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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 38-42부

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4-06-10 (월) 16:58:18

38부 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국어(國語)/노어하(魯語下)>공자가 진()나라에 계실 때에 송골매가 진후(晉侯)의 정원에 모여 죽었다. 호시(楛矢)가 꽂혀 있었고 살촉은 독살촉이었는데, 그 길이는 18치였다.

() 혜공이 사람을 시켜 송골매를 가지고 공자(孔子)의 간사로 보내 물었더니, 공자가 송골매는 멀리에서 왔습니다. 이것은 숙신(肅愼)의 화살입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김육불은 열하, 요녕, 길림, 흑룡강성이 동북지역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산해경/대황북경>을 인용하여 대황의 가운데 산이 있으니, 불함산(不咸山)이라 하는데 숙신씨의 나라가 있다. 곽주(郭注). 지금 숙신국(肅愼國)이 요동(遼東)에서 3,000여리 떨어져 있다.”

숙신이 살았던 땅은 지금 장백산(長白山) 북쪽에 있었다고 하면서 인용문에 나오는 송골매에 꽂힌 화살촉이 숙신의 것으로 장백산 북쪽에 있던 숙신국에서 화살을 맞고 날아 왔다는 논지를 펴고 있다.

춘추시기의 진()나라는 섬서성 장안에 있었다. 그렇다면 송골매가 길림성에 있는 장백산에서 숙신씨의 독화살을 맞고 머나먼 장백산에서 남서쪽으로 날아 황하를 건너 섬서성 장안에 와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김육불의 이같은 터무니없는 주장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거리를 측정해 보았다. 장백산이라고 하는 백두산 약간 북부로부터 공자가 머물렀다는 진()인 섬서성 장안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4,650리가 넘는 거리이며 숙신의 독화살을 몸에 꼽고 약 1,000리의 황해바다를 가로질러 내려왔어야 하는 거리이다.

송골매(falcon)는 몸길이가 34.58cm이고 몸무게는 수컷이 350-1,000그램, 암컷은 700-1,500그램이라 한다.

송골매에 꽃혀있던 독화살의 길이는 54.54cm이다. 34.58cm의 몸에 54.54cm의 독화살을 꼽고 황해를 횡단하고 황하를 건너 4,650리의 머나먼 거리를 날아와 섬서성 장안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소설이 아니고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이 송골매는 단군조선인 숙신이 있던 예() 지역인 산서성에서 날아온 것이다. 김육불의 이같은 주장은 합리적, 논리적이지 못하고 설득력도 없는 허구의 소설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이렇게 김육불은 그의 책 <동북통사>에서 억설(臆說)과 억단(臆斷)으로 일관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39

 

김육불은 숙신이 길림, 요녕, 흑룡강성에 나라를 세우고 살았다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산해경/대황북경>을 인용하고 있으나, 불함산이 숙신국의 장백이라고 억지 해석을 한 것이다.

숙신은 예()가 발원하는 산서성 남부를 일컫는 말로 여기서의 불함산이란 지금의 왕옥산을 뜻한 것이다. 그 이유를 검토하기 위해 먼저 찬반이 엇갈린 <산해경>이 어떤 책인지 잠시 살펴보겠다.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은 감히 말할 수 없는 기서(奇書)라 하여 믿을 수 없다고 하였고, 청나라 기윤(紀昀) 역시 신기하고 괴이한 일을 지나치게 이야기하고 있어 백가지 중에 하나도 진실한 것이 없다라고 <산해경>을 평가하였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산해경>에는 이상야릇한 짐승들과 풍속들을 기록하고 있기는 하나 지리서로서는 훌륭한 자료라고 믿는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백가지 중에 하나도 진실한 것이 없다고 혹평한 기윤이 편집한 <사고전서><산해경>이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기윤의 말대로 <산해경>진실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면 폐기처분 했을 것이다.

청나라 건륭의 명에 의해 <흠정사고전서>를 만들 당시 3,100종에 달하는 문헌사료를 폐기처분 했기 때문이다. <흠정사고전서>에는 <산해경>을 포함하여 약 80,000권의 문헌사료가 수록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40

 

<산해경/대황북경>의 첫 문단은 東北海之外. 大荒之中. 河水之閒. 附禺之山(동북해지외. 대황지중. 하수지간. 부우지산) 동북인 황하밖에 거친 땅으로 황하와의 사이에 부우산이 있다.”로 시작된다.

동북이란 단어가 나타나고 분명히 황하 사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부우산에서 불함산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방산, 부우산, 불함산, 왕옥산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던 이 산은 단군조선이자 주신이고 숙신의 땅인 황하에서 멀지 않은 산서성 남부에 위치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산해경/대황북경>이 기술하고 있는 동북<주례/직방씨>동북이 유주라는 동북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지역임을 주목하기 바란다. 본고에서는 <산해경>에 대해 더 깊이 들어가지 않겠다.




송골매가 길림성 장백산 부근의 숙신국에서 독화살을 맞고 섬서성 장안까지 왔었다는 김육불의 견해를 다음 <그림 17><그림 18>을 함께 제시하겠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41

 

11. 부여족의 신장

김육불은 부여 일족이 예맥(濊貊)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말하였고, 여기서 더욱 증거를 들어 그러한 것을 밝히겠다고 하면서 부여와 예맥과의 관련을 증거하기 위해 먼저 <주례/직방씨>를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직방씨는 사이(四夷) 팔만(八蠻) 칠민(七民) 구맥(九貊) 오융(五戎) 육적(六狄)의 백성을 관장한다. 정주(鄭注) 북방 이민족을 맥적(貉狄)이라 한다라는 내용이다. 문맥으로 보아 맥적이 맥족이고 부여족임을 알 수 있다.

이 인용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정주(鄭注)는 하남성 황하와 가까이 위치한 오늘날의 정주(鄭州)이며 바로 황하를 건너 정주(鄭州)의 서북부에 예()가 자리하는 곳으로 인용문의 부여족인 예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김육불은 <한서/고제기>를 인용하고 있다. “북쪽의 맥족과 연인(燕人)들이 날래고 사나운 기병을 몰고 왔다. ()[] 맥족(貊族)은 동북방에 있으니, 삼한(三韓)의 족속(族屬)이 모두 맥족류이다라는 내용이다.

<한서/고제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맥족은 고구려를 뜻한 것으로 유방(156-87C)과 항우(232-202BC)의 마지막 승패를 가르는 해하(垓下: 안휘성 연단현 동남) 전투에서 유방은 궁지에 몰리게 되어 BC2038월에 맥(고구려)에 청병을 요구한 기록에 주목하자.

고조 4(BC203) 8월 북맥과 연나라 사람이 와서 날랜 기병을 보내 한()을 도왔다는데, 사고(안사고)는 이 맥()을 동북방의 삼한(三韓: 진한, 마한, 변한)의 무리들이다라고 적고 있다.

<한서/고제기>에서 기술한 동북방이란 산서성을 일컫는 말로 김육불의 요녕, 길림, 흑룡강성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시말하면 동북이 유주란 산서성 남부를 가리키는 것임을 이미 밝힌 바 있으니 산서성에 삼한이 위치했고 삼한 사람들을 맥족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김육불이 주장하고 있는 동북지역인 열하, 요녕, 길림, 흑룡강성에는 예()란 하천도 지명도 없다. ()는 단군조선이 위치했던 지금의 왕옥산에서 발원한 하천으로 산서성 남부와 하내라는 사실을 앞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42


김육불은 환공(桓公)이 북쪽의 고죽산(孤竹山)에 이르러 예맥(濊貊)과 싸웠다라는 <관자/소광편>을 인용하고 있다. 고죽산은 산서성 남서부에 있는 고죽국의 수양산을 일컫는 말이며 산서성이 단군조선의 백성 예맥족의 토착지이니 당연히 예맥족과 싸워야 했다.

김육불은 <사기/흉노전>을 인용하였다. “좌방(左方)의 왕과 장()들은 동쪽에 살며 곧바로 상곡(上谷)으로부터 동쪽으로 예맥과 조선에 접해 있다. <색은(索隱)>[] ()이 곧 예()이다라는 내용이다.

상곡은 산서성 남부 중조산일대를 지칭한 것이며 맥()이 곧 예()이고 예가 곧 단군조선(壇君朝鮮)으로 김육불이 애써 인용하고 있는 내용의 지명은 모두 산서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김육불의 논평을 들어보자. “위에 기록한 것을 종합하면 예맥(濊貊)은 곧 맥인(貊人)의 또 다른 호칭이다. ()은 또한 맥()으로도 쓰였으니 동북방에서 살았다. 그렇다면 후세의 부여(夫餘)와 고구려(高句麗)가 거의 모두 이 부족에 속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김육불이 의미하고 있는 동북방은 요녕, 길림, 흑룡강성, 열하를 뜻하는 것으로 역사적 사실이 아님을 본고에서 여러 차례 밝혀 고증한 바 있으므로 동북이란 산서성 남부와 하내를 지칭하는 것이며 산서성 일대에 부여와 고구려가 활동했다는 사실의 논증으로 귀결된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사료들을 인용하고 있으나 김육불의 동북지역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들이므로 논평의 가치가 없다. 김육불의 동북지역인 열하, 요녕, 길림, 흑룡강성은 동북이 유주란 산서성 남부와 하내가 아닌 왜곡, 날조, 조작이라고 결론짓는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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