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다큐멘타리를 통해서 접했을 뿐인 전쟁과 학살의 공포를 뚜얼슬랭은 너무나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감금되고, 고문당하고, 학살당한 현장을 촬영한 수많은 사진과 그림, 너무나 많아서 거의 무감각하게 느껴질 정도인 희생자의 유골, 각종 고문 도구들은 아프도록 가슴을 짓눌렀다.
잠시 건물밖으로 나와 묵상(黙想)에 잠겼다.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인증사진까지 하나 찍었지만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기분을 애써 잡아가며 다시 둘러보기를 계속했다.
아까부터 관광객 포즈로 이 곳을 둘러보고 있자니 동행한 캄보디아인 친구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침묵을 깨고 그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한마디 건넸다.
“과거에 우리나라도 일본에게 지배당하며 수많은 애국자들이 학살과 고문에 죽어갔어.”
눈앞의 유골들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친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렇지, 한국인은 일본인이 죽였지만 우리는 우리가 우리를 죽였어.”
“우리가 우리를 죽였어...”
가슴이 시려 왔다.
비슷한 과거사의 아픔을 이겨낸 나라의 사람들끼리의 공감대는 있었다. 하지만 그 아픔의 끝이 향하는 대상은 사뭇 달랐다.
대상이 다르다면 그 증오심의 의미도 다를 것이다. 동족이 동족을 고문하고 죽인 참극의 한 가운데 선 그가 나와는 달리 혼란스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전쟁에서 일어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을 얘기하려다 친구의 아픔만 더 자극할 것 같아 말을 삼켰다.
뚜얼슬랭을 주의 깊게 둘러본 느낌은 정말 감당하기 힘든 수위의 전시물들이라는 것이다. 관람객들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이런 전시물을 왜 이렇게 노골적(?)으로 공개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참담한 역사의 아픔이 외화벌이의 장으로 전락해 버린듯한 그들의 현실이 안쓰럽기도 하다.
허나 이 곳 박물관이 근본적으로 제시하는 진실성과 무게감은 오는 이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질 것이다. 인류가 이런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 한다면 아무리 지우고 싶은 기억이라도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우리 민족이 그랬던 것처럼 세월이 흐르면 그들도 과거의 아픔이 조금씩 씻겨나갈 것이다. 그러나 당장의 생계를 위해 물불 안가리고 살아보려 안간힘 쓰는 그들을 보노라면 스스로를 치유하기에 아직은 그 아픔이 많이 무거운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