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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요동요서 위치 소고(4)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0-08-15 (토) 04:55:23

고죽국은 고구려의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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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裵矩: 547-627) (581-618) 나라 煬帝 밑에서 황문시랑(黃門侍郞)이란 벼슬을 한 사람.는 하동군(河東郡) 문희현(聞喜縣) 사람으로 수양제에게 고구려의 정벌을 강하게 주장했던 사람이였다. 하동 문희현이 출신지라 산서성에 대한 역사를 잘 알고 있었기에 하동인 산서성(山西省)에 있던 高句麗의 영토가 원래는 백이숙제의 나라인 고죽국(孤竹國)이라고 밝힌 것으로 보인다. 󰡔隋書(수서)󰡕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배구가 앞서 예를 들어 말하기를, 고구려는 본시 고죽국인데 나라가 여기에 기자(箕子)를 봉()하였고 한()에 이르러 3군으로 나누었으며 진()대에 요동(遼東)을 통솔하였다.” 魏徵等, 󰡔隋書󰡕 67, 列傳 32[裵矩]: “矩因奏狀曰: []麗之地, 本孤竹國也. 周代以之封于箕子, 漢世分爲三郡, 晉氏亦統遼東.”

라고 양제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의 영토가 전에는 고죽국이였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이 사실을 󰡔舊唐書(구당서)󰡕 劉呴等, 󰡔舊唐書󰡕 63, 列傳 13[裵矩]: “矩因奏曰: []麗之地, 本孤竹國也, 周代以之封箕子, 漢時分爲三郡, 晉氏亦統遼東.”

󰡔新唐書(신당서)󰡕 歐陽修等, 󰡔新唐書󰡕 100, 列傳 25[裵矩]: “矩因秦言: []麗本孤竹國, 周以封箕子, 漢分三郡, 今乃不臣, 先帝疾之, 欲討久矣.”

에도 똑같이 기록하고 있다.

 

또한 고구려의 영토가 된 고죽국에 주나라 때는 기자(箕子)를 봉하였다는 흥미로운 기록이다. 이 내용을 뒷받침하는 󰡔明史(명사)󰡕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조선(朝鮮)은 기자(箕子)에게 봉()하여 준 나라이다. ()나라 이전에는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일찍이 연()나라 사람 위만에게 점거되어 있었으나, 한무제가 이를 평정하고 진번, 임둔, 낙랑, 현토의 사군을 설치하였다. ()나라 말에 부여(扶餘)사람 고씨(高氏)가 그 땅을 차지하여 국호를 고려(高麗)로 고쳤다. 혹은 고구려(高句麗)라고도 한다. 평양(平壤)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곧 낙랑(樂浪)의 땅이였다. 그 뒤, ()나라에 격파되어 동쪽으로 옮겨 갔다. 후당(後唐) 때 왕건(王建)이 고씨를 대신하여, 신라, 백제의 땅을 겸병하고 송악(松岳)으로 옮겨 동경(東京)이라 불렀고, 평양(平壤)은 서경(西京)이라 하였다. 그 나라는 북으로 거란(契丹)과 인접하였고, 서쪽에는 여직(女直), 남쪽에는 일본이 있었다. ()의 지원(至元) 연간(1335-1340)에 서경(西京)(平壤)이 내속(內屬)되자 동녕로총관부(東寧路總管府)를 설치하고 자령(慈嶺) 끝으로 경계를 삼았다.” 張延玉等, 󰡔明史󰡕 320, [朝鮮]: “朝鮮, 箕子所封國也. 漢以前曰朝鮮. 始爲燕人衛滿所據, 漢武帝平之, 置眞番.臨屯.樂浪.玄菟四郡. 漢末,有扶餘人高氏據其地, 改國號曰高麗, 又高句麗, 居平壤, 卽樂浪也. , 爲唐所破, 東徙. 後唐時, 王建代高氏, 兼倂新羅.百濟地, 徙居松岳, 曰東京, 而以平壤爲西京. 其國北鄰契丹, 西則女直, 南曰日本. 元至元中, 西京內屬, 置東寧路總管府, 盡慈嶺爲界.”

 

 

라고 하여 고죽국(孤竹國)이 있었던 산서성(山西省)에 주나라가 기자(箕子)를 봉하였고 고구려가 그 땅을 영토로 하였으며, 고구려가 망한 후에는 고려를 세운 왕건(王建)이 그 땅을 다시 차지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나라에 격파되어 동쪽으로 옮겨 갔다. 후당(後唐) 때 왕건이 고씨(高氏)를 대신하여 신라, 백제의 땅을 겸병하고 송악(松岳)으로 옮겨 동경(東京)이라 불렀고, 평양(平壤)은 서경(西京)이라 하였다.”는 것은 고구려가 668년 나당(羅唐) 연합군에게 망할 때까지 고구려는 이곳 산서성을 영토로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고구려의 평양성(平壤城)이 고려의 서경(西京)이였다는 중요한 기록인 것이다. 한 가지 차이점으로, 󰡔隋書(수서)󰡕는 삼군(三郡)을 설치하였다고 했는데 󰡔明史(명사)󰡕는 사군(四郡)을 설치했다는 부분이다. 본고에서는 이점은 다루지 않으려한다.

 

 

 

II. 고구려의 遼水

1. 遼水가 요동과 요서를 나눔

 

황하(黃河)라는 하천을 기준하여 황하의 동쪽이라는 뜻으로 산서성을 하동(河東)이라 불렸던 것처럼, 요수(遼水)라는 하천으로 인하여 요동(遼東)과 요서(遼西)란 고유명사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은 동쪽이고 서(西)는 서쪽이니 요동(遼東)이란 ()가 있는 동쪽혹은 ()의 동쪽이란 뜻이고, 요서(遼西)()가 있는 서쪽혹은 ()의 서쪽이 되겠다. 그렇다면 라는 글자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알면 요동과 요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설문해자󰡕에서 허신은 遼 許愼, 󰡔說文解字󰡕, “遼遠也.小雅.山川悠遠.維其勞矣.箋云.其道里長遠.邦域又勞勞廣闊.勞者遼之叚借也.从辵.尞聲.洛蕭切.二部.”

 

멀다는 뜻으로 풀이하였다.

한자는 뜻글자이기 때문에 각 글자마다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큰 샘들이 있는 땅이란 의미를 갖는 글자다. 김태영, 󰡔한자는 동이배달한민족의 글자다󰡕(경기도: 세계출판사, 2016), p.142. “(,): = (: 달리다) + (: 크다) + (대자 밑 양쪽에 붙은 두 획) + (: , 샘물이 솟는 수원) = (큰 샘 즉 水源들을 찾아 달려간 곳으로 큰 샘들이 있는 땅. 산서성과 섬서성의 경계를 가르는 경도 110도의 황하 동쪽을 뜻함) <옥편상의 정의>: ()+x(). ‘x는 횃불을 본 뜬 것. 옛날에, 횃불을 켜서 아득히 먼 하늘에 제사지냈음. 파생하여, ‘아득하다, 멀다의 뜻을 나타냄.

우선 적절한 획을 정확하게 표시하지 못한 점을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클대()자의 양쪽에 표시한 두 획은 복수를 나타낸다는 뜻이다. 하나의 큰 샘이 아닌 여러 개의 큰 샘들을 의미한다. 자는 우리 동이배달한민족사(東夷倍達韓民族史)에서 반드시 정확하게 알아야 할 글자이다. 우주천문사상으로 본 그 뜻은 큰 샘들 즉 물이 나오는 수원들을 찾아 달려간 곳으로 땅 이름이란 의미이다. 다시 쉽게 풀어 설명하면, ‘큰 샘들이 있는 땅이란 의미다. 샘이란 물 즉 수원(水源)이 땅에서 솟아나야 한다. 저수지처럼 빗물을 저장한 것을 샘이라 하지 않는다.

샘이란 땅에서 솟아나는 물이다. 말하자면 한곳에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 흘러가는 물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유주(幽州)에 있는 7개의 군() 가운데 상곡군(上谷郡)을 제외한 6속에서, 요서군(遼西郡)에만 48개의 작은 물이 있어 함께 3,046班固,漢書』「地理志28, 地理志 第8 , “遼西郡 秦置. 有小水四 十八, 竝行三千四十六理.”

를 흐르고, 요동군(遼東郡)에는 대요수(大遼水)1,250班固, 앞의책, “大遼水出塞外, 南至安市入海, 行千二百五十里.”를 흐르며, 현토군(玄菟郡)에는 마자수(馬訾水)2,100班固, 앞의책, “馬訾水西北入鹽難水, 西南至西安平入海, 過郡二, 行二千一百里.”

흘러가고, 낙랑군(樂浪郡)에는 열수(列水)820班固, 앞의책, “分黎山, 列水所出, 西至黏蟬入海, 行八百二十里.”

, 우북평군(右北平郡)에는 경수(浭水)650班固, 앞의책,地理志28, 地理志 第8 , “浭水西至雍奴入海, 過郡二, 行六百五十里.”

, 어양군(漁陽郡)에는 고수(沽水)750班固, 앞의책, “沽水出塞外, 東南至泉州入海, 行七百五十里.”를 흘러, 이물을 모두 합치면 8,616리를 흐르는 엄청난 샘물과 같은 것으로, 라는 글자의 뜻과 일맥상통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 물이 모두 산서성(山西省)에 위치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산서성이 라는 글자를 지니게 된 이유로 여겨진다.

             

고구려는 사방 약 2천리이다.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고, 요수(遼水)가 그 곳에서 흘러나온다. 그 나라의 왕도(王都)는 환도산(丸都山)의 꼬리부분에 있다.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고 넓은 들판이 없어서 백성들은 산골짜기에 의지하여 살고 시냇물을 식수로 한다.“ 姚思廉, 󰡔梁書󰡕 54, 高句麗句驢地方可二千里, 中有遼山, 遼水所出. 其王都於丸都山下. 多大山深谷 無原澤百姓依之人居, 食澗水.”

 南史(남사)에도 고구려에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遼水)가 흘러나오고 당시의 도읍지는 환도성(丸都城)이라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에 있다. 그 선조에 대한 사적은 󰡔北史(북사)󰡕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국토는 사방 약 2천리이다. 나라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遼水)가 그 산에서 흘러나온다. (() 시대에는 남으로 조선(朝鮮), 예맥, 동으로 옥저, 북으로 부여와 인접하였다. 그 나라의 왕도(王都)는 환도산(丸都山) 꼬리부분에 있다. 땅은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고 넓은 들판이 없어 백성들은 산골짜기에 의지하여 살면서 시냇물을 식수로 한다.“ 李延壽, 󰡔南史󰡕 79, 列傳69, “高句麗在遼東之東千里 其先所出事詳北史. 地方可二千里. 中有遼山, 遼水所出. .魏世南與朝鮮獩貊 東與沃沮北與夫餘接. 其王都於丸都山下 地多大山深谷 無原澤百姓依之人居, 食澗水.”라고 알려주고 있다.

 

양서남사의 사서(史書) 가운데 왕도는 환도산 꼬리부분에 있다.’라고 해석한 필자의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원문은 其王都於丸都山下라 되어 있다. 사람들은 ()’아래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사서의 해석에서는 아래라고 해석하면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고구려의 환도성은 안시성과 함께 산서성 남부에 위치한 환도산(丸都山)

<臧勵龢等, 󰡔中國古今地名大辭典󰡕 (臺灣: 尙務印書館, 1982), 3, p.51. “[丸都] 高句麗故都. [通典]城在丸都山下沸流水之東

臧勵龢等, 앞의책, 1, p.763, “[馬首山] 在山西新絳縣西四十里, 俗名馬頭山. [絳州志]在傳趙盾田於首山, 卽此, 一名火焰山.”

󰡔中國古代地名大詞典󰡕, “馬首山: 在山西新絳縣西北四十里, 俗名馬頭山. [[]州志]在傳趙盾田于首山, 卽此, 一名火焰山.”

歐陽修等, 󰡔新唐書󰡕, “大遼出靺鞨西南山, 南歷安市城, ... 有馬訾水出靺鞨之白山, 色若鴨頭, 號鴨綠水, 曆國內城西, 與鹽難水合, 又南至安市, 入於海.” <그림 3>에서 밝힌 것처럼 대요수가 말갈의 서남쪽 산에서 흘러나와 마자수와 합류하여 남으로 안시성을 거쳐 황하로 들어간다.’ 하였다. 따라서 안시성의 위치는 지금의 화염산으로 비정되므로 환도산이 곧 화염산임을 알 수 있다.>에 있었는데, 이 환도산은 말처럼 생겨 말머리 부분을 마수산(馬首山)이라고 부르고, 말꼬리 부분은 마미산(馬尾山)이라 불렸기 때문이다.

말머리 부분에는 안시성(安市城)이 있었고 말꼬리 부분에는 환도성(丸都城)이 있었기 때문에 아래라고 해석하지 않고 꼬리부분이라 해석한 것이다. 자전(字典)을 찾아보면 의 뜻에 물건의 머리와 반대되는 쪽 끝이라 되어있다. 만약 아래라고 해석한다면 앞뒤 문맥으로 보아 전혀 논리성이 없는 것이다.

땅이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고 넓은 들판이 없어 백성들은 산골짜기에 의지하여 살면서 시냇물을 식수로 한다.”라고 했는데, 도성이 환도산 아래 있다면 산골짜기가 아니므로 산골짜기에서 나오는 시냇물을 마실 필요가 없는 것이 논리적인 사고다. 환도산 위에 都城이 위치하였기 때문에 산골짜기의 물을 마셨던 것이다. 김부식은 같은 산에 머리 부분과 꼬리 부분에 안시성과 환도성이 각각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기에 󰡔三國史記(삼국사기)』「地理志(지리지)에서 안시성은 혹 환도성이라 한다.”66) 金富軾著, 李載浩 편역, 三國史記(서울: , 1977), p.64.

라고 적었던 것이다.

 

 新唐書(신당서)역시 고구려에 遼山遼水란 하천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앞의 두 史書보다 더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遼水가 왜 鴨綠水란 명칭을 갖게 되었는지의 이유도 잘 말해주고 있다.

 

()은 대요(大遼)와 소요(少遼)가 있다. 대요는 말갈의 서남쪽 산에서 흘러나와 남으로 안시성(安市城)을 거쳐 흐른다. 소요는 요산(遼山)의 서쪽에서 흘러나와 역시 남으로 흐르는데, 량수(梁水)가 새외(塞外: 요새 밖)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이와 합류한다. 마자수(馬訾水)가 있어 말갈백산(靺鞨白山)에서 흘러나오는데, 물빛이 오리머리와 같이 푸르러 압록수(鴨綠水)라 부른다. 국내성(國內城) 서쪽을 거쳐 염난수와 합류한 다음, 다시 서남으로 흘러 안시성(安市[])에 이르러 바다(: 황하) 󰡔수경주󰡕, 󰡔지리지󰡕 및 그 밖의 여러 사서들을 잘 검토해보면 옛날에는 黃河처럼 흐르는 물은 해(), (), ()라고 부르고, 천연호수처럼 고여 있는 물은 해() 앞에 한 글자를 더 붙여 천해(天海: 현재의 외몽고 바이칼 호수), 북해(北海: 산서성 최남단 천연호수인 운성염지로 동서 84리 남북 17리 이며 지금의 해지海池), 청해(靑海: 청해성에 있는 호수로 서해西海라고도 부름) 등으로 2글자로 된 고유명사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황하 = = 하수河水 = 서하(西河: 산서성과 섬서성 사이의 황하를 칭함).

 

한반도의 압록강과 요녕성에 있는 요하(遼河)를 고구려 당시의 압록수로 비정하여 󰡔신당서󰡕에 기록된 ()’를 황해(黃海)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기서의 황해가 아니라 황하라는 사실을 다음 기록에서도 알 수 있다. 󰡔尙書󰡕 11, 周官편에, “武王旣伐東夷, 肅愼, 來賀”...란 주석에서 海東諸夷, 駒麗, 扶餘, , 貊之屬.”이라 설명하고 있다. 만약 를 황해로 주장한다면 황해의 동쪽은 한반도로 한반도에 고구려, 부여, (), 맥이 모두 살았다는 이야기인데, 지금까지 알려진 어떤 사(), (), 사료(史料), 문헌(文獻), 자료(資料), 지도(地圖)()에도 한반도에 이들이 살았다고 분명하게 밝힌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당시의 는 황하를 일컫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신당서󰡕의 기록을 산서성 오늘날의 분하(汾河)에 맞춰보면 수수께끼를 풀 듯 정확하게 맞아 떨어짐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요하가 고구려 당시의 요수(압록수)라고 주장한다면 󰡔신당서󰡕의 기록을 요녕성의 요하(遼河)에 직접 대치시켜 보길 제안한다. 그리하면 대요수, 마자수, 소요수가 발원하는 수원(水源)은 물론 국내성, 평양성, 안시성의 위치가 정확하게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司馬遷, 󰡔史記󰡕夏本紀 第2, p.20. “徐廣曰海一作河(서광이 말하기를 해()는 하()라고도 한다.)”

로 들어간다. 평양성(平壤城)은 압록의 동남에 있어 큰 배로 사람이 건너다니므로 해자(塹濠) 역할을 한다.“ 歐陽修等, 󰡔新唐書󰡕 220,[]水有大遼.少遼: 大遼出靺鞨西南山, 南歷安市城, 少遼出遼山西, 亦南流, 有梁水出塞外, 西行與之合. 有馬訾水出靺鞨之白山, 色若鴨頭, 號鴨綠水, 曆國內城西, 與鹽難水合, 又南至安市, 入於海. 而平壤在鴨綠東南, 以巨艫濟人, 因恃以爲塹.”>

라고 하여 고구려에는 요산(遼山)이 있고 대요수(大遼水), 소요수(小遼水), 마자수(馬訾水), 염난수(鹽難水)가 합류하여 남쪽으로 흐르다가 안시성(安市城)을 거쳐 황하로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다[그림 3 참조]. 그리고 마자수(馬訾水)가 압록강(鴨綠江)이며 일명 압록수(鴨綠水)” 臧勵龢等, 󰡔中國古今地名大辭典󰡕 (臺灣: 尙務印書館, 1982), 2, p.765, “[馬訾水]卽鴨綠江.漢書地理志玄菟郡西蓋馬縣. 馬訾水西北入鹽難水. 通典一名鴨綠水.” 라는 사실을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이 증명해주고 있다.

지나대륙의 하천 약 1,252개를 자세히 설명해놓은 고대(古代) 지리서인 󰡔水經注(수경주)󰡕에도 고구려의 대요수(大遼水)가 새외(塞外)에서 나와 남쪽으로 안시성(安市[])까지 흘러 황하(黃河)로 들어가며, 현토 고구려현에 있는 요산(遼山)에서 소요수(小遼水)가 흘러 요대현(遼隊縣)을 지나 대요수(大遼水)로 들어간다. < 陳橋驛, 葉光廷 注譯, 󰡔新譯水經注 ()󰡕(臺灣: 三民書局服彬有限公司, 2011), PP. 608, 611, “󰡔十三州志󰡕.. 大遼水自塞外, 西南至安市入于海. 小遼水: 又玄菟高句麗縣有遼山, 小遼水所出, , 故高句麗, 胡之國也. 漢武帝元封二年(西元前109), 平右渠, 置玄菟郡于此, 王莽之下句麗. 水出遼山, 西南流逕遼陽縣與大梁水會. 水出北塞外, 西南流至遼陽入小遼水. 地理志.. 大梁水西南至遼陽入遼. 郡國志.. , 爲淡淵. 晉永嘉三年涸. 小遼水又逕遼隊縣入大遼水.> 라고 적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종합해보면 󰡔양서󰡕, 󰡔남사󰡕, 󰡔신당서󰡕, 󰡔수경주󰡕 모두 고구려의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과 요수(遼水)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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