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내면서
우연한 기회에 <KBS 역사스페셜-2010 탐사보고, 동명루트를 찾아서>를 보았는데 “동명은 주몽 이전에 나라를 세웠다. 부여의 첫 수도로 알려진 중국 동쪽 기슭에 동단산이 부여 왕성으로 추정된 것이다”라고 하면서 문헌사료와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잘못된 내용을 지적하고 올바른 역사를 알리고자 <700년 부여국의 허구와 동명왕·고주몽 관계 연구>라는 학술논문을 발표하고 출간하게 되었다.
KBS는 ‘동명루트를 찾아서’에서 참고문헌으로 김부식의 <삼국사기>, 왕충의 <논형>, 진수의 <삼국지>, 그리고 정약용의 <아방강역고> 4종을 밝히고 있다. 부여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부여의 명칭으로 부여(扶餘), 부여(夫餘), 부여(扶余), 부여(夫余)로 기술된 약 661종 3,549권이 있고 부여국(扶餘(余)國)에 대한 기록은 36종 43권으로 모두 697종 3,592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물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제외한 숫자이다.
그런데 KBS는 겨우 4종의 극히 제한된 문헌을 토대로 하여 자신들의 주장처럼 700년이란 긴 세월의 부여사(扶餘史)를 재구성하려다 보니 근거없는 추정, 비정, 추측, 억측, 억단이 되었다, 결국 “∼라고한다”는 식의 부화뇌동(附和雷同)과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인 탐사보고가 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말해 <동명루트를 찾아서>는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없는 추리 소설이다. “부여의 첫 수도가 중국 길림시이며 이곳에 부여를 건국한 이가 바로 동명왕이라든지... 부여는 하얼빈[합이빈], 길림, 심양 등 광활한 이 지역에서 무려 700년이나 위용을 떨쳤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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