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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요동요서 위치 소고(5)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0-09-08 (화) 06:22:08

遼水의 발원지 遼山山西省

 

 

󰡔元和郡縣圖志(원화군현도지)󰡕는 다음과 같은 진실을 기록해주고 있다.

 

요산현은 개원시기에 2,190호였다. ... 본래 한나라 때 열씨현 땅이었고 후한 때에는 여기에 양아현을 두고 상당군에 속하게 하였다. ()나라 때에는 요양현(轑陽縣)으로 고치고 낙평군에 소속시켰다. 후위 영제 때 요양(遼陽)으로 고쳤다. 수나라 개황 16년에 요산현으로 고쳤는데 현의 서북에 요산(遼山)이 있어 [요산현]이라 이름 지은 것이다.” 李吉甫撰, 󰡔元和郡縣圖志󰡕 [], 中國古代地理總志叢刊(北京: 中華書局, 2005), pp.382-383, “遼山縣, 開元戶二千一百九十. ... 本漢涅氏縣地, 後漢於此置陽阿縣, 屬上黨郡. 晉改爲轑陽縣, 屬樂平郡. 後魏明帝改爲遼陽. 隋開皇十六年改置遼山縣, 因縣西北遼山爲名.”

 

라고 적고 있다. 고구려의 영토 안에 遼山이 있어 이 遼山 때문에 그 지역을 요산현이라 하였는데 수나라 때였다는 것이다.

 

요산현(遼山縣)에 대한 󰡔中國古今地名大辭典(중국고금지명대사전)󰡕의 기록은 요산현이 오늘날의 산서성(山西省)에 있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다.

 

요산현은 전국시 조()의 요양읍이다. 후한말에 요하현(轑河縣)을 설치하였다. ()시대에는 요양(轑陽)이라 불렀다. 후위 때는 생략하였다. 즉시 다시 설치해서 요양(遼陽)이라 하였다. 북제에서는 생략했다. 고성이 오늘날의 산서성 요현 북쪽 3리에 있다. 수나라 시기에 옮겨 설치하였다. 명대에는 요주에 들어갔다. 즉 오늘날의 산서성 요현치이다.” 臧勵龢等, 󰡔中國古今地名大辭典󰡕 (臺灣: 尙務印書館, 1982), 2, p.1245, “遼山縣: 戰國趙轑陽邑. 後漢末置轑河縣. 晉曰轑陽. 後魏省. 曰遼陽. 北齊省. 故城在今山西遼縣治

 

 

遼州에 대한 󰡔中國古今地名大辭典(중국고금지명대사전)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요주: 수나라 때 설치하였다. 낙평군을 다스렸다. 즉 오늘날의 산서성 석양현이다. 즉시 폐지했다. 당나라 때 다시 설치하였다. 요산으로 옮겨 기주(箕州)라고 고쳐 불렀다. 또 의주(儀州)라고 고쳐 불렀다. 다시 또 고쳐서 낙평군이라 불렀다. 즉시 다시 요주라 불렀다. 송대에는 요주낙평군이라 불렀다. 금나라 시기에는 남요주라 불렀다. 즉시 남()자를 없앴다. 원대에도 또한 요주라고 불렀다.” 臧勵龢等, 앞의책, 3, p.1245, “遼州: 隋置. 治樂平. 卽今山西昔陽縣. 尋廢. 唐復置. 移治遼山. 改曰箕州. 又改曰儀州. 又改曰樂平郡. 尋復曰遼州. 宋曰遼州樂平郡. 金曰南遼州. 尋去南字. 元亦曰遼州.”

 

 

요산(遼山)이 요주에 있고 遼山을 기주, 의주, 석양현, 낙평군, 요양(遼陽)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렸으며 오늘날의 산서성에 위치한다는 중요한 내용인 것이다.

 

압록수(鴨綠水)가 발원(發源)하는 󰡔신당서󰡕에서의 말갈백산(靺鞨白山)이자 연경산(燕京山)이며 관잠산(管涔山)인 기록을 󰡔중국고금지명대사전󰡕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관잠산: 산서성 영무현 서남쪽에 있다. 매우 넓게 자리잡고 있어 정락(靜樂), 가람(岢嵐), 삭현(朔縣)의 경계에 걸쳐 있고 둘레가 수 백리이다. 󰡔산해경󰡕 「북차이경의 첫머리이다. 󰡔회남자󰡕 「지형훈에 의하면 분수(汾水)는 연경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수경주󰡕에 의하면 분수(汾水)는 연경산에서 나온다. 연경산은 관잠산의 다른 이름이다.

󰡔청일통지󰡕에 이르길 여러 서()에서 모두 ()’이라 썼다고 하였다. 오직 󰡔태평환우기󰡕에서만 ()’이라 썼다. 그 산에 관초가 많기 때문이라 한다.” 臧勵龢等, 앞의책, 4, p.116, “管涔山: 在山西寧武縣西南. 盤踞甚廣. 跨靜樂, 岢嵐, 朔縣界. 周廻數百里. 󰡔山海經󰡕北次二經之首. 󰡔淮南子󰡕 「墬形訓汾出燕京. 󰡔水經注󰡕汾水出燕京山. 亦管涔之異名. 󰡔淸一統志󰡕謂諸書皆作管. 󰡔寰宇記󰡕作菅. 云其山多菅草故.”

 

산서성(山西省)에 있는 오늘날의 분수(汾水)가 연경산(燕京山)인 관잠산(管涔山)에서 발원한다 하였으니 󰡔新唐書(신당서)󰡕가 언급한 鴨綠水(馬訾水)는 결국 汾水로 고구려의 遼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요수인 압록수가 산서성 서북쪽에서 남쪽으로 계속 내려오다가 곡옥에서 서쪽 방향의 황하강(黃河江)으로 물이 꺾이기 때문에 서압록(西鴨綠)이라 부른 것으로 보인다[그림 4 참조]. 요서(遼西)라고 하는 산서성 남서부의 지역이 바로 압록수의 물이 황하를 향해 서쪽으로 굴곡하는 일대이기 때문이다.

鴨綠水(마자수, 대요수, 분수)靺鞨白山(연경산, 관잠산, 현재의 管濟山)에서 발원하여 평요 바로 밑 개휴(介休)에서 小遼水와 만나 으로 흐르다 안시성(安市城)과 환도성(丸都城)이 있던 화염산(火焰山)을 지나 하진시(河津市)를 거쳐 섬서성과 산서성 사이의 黃河로 들어간다. 小遼水遼山(기산, 현재의 關帝山)에서 발원한다. 遼水는 황하를 향해 쪽에서 西쪽으로 들어가는 하천이다. 遼水黃河로 들어가지 黃海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黃海로 들어가는 물은 遼水 鴨綠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림4 요수, 압록수(강), 마자수, 분수는 모두 같은 하천.jpg

<그림 4>요수, 압록수(), 마자수, 분수는 모두 같은 하천
출처: 김태영, 󰡔동이배달한민족사󰡕(서울: 소호출판사, 2013), p.378.

 

 遼西에 쌓은 12

 

고구려 제6대 태조 궁 무열제 융무(隆武) 3년 봄 2월에 遼西10개의 성을 쌓아 나라 군사를 방비하였다라고朝代記(조대기)』『朝鮮王朝實錄』「世祖實錄7에 의하면, 세조3526일 무자 3번째 기사로, 팔도 관찰사에게 명하여 개인이 소유하지도 읽지도 못하게 했던 서적들 중의 하나가 󰡔朝代記󰡕이다.

에 기록되어 있음을 󰡔太白逸史(태백일사)󰡕 李陌, 󰡔太白逸史󰡕(서울: 弘益人間財團, 2018).

가 밝히고 있다. 그 성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안시(安市)는 개평 동쪽 70리에, 석성(石城)은 건안(建安)의 서쪽 50리에, 建安은 안시의 남쪽 70리에, 건흥(建興)은 난하(灤河)의 서쪽에, 遼東은 창려(昌黎)의 남쪽에, 풍성(豊城)은 안시의 서북 100리에, 한성(韓城)은 풍성의 남쪽 200리에, 옥전보(玉田堡)는 한성의 서남쪽 50리에, 택성(澤城)은 요택의 서남쪽 50리에, 요택(遼澤)은 황하의 북안(北岸) 왼쪽에 있었다. 5년 봄 정월에 또 백암성(白巖城)과 용도성(悀道城)을 쌓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요서인 산서성 남서부 안시(安市)를 기준으로 이들 성()의 위치를 󰡔新唐書(신당서)󰡕󰡔漢書(한서)󰡕 「地理志(지리지)에 근거하여 표시하면 <그림 5>와 같다.

당시에 쌓았다는 이들 들은 산서성 최남단 서남부 황하를 따라 축성되어 있다. 양만춘 대장군과 당 이세민과의 전쟁이 있었던 안시성이 이때 쌓아진 것이며 당시 遼西인 산서성의 남서부에 있었다는 중요한 기록이다. <그림 5>에서 보는바와 같이 󰡔新唐書(신당서)󰡕가 서술한 鴨綠水의 흐름으로 볼 때 안시성은 여량산맥(呂梁山脈)의 일부인 화염산(火焰山)의 말머리 부분에 있었고 환도성은 같은 화염산 말꼬리 부분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환도산 臧勵龢等, 󰡔中國古今地名大辭典󰡕 (臺灣: 尙務印書館, 1982), 1, p.763, “[馬首山] 在山西新絳縣西四十里, 俗名馬頭山. [絳州志]在傳趙盾田於首山, 卽此, 一名火焰山.”

이자 오늘날의 화염산을 馬首山馬尾山으로 불려지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황하강을 따라 축성한 이들 들은 당시 고구려가 섬서성과 하남성에 있던 , , 나라와 黃河를 국경으로 서로 대치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림5 요서에 쌓은 12성의 위치.jpg

<그림 5> 요서에 쌓은 12성의 위치
출처: 김태영,󰡔동이배달한민족사󰡕(서울: 소호출판사, 2019), P.329.

 遼西山西省 남서부

 

󰡔後漢書(후한서)󰡕가 기록한 幽州에는 遼西郡을 포함하여 9개의 이 있다. 范曄, 󰡔後漢書󰡕 33, 23, “幽州: 涿郡, 廣陽郡, 代郡, 上谷郡, 漁陽郡, 右北平郡, 遼西郡, 遼東郡, 玄菟郡, 樂浪郡, 遼東屬國.”

󰡔漢書(한서)󰡕「地理志(지리지)의 요서군(遼西郡)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요서군은 진()나라가 설치하였다. 작은 물길이 48개나 있는데 합하면 346리를 흐른다. 유주에 속해 있었다. 요서군은 72654가구, 인구는 352325명이다. 14개의 현()이 있다. 저려현, 해양현, 신안평현, 유성현, 영지현, 비여현, 빈종현, 교려현, 양락현, 호소현, 도하현, 문성현, 임유현, 누현이다. ...유성현은 마수산(馬首山)의 서남쪽에 있다. 삼류수가 북쪽에서 바다(황하)로 들어간다. 서부도위가 다스렸다. 영지현은 고죽성(孤竹城)이 있다. 왕망 때는 영씨정이라 했다. 응소는 옛 백이국(伯夷國)이고, 지금의 고죽성이다라고 했다. 비여현은 현수(玄水)가 동쪽에서 유수(濡水)로 들어간다. 유수는 남쪽으로 해양(海陽)으로 들어간다. 또 노수(盧水)가 있어 남쪽으로 현수(玄水)로 들어간다. 왕망 때는 비이(肥而)라고 했다. 빈종현은 왕망 때는 면무(勉武)라고 했다. 교려현은 유수(渝水)가 첫 번째로 새외를 받아 남쪽으로 바다(황하)로 들어간다. 동부도위가 다스렸다. 왕망 때는 금로(禽虜)라고 했다. 응소는 지금의 창려(昌黎)이다.’라고 했다. ... 임유현은 유수가 첫 번째로 백낭수(白狼水)를 받아 동쪽으로 새외로 들어간다. 또 후수(侯水)가 북쪽의 유수로 들어간다. 왕망 때는 빙덕(馮德)이라 했다. ...” 班固, 漢書』「地理志28, 地理志第8, “遼西郡 秦置. 有小水四 十八, 竝行三千四十六理. 屬幽州. 戶七萬二千六百五十四, 口三十五萬二千三百二十五. 縣十四: 且慮, 有高廟 . 莽曰鉏慮. 海陽, 龍鮮水東入封大水. 封大水, 緩虛水皆入海. 有鹽官. 新安平. 夷水東入塞外. 柳城, 馬首山在西南. 參柳水北入海. 西部都尉治. 令支, 有孤竹城. 莽曰令氏亭. 肥如, 玄水東入濡水.. 濡水南入海陽. 又有盧水, 南入玄. 莽曰 肥而. 賓從, 莽曰勉武. 交黎, 渝水首受塞外, 南入海. 東部都尉治. 莽曰禽虜. 陽樂, 狐蘇, 唐就水至從河入海. 從河, 莽曰河福. 文成, 莽曰言虜. 臨渝, 渝水首受白狼, 東入塞外. 又有侯水, 北入渝. 莽曰馮德. .下官水南入海. 又有揭石水, 賓水,皆南入官. 莽曰選武.”

 

 

빈종현(賓從縣)나라 때 설치한 곳으로 지금의 경조(京兆) 통현(通縣) 동쪽이며, 통현은 경조윤(京兆尹)에 속했는데 오늘날의 섬서성(陝西省) 장안현(長安縣) 서북 지역이다. 臧勵龢等. 󰡔中國古今地名大辭典󰡕 (臺灣: 尙務印書館, 1982), 2, p.1129, “[賓從縣]: 唐置, 故治在今京兆通縣東.”; 4-1, pp.856-857. “[通縣] 屬京兆尹”; 3, p.424. “[京兆尹]漢置, 爲三輔之一, 今陝西長安以東至華縣之地. 三輔決錄注, 大也, 天子曰兆民.’ 故首都曰京兆. 猶之京師也. 三國魏爲京兆郡. 故治在今陝西長安縣西北. 隋從今長安縣治. 唐改曰京兆付. 金爲京兆付路. 元初亦曰京兆付. 改爲安西路. 又改爲奉元路. 明改曰西安付. 民國廢, 民國置. 見京兆地方條.”

라 하여 황하를 경계로 산서성이 근접하는 섬서성 지역을 요서(遼西)라고 했었다는 기록이다. 유성현(柳城縣)은 마수산의 서남쪽에 있다고 하였다. 마수산(馬首山)은 앞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안시성과 환도성이 함께 있던 지금의 화염산(火焰山)으로 마수산이라 적은 것은 안시성이 있었던 말머리 부분의 산이란 뜻이다. 따라서 마수산의 서남쪽이라면 유성현은 섬서성에 위치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중국역사지명대사전󰡕유성()은 일명 사향현(思鄕縣)이며 오늘날의 섬서성 염전현(鹽田縣) 동남이라고 적고 있다.” 魏嵩山 主編, 󰡔中國歷史地名大辭典󰡕 (廣州: 廣東敎育出版社, 1995), p.750. “[柳城] 一名思鄕城, 在今陝西鹽田縣東南

<그림 6>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유성현은 섬서성에 있는 지명으로 산서성에 위치한 마수산의 서남쪽 방향이며 이곳 섬서성 동북지역을 요서라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문성현(文成縣)이란 지명은 없고 대신 문성책(文成柵)이란 지명이 나오는데 하남성 수평현 서남 50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臧勵龢等. 앞의책, 1, p.152,“[文成柵]: 在河南遂平縣西南五十里. 唐李愬討淮西, 降其將吳秀琳於文成柵, 卽其地置行吳房縣. 後還故治.”; [遂平縣]: “明淸皆屬河南汝寧府.” p.1065.;[汝寧府]: “民國廢府,改縣爲汝南.” p.323.;[汝南縣]: “在今河南寶豐縣北二十里.”P.323.;[寶豐縣]: “見寶豐鎭條.”p.1365.; [寶豐鎭]:“在寧夏平羅縣東北. 濱臨黃河. 淸置寶豐縣. 尋幷入平羅.” P.1364.

문성책이 있는 곳은 보풍진(寶豐鎭)으로 결국 황하강(黃河江) 지역의 하남성(河南省)을 뜻하고 있다. 임유현(臨渝縣)은 수()나라 때 노룡현(盧龍縣)이였다. 臧勵龢等. 앞의책, 3, p.1293, [臨楡縣]: “漢陽樂海陽二縣地. 隋盧龍縣地.”;[臨渝縣]: “漢置, 亦作臨楡, 後漢因之.”

라고 적고 있다.

이들을 종합하면, 요서군(遼西郡)에 나온 지명들은 산서성(山西省) 남서부, 하남성(河南省) 서북부, 그리고 섬서성(陝西省) 동북부에 있는 지명들이다. 영지현(令支縣)에 고죽성(孤竹城)은 앞에서 충분히 밝힌 내용이다. 이렇게 유주(幽州)에 속했던 요서군(遼西郡) 지역은 황하(黃河)를 중심으로 섬서(陝西), 산서(山西), 하남성(河南省)의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림6  유성현(柳城縣)은 섬서성 염전현(鹽田縣) 동남.jpg

<그림 6> 유성현(柳城縣)은 섬서성 염전현(鹽田縣) 동남
타원형으로 표시된 지역으로 섬서성 동북부, 하남성 서북부, 산서성 남서부 일대를 요서라 하였다.

 

 


그림7 幽州에 있는 요서, 고죽성, 수양산, 화산의 위치.jpg

<그림 7> 幽州에 있는 요서, 고죽성, 수양산, 화산의 위치
  출처:󰡔한서󰡕「지리지,󰡔백도백과󰡕,󰡔중국고금지명대사전󰡕,󰡔중국역사지명대사전󰡕,󰡔수경주󰡕,󰡔신당서󰡕,󰡔여씨춘추󰡕「유시람등에 근거하여 작성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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