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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적인 식민사관에 언제까지 휘둘릴 것인가. 우리 민족의 참된 역사, 진실된 역사를 알리기 위해 평생을 싸워온 재야 사학자. 현재 뉴욕을 기반으로 한민족사관정립의식개혁회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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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천황과 황제헌원의 10년 전쟁

글쓴이 : 폴 김 날짜 : 2010-07-08 (목) 08:00:59
 
  

  

BC3898년 음력 10월3일 거발한 환웅(桓雄) 천황이 신시(神市)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배달국(倍達國)이라 하여 신시개천(神市開天)이 시작되었다. 신시개천이란 “세상을 다스리도록 내려왔다”는 뜻이다. 이 신시개천에서 ‘개천절’이 유래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10월3일 개천절은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조선(朝鮮)이란 나라를 세운 BC2333년 부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것은 잘못이다. 단군왕검부터가 아닌 환웅천황 때인 BC3898년부터라고 사서들이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동이배달한민족의 역사역년(歷史歷年)이 2010년 현재 5908년인 것이다.


원동중이 지은 <삼성기전> 하편, 신시역대기의 기록을보면, 치우천황(蚩尤天皇)은 배달국 제14대 환웅으로 본명은 자오지(慈烏支)이다. 치우(蚩尤)란 속어로 “번개와 비가 크게 내려 산과 강을 바꾼다”는 뜻으로, 당시 세상을 놀라게 한 인물이기 때문에 치우라는 세속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치우의 본명인 자오지(慈烏支)의 오(烏)자는 ‘까마귀 오’ 자이고, 지(支)자는 ‘가지 지’ 자로 이 이름이 뜻하는 바는 실로 크다. 고구려는 삼족오(三足烏), 즉 ‘세발 달린 까마귀’가 대명사처럼 쓰인 것은 여기서 유래된 것으로 보여진다..


동이배달한민족사에서 삼족오에 관한 가장 오랜 기록은, 제8대 우서한 단군 갑인 7년 인 BC 1987년으로, “삼족오가 궁중에 날아 들었는데 날개 넓이가 석자였다”라고 되어 있다. 회남자(淮南子) 정신훈(精神訓)의 기록에는 삼족오를 양오(陽烏:동방의 까마귀)라고도 하고 금오(金烏:쇠(금)으로된 까마귀), 구리와 철을 가지고 칼, 창, 갑옷, 투구 등 무기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치우천황이라고도 한다고 되어 있다. 주(周)나라 목왕과 서왕모와의 사랑 이야기에 나온, 서왕모(西王母)는 삼족오에 속한다고 <산해경>에 기록 되어 있다.


회남자는 한(漢)나라 유방(BC247–195)의 아들로 BC 247-195년경 사람이고, 주나라 목왕과 서왕모 이야기는 BC 962-949년경의 이야기이며, 그후 송서(宋書)본기와 장경의 본문에 삼족오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여러가지 사서를 종합 검토해보면, 치우천황(BC2727)이 삼족오(三足烏)의 기원이다. 치우천황은 호랑이(범)족 이였다. 그러나, 인류 최초 최대의 공손헌원(황제헌원)과의 10년 전쟁으로 인하여, 전설같은 인물이 되었던 치우천황의 군호(君號)가 구려군(九黎君)이였다.


주몽이 고구려를 처음 건국 할때는 국호를 ‘가우리’ 또는 ‘구려’라고 했다. 치우천황과 단군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자오지(치우) 천황의 ‘까마귀’에서 전설적인 삼족오(三足烏)가 유래됐고, 치우의 군호인 구려군에서 구려와 고구려의 국호가 생겼다고 본다.


<역대 신선 통감>의 기록을 보면, 치우(蚩尤)는 73명의 형제가 있었고, 8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슬하에 81명의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배달국 때 곰족에서 갈라져 나간 소전(少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소전의 별고( 아비 없는 자식의 뜻으로 당시 지나 대륙은 모계사회였음을 암시함)에 공손(公孫)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가축을 잘 기르지 못해 헌구(軒丘)라는 곳으로 유배된 자다.

이 공손의 후예로 공손헌원(公孫軒轅)이란 자가 있었다. 이 공손헌원이 바로 황제헌원(黃帝軒轅)이다. 황제란 왕이라는 칭호이고, 헌원은 이름인 동시에 황제헌원이 만든 나라이름이기도 하다.


치우천황이 배달국(倍達國)의 천자(天子)가 된후 공상(空桑: 현 하남성 진류(陳留))에 유망이라는 사람이 다스리는 배달국의 제후국이 있었는데, 유망이 정치를 잘못함으로, 치우천황이 양수(洋水: 황하)를 건너 공상을 정벌한다. 이 무렵에 공손헌원도 천자(天子)가 되고자 군사를 일으켜 치우천황과 전쟁을 하게된다. 이 때가 바로 BC2707년으로, 지금으로부터 4717년 전의 일이다.


당시 치우는 42세이고, 헌원은 12세로 서로 30세의 나이 차이가 난다. 치우천황은 BC 2727년에 배달국의 천자가 되고 나서 구야(九冶), 즉 9개의 대장간(지금으로 말하면 9개의 무기공장)에서 구리와 철을 가지고 칼, 창, 활, 갑옷, 투구등 당시의 최신무기를 만들어 가지고 있었다.


치우천황과 황제헌원은 탁록(현 산서성(山西省) 최남단으로, 2006년 대만에서 발행한 중국지도상의 삼문협수고(三門峽水庫)로 비정함)의 들판에서 싸움을 하게 된다. BC2707년부터 시작된 이 전쟁은 10년간 73차례 피 비린내 나는 전쟁을 한다. 이때 죽은 자의 시체가 수 백만명이었다고 사서(史書)들이 기록하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 당시에 “어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았겠느냐고” 믿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단군조선 제14대 고불단군 을해 56년인 BC1666년(지금으로부터 3676년 전)의 인구조사 기록을 보면, 당시 단군조선의 인구는 총 1억 8천만명이였다.


춘추시대 때 제(齊)나라 재상인 관중이 쓴 <관자 管子>에 의하면, “천하의 임금이 전장에서 한번 화를 내자 쓰러진 시체가 들판에 가득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천하(天下)의 임금이란 치우(蚩尤)를 뜻한다. 10년 동안 73회의 전쟁에서 항상 헌원이 졌다.

그러나 사마천의 <사기 史記>에는 “치우를 잡아 죽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전쟁에서 헌원이 얼마나 전전긍긍 했었는지 <사기 史記>의 기록을 보면 가히 짐작이 간다. “산을 뚫고 길을 내고 단 한번도 편한적이 없다. 탁록의 강에 도읍하고, 거쳐를 옮겨 다니며, 장수와 사병을 시켜 지키게 하는 전장에서 살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황하(黃河) 이남으로 내려가게 되고, 난을 피하여 서역으로, 중동 (슈메르민족이 된 동이족) 쪽으로, 그리고 미 대륙으로 이주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보아진다.

 

치우천황과 황제헌원의 10년 전쟁으로 인하여 우리 동이배달한민족(東夷倍達韓民族)과 지나민족(중국민족)간의 분명한 민족 구분의 획을 긋는 분기점이 되었다. BC2707년에 치우와 헌원의 10년 전쟁이 시작되어 10년후인 BC2697년에 헌원이 왕이 되어 헌원국(軒轅國)을 세우게 된다.

따라서 지나인(支那人)들은 자신의 역사역년을 BC2697년 부터 계산한다. 금년 2010년 현재로 지나인들의 역사역년은 4707년이다. 그러나 우리 동이배달한민족의 역사역년은 5908년으로, 지나인들의 역사보다 무려 1천201년이 앞선다.


2006년도 음력설날 때 이곳 Flushing에서 지나인(중국인)들이 현수막에 그들의 역사역년인 4703을 새겨 들고 다닌 것을 필자가 직접 보았다. 치우천황과 황제헌원의 10년 전쟁이 끝난 BC 2697년에 2006년을 합한 숫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동이배달한민족 동포들은 이런 역사의 진실(眞實)을 알지 못하고 해마다 설날이면 지나인들의 들러리를 서고 다닌다. 그것도 한인 타운이 아닌 지나인들의 타운에서 말이다.


자존심도, 역사관도, 민족관도, 주체성도, 역사의식도 없는 무분별한 행동이다. 내년 2011년 설날 때부터는 우리의 독자적인 설날 행사를 한인 타운인, 노던블러바드에서 하길 바란다. 뉴욕의 20만 동이배달한민족 동포가 깊이 자각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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