 도덕적 흠결을 찾기가 어렵다. 그런 운동을 평생 해온 스포츠맨이 일반인도 하기 힘든 치졸한 학문적 詐欺行脚(사기행각)을 벌였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다.
논문 표절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문대성은 학위는 물론, 대학교수와 국회의원, IOC 선수위원 등 그가 자랑스럽게 생각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시카고 트리뷴지는 지난 14일 “문 당선자의 논문 표절이 사실이라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직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IOC가 이번 사건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문 당선자가 학위논문 표절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번 4.11총선에서 당선됐다”고 전한 시카고 트리뷴은 “최근 박사 학위 논문 내용 중 90%가 표절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지난 2일 헝가리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팔 슈미트와 유사한 사례다. 문대성은 대학 교수라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IOC가 현재 팔 슈미트 전 대통령의 IOC위원직 유지 여부를 검토하는 만큼 문대성 역시 논문 표절 사실 여부에 따라 위원직을 박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IOC가 속임수를 쓰는 운동선수 출전을 금지하듯 IOC 구성원에 대해서도 같은 조치를 내려야 한다”면서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올림픽 구호를 ‘시투스(더 빨리), 알투스(더 높게), 포르티우스(더 강하게), 카피어스(copy-us, 베껴라)’로 바꿔야 할 것”이라며 비꼬았다.
뼈아픈 일침이 아닐 수 없다. “과도한 인용이지 표절은 아니다”라는 문대성의 항변은 참으로 옹색하다. 인용과 표절의 차이는 무엇일까. 인용은 인용문구 표시와 함께 出處(출처)를 확실히 밝히는 것이다. 또한 그 인용은 자신의 고유 연구결과를 보조적으로 돕는 제한적 수단일뿐 출처만 밝힌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른바 짜깁기 논문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대성의 석박사 논문과 다른 연구결과물은 하나같이 제목도 흡사하고 심지어 오타마저 똑같을만큼 많은 내용들이 판박이로 나온다. 그러면서 인용표시조차 하지 않았다니 표절이라는 표현도 아까울 정도이다.
지난 5일,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은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문대성 후보가 2007년 8월 국민대에서 받은 박사학위논문은 같은 해 2월 김 모 씨가 명지대에서 받은 박사학위논문을 상당부분 표절했다. 전체 논문에서 400행 이상의 문장이 동일하거나 유사하며 5곳의 오탈자조차 일치한다. 그러나 김 모 씨의 논문을 인용했다는 표시도 하지 않았고, 참고문헌에 소개조차 하지 않았다. 현재 교육과학기술부(약칭 교과부)의 학술논문 표절 기준에 따르면 인용에 대한 아무런 표시 없이 6개의 단어가 연속으로 나열되면 표절로 판정하고 있다. 교과부의 기준대로라면, 아무런 인용 표시 없이 6개의 단어가 아니라 수백 단어를 동시에 똑같이 쓰고 있는 문대성 후보의 논문은 명백히 표절이다.”
표절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3일 뉴스1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문대성 후보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그가 입고다니는 IOC 운동복과 운동화를 공개한 것이다. 그는 공천이후 선거직전까지 유세를 하면서 이 운동복을 하루도 입지 않는 날이 없다고 밝혔다.
뉴스1기자에게 “정치에 나서면서 혹시 잊어버릴지 모를 깨끗하고 투명한 정신적 각오를 다잡기 위해 입고 활동한다”며 올림픽마크가 새겨진 상의를 내보였다. 그는 “스포츠의 경우 정신적 어려움 보다는 육체적 피로함이 더 많으나 서로를 배려하고 인정하며 자기 잘못을 시인하는 정신을 가진데 비해 정치는 정신적 피로가 더 크다. 상대 후보의 비판과 비방보다는 구민, 지역, 부산 나아가 대한민국을 발전시킬 정책을 내세우면 좋겠다”고 말했다.
‘깨끗하고 투명한 정신적 각오’, ‘자기 잘못을 시인하는 정신’. 수십쪽의 논문을 그대로 베낀 후보의 입에서 나왔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사실 문대성 후보가 유세과정에서 IOC를 자신의 이미지를 홍보하는데 활용한 것도 규정 위반을 한 것이다. 그가 IOC의 관찰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이것 역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IOC의 오륜마크 등 로고와 심벌은 올림픽과 직접 관련된 행사 주체 혹은 공식 스폰서외에는 활용할 수 없다. IOC와 무관한 이들이 오륜마크를 활용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다. 물론 IOC선수위원이 오륜마크가 있는 운동복과 유니폼,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것을 국회의원 선거 유세과정에서 활용하고 언론에 알렸다면 이는 불법적인 마케팅에 활용한 것이 된다. IOC 선수위원이라는 우월한 포지션을 이용하고 싶은 충동은 이해하지만 학자로서의 양심에 위배되는 중대한 흠결을 가진 후보의 행동이라는 점에서 IOC가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또 한가지 문제는 YTN 돌발영상에서 드러났듯 유인촌 전 문화부장관이 ‘MB가 IOC 선수위원을 만들어줬다’고 아부한 대목이다. 이는 IOC 선수위원 선거에 국가가 개입하는 불법선거운동을 벌였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다. 이제야 우리는 세계 각국 선수중 별로 지명도가 없던 문대성후보가 IOC선수위원 선거에 나가 어떻게 최다득표를 할 수 있었는지 미스테리를 풀 수 있게 됐다.
알려지기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문대성 선수위원 만들기’라는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총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시 유인촌 장관이 “내가 문대성이 IOC 위원 만들어줬어”하고 생색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MB가 청와대를 방문한 문대성에게 “그래 아주 축하한다”며 악수하는 뒤꼭지에 대고 “대통령께서 만들어주신거야!”하고 큰 소리로 말한 것은 그 와중에도 대통령에게 아부 떠는 딸랑이 장관인 탓일게다.
유인촌의 아첨에서 확인하듯 문대성이 아침부터 밤까지 선수촌에서 선수들을 찾아다니며 발로 뛰는 선거운동을 했다지만 영어권도 아닌 그가 무슨 재주로 단기간에 그렇게 많은 외국 선수들의 환심을 살 수 있겠는가. 조직적인 선거캠페인을 돕는 훈련된 전문가들 아래 모종의 선물공세 등 특별한 비방(?)이 있었을 것이라는 심증이 제기된다.
안그래도 문대성은 IOC 선수위원 유세당시 IOC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선수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 등의 IOC가 엄금한 행동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IOC가 엄격하다면 잠복한 문제들이 새롭게 폭로될 수도 있다.
결국 논문표절 사태는 한국 정부의 IOC선수위원 만들기 프로젝트까지 거론 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무엇보다 페어플레이가 부각되야 할 IOC의 정신을 훼손했다는 점에서 국가적 망신을 넘어 또다른 불이익이 초래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일보 주필이라는 분은 18일 문대성 후보와 제수씨성폭행설로 포항시민들을 부끄럽게 한 김형태 후보를 두둔하는 칼럼을 게재해 이중 망신을 자초하고 있다. 체육인인데 논문표절쯤 뭐가 문제냐라고 하는가하면 10여년전 일어난 사건을 왜 끄집어내냐는 것이다.
유수한 신문의 원로주필이 썼다고 믿기엔 너무나 황당한 논리여서 고도의 풍자칼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나라 체육인들을 한마디로 머리에 들은 게 없다고 노골적으로 貶下(폄하)하는게 아니고 뭐란 말인가.
그것이 풍자칼럼이 아니라면 문대성부터 머리에 띠 두르고 이 신문사 문앞에서 시위를 할 일이다. “나 때문에 모든 체육인들을 능멸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