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21-25부

지금부터 예읍(濊邑) 즉 예의 도읍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고성(故城)은 지금의 하간부(河間府) 염산현(鹽山縣) 서북으로 옛 예읍(濊邑)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염산현의 기록을 보자.
“춘추시 제나라 무체읍(無棣邑)이다. 한나라가 고성현(高城縣)을 두었다. ...지금의 이름은 구성진(舊城鎭)이다. 수나라가 염산(鹽山)으로 바꾸었다”라 하였다. 일부가 왜곡되어 있다. 무체현은 산동성에 있는 지명이다.
계속해서 구성진에 관한 기록을 보자. “하북 고양현 동쪽에 있다. 즉 고양고성(高陽故城)이다. 당시의 저용하빈(猪龍河濱)이다”라 하고 있다. 다시 저용하를 찾아보자. “하남성에 있다. 즉 연수(沇水)이다. 연수조를 보라”고 적고 있다.
연수를 찾아보았다. “산서성에 있으며 수원(水源)이 두 곳이다. 동쪽 수원은 양성현 서북 간봉령(干峯嶺)이다. 서쪽 수원은 원곡현(垣曲縣) 동북 역산(歷山)이다. 두 물이 합하여 남쪽으로 흐르다가 황하로 들어간다”라고 말하고 있다.
<山東通志(산동통지)>의 기록을 살펴보자.
“제수(濟水)는 왕옥산(王屋山)에서 발원한다. ...공안국(孔安國)의 주(注)에 이르기를 제수의 원천(源泉)은 연수(沇水)가 흘러가서 제수가 되었다고 하였는데 맞다.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연수(沇水)는 회주(懷州) 왕옥현(王屋縣) 북쪽 왕옥산(王屋山) 정상 기슭의 바위샘이 고여서 흐르지 않는데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으며 현(縣)의 북쪽 3리에 이르며 그 발원지는 여럿으로 흘러넘쳐 못에 이르며 동남쪽으로 흘러 사수(汜水)가 되었다고 하였다. ...
<수경주(水經注)>에 이르기를 제수(濟水)는 동원현(東垣縣) 왕옥산(王屋山)에서 발원하는데 첫 이름은 연수(沇水)라고 하며 온현(温縣)에 이르러서 비로소 제수(濟水)라 한다고 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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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22부
위에서 살펴본 <태평환우기>, <통전>, <기보통지>,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수경주집석정와>, <산동통지>의 기록을 종합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예(濊)는 예수(濊水: 예하)라는 하천으로 인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예수를 연수(沇水)라고 하였는데 방산(房山)이라고 하는 오늘날의 왕옥산(王屋山)에서 발원하며 황하로 들어가는 강이다.
예의 도읍지인 예읍(濊邑)은 예수가 출원하는 왕옥산 서쪽, 즉 하간부였던 지금의 원곡(垣曲)에 있었던 염산현 서북에 있는 지역이다.
지나인들은 역사의 진실을 감추기 위해 문헌사료의 곳곳마다 기록을 왜곡 날조하고 있지만, 나무만 보지 않고 숲을 보면 옛 지리지명을 찾는 일이 전혀 불가능 하지만은 않다. 필자는 예읍이 단군조선 및 고구려의 평양성이 있던 지금의 산서성 임분(臨汾)이라 주장한다. 예읍이 염산현 서북지역이라고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예맥(濊貊)과 관련된 지리지명은 오늘날의 산서성에 위치하며 예맥이 바로 예맥조선이며 단군조선을 뜻하는 것이다. 이들 지명들을 지도에 표시하면 다음 <그림 9>및 <그림 10>과 같다.
따라서 동북지방인 요녕, 길림, 흑룡강, 열하, 한반도가 예족의 거주지였다는 김육불의 주장은 틀렸다. <동북통사>에서 김육불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지 않은 자신의 의견을 적고 있어 위서(僞書)임이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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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24부
4. 동북사와 지리
김육불은 요녕, 길림, 흑룡, 열하를 동북지역이라는 견해를 정당화하기 위해 <서경/순전>, <사기/하본기>, <통전/주군전>, <요동지> 등을 인용하여 “순임금이 기주(冀州)의 동북을 나누어 유주(幽州)로 하였으니, 곧 지금의 광녕(廣寧) 이서의 지방이고, 청주의 동북을 나누어 영주로 하였는데, 곧 지금의 광녕 이동이 지역이다 라고 했으니, 그 해석이 더욱 명석하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육불은 또 “의무려산은 지금의 요령성 북진현(北鎭縣)에 있는데, 삼대(三代)에 편찬된 책에도 이미 그것을 언급하였고, 또 그곳을 유주에 소속시켰으니, 그의 건립이 우하(虞夏) 시대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음이 명백하다”라고 억단(臆斷)을 하고 있다.
기주의 위치를 고증하려면 위치를 기록하고 있는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제시하면서 인용해야 하는 것이 역사학자의 기본인데 김육불은 고증을 하지 못하고 시종일관 억설(臆說)로써 허구의 소설을 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주는 산서성 남부와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를 가리키는 말이고 광녕은 하내에 있는 수무현 동남이며 광녕의 좌측이 유주이고 광녕의 우측이 영주임은 제2장 제1절에서 <그림 1>, <그림 2>, <그림 3>, <그림 4>, <그림 5>에서 이미 밝힌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고 다음 <그림 11>로 광녕의 우측이 영주라는 지도만 제시하고자 한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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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25부
5. 동북사의 범위와 시대 구분
“민족사의 범위는 민족과 자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민족을 기준으로 보면 상고시대부터 한위(漢魏)에 이르기까지는 한족이 동북 지방을 개발한 시기가 된다. 예컨대 기자(箕子)가 동쪽으로 조선에 봉해졌던 일과 진개(秦開)가 동호(東胡)를 격파한 일, 한 무제가 4군을 설치한 일, 조조(曹操)가 오환(烏桓)을 크게 무찌른 일, 공손강(公孫康)이 대방군(帶方郡)을 개척하여 설치한 일,
관구검(毌丘儉)이 고구려를 토벌한 일이 모두 한족이 동북지역을 개발한 큰 사건으로 특별히 크게 기록할 가치가 있는 일들이다”라고 하면서 기자, 동호격파, 한사군설치, 오환, 대방군, 관구검의 고구려 침략 등을 거론하면서 그가 주장하는 동북지역인 요녕, 길림, 흑룡강, 열하성에 마치 조선과 고구려가 위치했던 것처럼 말하고 있다. 김육불의 견해가 옳은지를 함께 살펴보자.
첫째, ‘기자조선은 허구’이므로 논평을 생략한다. 조선이라고 할 때는 연(북연)의 진개가 빼앗았다는 단군조선(변한)과 한 무제가 멸했다는 위만조선으로 이 두 조선은 같은 곳의 조선임으로 조선의 강역을 고증하면 김육불이 주장하려고 하는 동북지역인 열하, 요녕, 길림, 흑룡강성에 조선이 위치했는지가 밝혀질 것이다.
<史記(사기)/朝鮮列傳(조선열전)>에 “한(漢)이 일어났으나 그곳이 너무 멀어 지키기 어려워 요동의 옛 요새를 다시 수리하고 패수(浿水)에 이르러 경계로 삼아 연(북연)에 속하게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패수가 조선과 연의 경계였다는 것이다.
<隋書(수서)/高[句]麗(고구려)>조에는, “나라의 도읍지는 평양성으로 장안성(長安城)이라고도 하는데, 동서가 6리이며 산을 따라 굴곡이 지고 남쪽은 패수에 닿아 있다”라 하여 고구려의 남쪽 경계도 패수라는 것이다. “해마다 연초에 패수 가에 모여 놀이를 한다”는 것은 패수가 고구려의 평양성과 가까운 곳임을 알 수 있다.
<新唐書(신당서)/高句麗傳(고구려전)> 역시 “산의 굴곡을 따라 외성(外城)을 쌓았으며, 남쪽은 패수와 연해 있다”라고 적고 있다. 이들 세 정사(正史)가 모두 조선과 고구려의 남쪽에 패수가 위치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어 조선과 고구려의 강역이 같은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패수의 위치 확인은 고구려와 단군조선의 영역을 밝히는 단서가 되는 것이다.
<水經(수경)>에서 “패수는 낙랑(군) 루방(현)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임패현을 지나 동쪽으로 해(海: 황하)로 들어간다”라고 하여 패수가 황하로 들어간다고 설명하고 있다. <說文解字(설문해자)>에는 “패수는 낙랑(군) 루방(현)에서 나와 동쪽으로 해(海: 황하)에 들어간다”라고 하여 역시 패수의 물이 황하로 들어감을 나타내주고 있다.
<水經注(수경주)/十三州志(십삼주지)>에는 “패수가 낙랑(군) 루방현을 나와 동남으로 임패현을 지나 동쪽에서 바다(황하)로 들어간다. ... 패수현은 낙랑의 동북에 있고, 루방현은 낙랑군의 동쪽에 있다. 패수가 그 남쪽에서 나와 루방을 지난다. 옛 연나라 사람 위만이 패수 서쪽에 있는 조선까지 갔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수경주>에서도 역시 패수는 동쪽에서 황하로 들어간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조선은 패수의 서쪽에 있다고 적고 있다. 또한 “전국시대에 위만이 왕으로 왕험성에 도읍했으며 땅이 수 천리였다. 그 땅은 지금 고구려가 다스리는 땅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수경주>에서도 <수서>와 <신당서>처럼 조선과 고구려의 강토가 같은 곳임을 알 수 있다는 대목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내용을 종합하면 황하로 들어가는 패수가 발원하는 산서성과 하내 일대가 조선의 땅이었고 그 땅은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그러므로 조선과 고구려의 영토는 산서성이다. 김육불의 주장이 또 잘못된 것으로 입증되는 대목이다. 살펴본 기록들을 종합하여 패수의 위치를 그림으로 표시하면 다음 <그림 12>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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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p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