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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적인 식민사관에 언제까지 휘둘릴 것인가. 우리 민족의 참된 역사, 진실된 역사를 알리기 위해 평생을 싸워온 재야 사학자. 현재 뉴욕을 기반으로 한민족사관정립의식개혁회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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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壇君朝鮮)은 신화(神話)가 아니다<6>

글쓴이 : 폴김 날짜 : 2014-02-16 (일) 12:37:01





(1) 사라진 우리나라의 상고사(上古史)





단군조선(壇君朝鮮)의 역사 기록이 분서갱유(焚書坑儒)로 모두 불 타 없어지고, 해모수가 세운 북부여 역사가 선비족 모용외의 난(亂)으로 소실되었고, 단군조선 상고(上古)부터 고구려 초기까지의 역사 기록인 유기(留記) 100권은 위(魏)나라 관구검의 난으로 소실(燒失)되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을 기록한, 고흥박사가 지은 신집(新集)이란 역사서와, 신라 진흥왕 때 거칠부가 지은 신라고사(新羅故事)가 소실되었고, 고려 때 쓴 삼한고기(三韓故記), 해동고기(海東古記), 삼국사(三國史)등의 역사서가 없어지고, 신라의 것이 겨우 전하여 조선(이씨조선)의 서운관(書雲觀)에 보관되었었는데 1592년부터 7년간의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 타버렸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태종 이방원은 명(明)나라에 사대(事大:약자가 강자를 섬김)하기 위하여 자신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단군조선의 기록인 신지비사(神誌秘詞), 해동비록(海東秘錄) 등을 불살랐다.





(2) 일제의 만행을 바로 알아야





1910년 8월 22일 한일 합방을 한 일본은 그 해 11월부터 이듬해인 1911년 12월까지 약 1년동안 경찰과 헌병을 총 동원하여 전국각지에서 강탈한 역사서(歷史書) 51종 약 20만권을 불사르는 만행(蠻行)을 저질렀다. 이것도 모자라 일본인들은 1923년 6월 칙령(勅令)에 의해 총독부 직속 하에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하여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서를 제 마음대로 고쳐서 교열(校閱:문서의 잘못된 곳을 교정하여 검열함)이란 이름으로 마구 찍어냈다. 역사 내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거나 열등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은 후세인들이 알 수 없게 조작(造作), 날조(捏造), 왜곡(歪曲)을 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한 것은 동이배달한민족(東夷倍達韓民族)의 상고사(上古史)를 약간이라도 언급하고 있는 역사서가 2가지 전해오니, 하나는 고려 제17대 인종 23년인 1145년에 경주김씨 김부식 어른이 쓴<삼국사기>이고, 또 하나는 고려 제25대 충렬 왕 때인 1274년에 승려 일련(본명 김견명金見明)이 지은 <삼국유사>가 그것이다.






(3) 한자 68자가 기록한 신화





<삼국유사> ‘기이 제1’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당시 고기(古記)란 사서를 인용하여 적은 것인데,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遺靈艾一炷 蒜二十枚 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 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 而不得人身(시유일웅일호 동혈이거 상기우신웅 원화위인 시신유영애일주 산이십매 왈 이배식지 불견일광백일 변득인형 웅호득이식지 기삼칠일 웅득여신 호불능기 이불득인신) 당시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이 굴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항상 환웅(桓雄:배달국 제18대 거불단 환웅을 뜻함)에게 사람 되기를 기원하였다. 이때 환웅이 신령스런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가 이것을 먹되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형상을 얻으리라.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삼.칠(3.7)일 교대로 먹으면서 금기(禁忌)를 했는데, 금기를 잘 지킨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지만 호랑이는 금기를 지키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람이 된 웅녀(熊女)는 결혼할 상대가 없어서 신단수(神壇樹:환웅과 관련이 있는 신령한 나무) 아래서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다. 환웅이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단군왕검(壇君王儉)이다. 한자(韓字) 68자로 적혀있는 이 기록 때문에 단군조선이 고조선(古朝鮮:옛 조선)의 이름으로 신화(神話)가 되어 버렸다.





(4) 모계사회(母系社會)의 신화들





태호복희씨(BC3512)의 어머니는 신모(神母)인데 무지개가 둘러 싸, 무지개의 감응(感應)을 받아 잉태하여 복희씨를 낳았다고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마치 동정녀인 처녀가 애를 낳았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분명히 신화(神話)다. 염제신농씨(BC 3071) 의 어머니는 여등인데 용(龍)과 관계하여 염제신농씨를 낳았다고 한다. 요즘 같으면 유치원생들도 믿지 않을 일이다. 이것 역시 신화이다.





소호금천씨(BC2578)의 어머니는 황아(皇娥)인데, 궁상(窮桑)이라는 들판에서 놀고 있을 때 자신이 백제(白帝)의 아들이라 일컫는 신동(神童)과 교합하여 소호금천씨를 낳았다고 한다. 신동이란 재주와 슬기가 남달리 뛰어난 아이란 뜻이다. 말하자면 미성년자인 어린애하고 관계하여 소호를 낳았다는 말이다. 어린애에 대한 이상성욕 자를 피더퓔(pedophile)이라고 하는데 요즘 같으면 징역 5년 정도 받을 수 있는 대 사건이다. 이것 또한 분명한 신화인 것이다.



제곡고신의 어머니는 간적이란 여자인데, 제비 알을 삼키고 임신이 되어서 제곡고신을 낳았다고 한다.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인가! 분명히 신화이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영국 사람들이 ‘제비’와 ‘삼키다’라는 영어 단어를 만들 때 이 제곡고신(帝嚳高辛)의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듯하다. 제비를 swallow라 하고, ‘삼키다’란 단어도 swallow이다. 말하자면 “Ganjeok swallowed an egg of swallow.(간적이 제비 알을 삼켰다.)” 이다.


 

요임금은 임신한지 14개월 만에 낳았다고 한다. 7개월이나 8개월에 나왔다는 칠삭둥이, 팔삭둥이란 말은 들어 보았어도 14개월 만에 애를 낳았다는 것은 처음이다. 신화이다. 주(周)나라를 세운 후직의 어머니는 강원이란 사람인데, 길을 걸어 가다가 거인의 발자취를 밟고 갔더니 애를 배어서 후직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분명히 신화이다.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의 어머니는 큰 연못에서 용(龍)과 교합하여 유방을 낳았다. 다시 말하면 한나라 유방은 사람 자식이 아니고 용의 자식인 것이다. 유방(劉邦)의 탄생 역시 신화(神話)로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지나(支那)인들이 자신의 조상들이라고 주장하는 태호복희, 염제신농, 소호금천, 제곡고신, 요임금, 후직, 그리고 한나라 유방의 탄생이 모두 신화이다. 동양(東洋)은 말할 것도 없고 서양(西洋)의 역사도 신화로 기록 된 부분이 많다. 역사(歷史)란 사실을 기록한 것이고, 신화(神話)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역사가 형이하학(physical)이라면, 신화는 형이상학(metaphysical)의 기록이다. 한 나라의 제왕(帝王)이 나타날 때는 이 제왕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다. 그런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신화를 사용한 것이다. 지나(支那)쪽의 신화와 단군조선의 신화를 잘 비교, 검토해 보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태호복희씨, 염제신농씨, 소호금천씨, 제곡고신, 후직, 유방 등의 출생 신화에서는 아버지가 없고, 어머니만 언급(言及)되어 있다. 이것이 시사(示唆)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바로 모계사회(母系社會:matrilineal society)를 뜻한다.





옛날에는 부족(部族) 들을 동물의 이름으로 대신했다. 예를 들면, 염제신농씨나 치우천황 같은 분은 호랑이족으로, 태호복희씨는 백사(흰뱀) 족으로, 소호금천씨는 독수리 족, 황제헌원은 곰족으로 표현했다. 지금의 백마부대, 청룡부대, 맹호부대 식으로 군대 사단을 지칭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백마부대에서 전역한 사람을 백마(白馬:흰말)라고 할 사람은 없다.






(5) 역사는 신화에서 신화는 역사에서





지금으로 부터 약 6,000년 전에도 인간이 이 지구상에 살았던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피러 뤼춰쓴(Peter J. Richerson)과 롸벝 보이드(Robert Boyd)의 <복잡한 사회의 발생:The rise of complex societies>이란 논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농사(農事)의 기원은 약 11,500년 전의 기후 변화로 부터 시작되어 온 것이다.





원시적인 사냥 목축 단계에서 한 곳에 정착하여 집단생활을 할 수 있는 농업 단계가 인간사회의 자연적인 발전 단계로 보인다. 1974년 앜스퍼드 대학 신문에서 발행한 아널드 줴이 토인비(Arnold J.Toynbee:4/14/ 1889-10/22/1975) 교수의 저서 <역사 연구:A study of history> 제 44쪽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Arnold J. Toynbee, in his book A study of history(Oxford University Press, 1974, P.44), describes as follows:]





"역사는 드라마나 소설처럼 원시적인 형태의 이해와 표현방법인 신화(神話)로 부터 발전했다.ㅡ 어린아이들이 들은 동화 속에서 혹은 지성인인 어른들이 꾼 꿈속에서처럼 ㅡ 즉 역사란 사실과 허구 사이에 선(線)을 긋지 못한 상태로 남아있다. 예를 들면, 일리어드(트로이 전쟁을 읊은 서사시로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우머의 작이라고 전해짐)를 역사로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을 때 그것이 허구로 가득 찬 것임을 알게 되고, 동시에 일리어드를 허구로 읽기 시작했을 때는 그것이 역사로 가득 찬 것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모든 역사들은 허구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일리어드를 닮았다.[History, like the drama and the novel, grew out of mythology, a primitive form of apprehension and expression in which ㅡ as in fairly tales listened to by children or dreams dreamt by sophisticated adults ㅡthe line between fact and fiction is left undrawn. It has, for example, been said of the Iliad that anyone who starts reading it as history will find that it full of fiction but, equally, anyone who starts reading it as fiction will find that it is full of history. All histories resemble the Iliad to this extent, that they can not entirely dispense with the fictional elements.]"





이와 같이 6,000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후세 자손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으로 곰과 호랑이와 쑥과 마늘과 같은 신화가 불가피 했던 사실을 역사학자 토인비는 그의 저서 <역사연구>에서 잘 웅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6) 단군왕검 출생은 부계사회





단군(壇君)왕검의 출생 신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한 굴속에 살고 있었다는 말은, 곰족의 여자와 호랑이족의 여자가 한 마을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은유적(隱喩的)으로 나타낸 것이며. 쑥과 마늘을 등장시킨 것은 그 당시 사회규범(社會規範)등을 나타낸 것일 것이다.





수천 년의 모계사회를 부계사회로 전환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닌 대 혁명 이였다. 단군왕검의 출생을 신화(神話)로 표현함으로써 부계사회(父系社會:patrilineal society)를 표방하고 나타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4,500년 전이 모계사회였고, 그 당시 곰족이 많이 살았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고고학적인 유물발굴이 있었다.





이름 하여 홍산문화(紅山文化)라고 하는데, 1906년 일본인 도리이류조(鳥居龍藏)가 요동지방 지표조사를 하던 중 요하지역(遼河地域:요녕성 서북 현 내몽고 자치구)에서 신석기시대 유물(遺物)과 적석묘(積石墓:돌로 만든 무덤)를 발견했다. 1955년 이를 홍산문화라 이름하고, 계속 발굴 조사 중, 1982년 요녕성(遼寧省) 우하량(牛河梁)에서도 같은 유물이 많이 발굴되어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로 황하, 인더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쑤메르)라고 한다. 황하 문명(黃河文明)이 주변 아시아의 모든 문명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으나, 이 홍산문화의 유물 발굴로 인하여 우리 선조였던 환웅천황의 배달국(倍達國)과 단군조선의 땅인 이곳에서 발굴된 동이족(東夷族)의 문화인 홍산문화가 황하문명 즉 앙소문화보다 1,500년이 앞선 문화임이 밝혀졌다.





이 유물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수많은 웅녀 곰 조각상이 나왔고 요녕성 우하량에서 발굴된 것은 "여왕국"이라 한다. 당시의 모계사회와 곰 족이라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7) 현 요하(遼河)는 916년 이후부터 만들어진 지명





거란족 야율아보기가 현재의 산동성 동평(東平)에 도읍을 정하고 요(遼:916-1125) 나라를 세웠다. 동평이라고 부르기 전에는 요양(遼陽)이라 부르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요나라는 내몽고 자치구에 있는 파림좌기(巴林左旗)에 도읍을 정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곳 파림좌기의 도읍 설(說)은 후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아무튼 파림좌기 근처의 하천을 요하(遼河)라고 불러 마치 대진국(大震國) 당시의 요하(遼河)인양 역사가 왜곡되어져 왔다. 요나라를 세우기 이전의 요하는 하남성과 산서성 혹은 섬서성과 산서성 사이의 황하(黃河)를 요하 혹은 요수(遼水)로 불렀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할 때의 요수, 요하는 위에서 언급한 황하를 지칭함을 분명히 밝힌다. 고구려가 망하고 248년 후에 요나라에 의해 새로 생긴 요하(遼河) 때문에 한국의 재야사학자들도 이에 속아 수(隋)와 당(唐)이 마치 이곳 요녕성까지 쳐들어 온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요하는 요녕성 서북부 내몽고 자치구의 노합하(老哈河)와 서랍륜하(西拉倫河)를 뜻한다. 홍산문화가 발견된 지역은 노합하의 상류에 있는 적봉시(赤峰市)의 동북에 위치한 홍산(紅山:붉은 산을 의미)으로 단군조선(壇君朝鮮:BC2333-BC237)의 5경(五京:다섯 곳의 도읍지)중 한 곳이며 <삼국유사>에서 말한 무엽산(無葉山)으로 보이는 곳이다. 요(遼)나라의 도읍지라고 잘못 알려진 파림좌기 남쪽 약 441 리에 위치한 산이다.





홍산은 붉은 산으로 철 성분이 많은 바위산이기 때문에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나무가 자라지 않으니 나무 잎은 존재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무엽산(無葉山:나무 잎이 없는 산)이라 했던 것이다.





(8) 역사 말살이 곧 그 민족의 말살





지나의 역사에도 신화가 있고 단군조선의 기록에도 신화가 있는데, 왜 지나의 신화는 문제가 되지 않고 단군왕검의 출생(出生) 신화만이 문제가 되어 단군조선(壇君朝鮮)의 역사가 송두리째 부정되고, 매도되고, 말살되어야 한단 말인가?





역사학자 토인비는 "한 민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그 민족의 역사를 말살(抹殺)하는 것이 식민제국주의자들의 철학이다."라고 했다. 일본인들이 우리민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2,096년의 찬란한, 실존(實存)했던 단군조선을 신화로 둔갑시켜 매장(埋藏)시켰다. 특히 일본인 이마니시류(今西龍:1875- 1932)가 식민사학을 주도했고, 그의 제자였던 반민족 사학자 이병도와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의 대학 강단에서 식민사학(植民史學)을 가르치고 있는 민족반역자들이 공범자들이며, 단군조선의 역사의 실체를 두려워하는 일부 기독교인들 때문에 단군조선의 역사가 신화(神話)로 된 것이다.





(9) 단군조선은 실존했던 나라





단군조선은 신화가 아닌 실존했던 나라이다. 단군(壇君)왕검의 자(字:사람의 본 이름 외에 부르는 이름)는 단(壇)이며 이름은 검(儉)이다. 단군을 환검(桓儉:한검)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따라서 단군왕검(壇君王儉)이란 "단壇 임금이자 검儉 왕"이라는 의미이며 임금(君)이나 왕은 같은 뜻으로 이중으로 표현한 것이다. 뜻글과 소리글을 함께 사용한 우리글의 특성이다. 예를 들면 ‘축구’를 ‘축구 차다’로, ‘역전’을 ‘역전 앞’으로, ‘미술’을 ‘미술 그리다’등으로 이중 표현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단군왕검은 BC2370년 5월 2일 인시(새벽 3-5시 사이)에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배달국(倍達國)의 제18대 거불단환웅(居弗檀桓雄)이시다.





왕검은 14세 때 비왕(왕을 보좌하는 왕)이 되어 24년간 있다가, 무진년인 BC 2333년에 아사달(阿斯達:이두어로 새로운 땅 혹은 새로운 산이란 뜻으로, 현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에 도읍(都邑)을 정하고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비왕으로 24년간, 단군으로 93년간, 130세까지 살았던 분이다. 단군조선(壇君朝鮮)은 지나의 왕조인 요(堯), 순(舜), 하(夏), 은(殷), 주(周)의 상국(上國)으로 조공을 받았으며 지나의 왕조가 바뀔 때마다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음을 여러 사서에서 볼 수 있다.





단군조선(壇君朝鮮)은 제1세 단군왕검부터 제47세 고열가단군까지 2,096년간의 장구(長久)한 역사를 누린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실존(實存)했던 국가이다. 암울한 시대를 만나 식민사학자(植民史學者)란 오명(汚名)을 갖게 되었던 이병도 선생도 작고(作故)하기 전에는 "단군(壇君)은 신화(神話)가 아닌 우리 국조(國祖)다."라고 했다하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단군(壇君)이 국조가 아니라 단군왕검(壇君王儉)이 국조라 했더라면 더 훌륭했었을 것이다. 원래 단군은 조선이란 대 연방국을 건설한 제1세 단군왕검을 뜻하였으나 단군왕검이 붕어한 후부터 단군은 단군조선(壇君朝鮮) 최고의 직책(職責)을 뜻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당시의 단군조선은 제정일치(祭政一致:제사와 정치가 일치하는 정치 형태)의 사회로 단군이란 단군조선을 건국한 시조인 ‘단(壇) 임금’이란 뜻인 동시에, 단군왕검이 창시한 신교(神敎:선교, 수두교, 삼신오제교, 선도교)의 제사장(祭司長)이자 고천제(告天祭:하늘에 제사지냄)를 지낼 때 주인(主人)이며 천자(天子)란 직책이 되었다. 따라서 단군조선 때의 단군(壇君)은 한 분이 아니고 모두 47분이다. 현재의 대통령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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