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支那)대륙의 감숙성(甘肅省) 삼위산(三危山)에서 길림성(吉林省)과 함경북도에 위치한 태백산(太白山: 백두산 장백산 묘향산 불함산-이두어로 해와달이 넘나든다는 뜻) 사이인 동북아시아에 많은 사람들이 약 10만년 전부터 살고있었다.
이들은 고산족(高山族)이면서 유목민으로 유목생활(遊牧生活)을 하였다. 그 증거로서 유목민들이 사용했던 빗살무늬 토기 분포 지역이 한반도의 수양개, 연해주, 바이칼, 홋가이도 등 동북 아시아 지역이다.
한반도 남해에서 약 6000년전의 신석기시대 인골이 발견된 바 있고, 하북성 북경지역에서 하토원인이 살았는데 이들은 10만년 전부터 세석(細石: 석기시대의 사냥도구)을 사용했다. 약 7000년 이상의 것으로 여겨진 포파노바 인골이 바이칼호수 근처에서 1988년에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황하강 이남에서는 아직까지 빗살무늬 토기나 석기시대의 인골이 발견된 바 없다. 이것은 단적으로 최초에 인간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요동(遼東) 즉, 동북아시아에서 살았다는 증거이다.
1.민족의 이동상태
동이배달한민족(東夷培達韓民族)은 고산족으로 유목민이며 사냥을 하고 농사를 짓고 살던, 광명(해)를 숭배한 민족으로 동으로 계속 이동해 온 동이(東夷)로, 하늘(一)에서 내려온 활(弓)을 잘 다루는 사람(人)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1만1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살고 있었던 민족이다. 지나(중국)민족은 동북아시아 즉 우리쪽에서 지나대륙으로 들어간 동이배달한민족의 방계나 지족(支族)이 이룬 민족이다.
2. 씨족사회가 다르다 우리는 부계사회(父系社會)로 이어지는 장자나 장손, 적자나 적통쪽의 민족사인 반면에, 지나는 모계사회(母系社會)의 씨족관에서 서자나 방계들이 들어가 나라를 세운 제후국들이다. 지나대륙의 왕조는 모계사회로 주를 이룬다. 그 증거로 현재도 지나는 여자들이 사회적으로 득세하고, 반대로 동이배달한민족은 남자들의 권위가 여자들보다 우위에 있는 남존여비의 전통적인 사회였다.
3. 국호(國號)가 다르다우리는 천자국(天子國)으로서 국호가 반드시 2글자 이상으로 되어 있다. 환국(桓國)(정통국)(BC 8936), 배달국(培達國)(BC3898), 단군조선(壇君朝鮮) (BC2333), 북부여, 동부여, 남부여, 졸본부여, 고구려(高九麗)(BC231), 백제(百濟)(BC213), 신라(新羅)(BC57), 가야(加耶)(42), 발해(대진국)(698), 진한, 마한, 변한, 진조선, 변조선, 막조선, 고려(高麗)(918) 식으로 반드시 2글자이상으로 되어있다.
지나는 요(당), 순(우), 하, 상, 은, 주, 노, 위, 정, 진(秦), 조, 체, 연, 송, 제, 진(晉), 초, 진(陳), 한, 수, 당, 송, 요, 금, 원, 명, 청(이러한 외자이름은 제후국임을 암시한다.
사실 춘추 전국시대때 이들은 제후 공(公)이나, 제후 후(侯)로 불렀다. 천자국의 제후란 뜻이다.) 물론 요, 순, 하, 은(상), 주 초기 까지도 단군조선(壇君朝鮮)의 제후국이였다.
한가지 예를들면 금(金)나라 청(淸)나라는 여진족이 세운 나라다. 女眞奴奉高麗(여진노봉고려) “ 여진은 종으로 고려를 섬겼다.” 송(宋)나라때 서긍이 쓴 <고려도경>의 기록이다.
女眞以高麗爲父母之邦(여진이고려위부모지방) “ 여진이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겼다.” 라고, 김경조의 국서로 <고려사>에 실린 기록이다.
그러던 것이 兄大金皇帝致書于弟高麗國王(형대금황제치서우제고려국왕) “ 형 대금황제가 글을 아우 고려왕에게 보낸다.” 이것 또한 <고려사>에 실린 국서인데, 비록 제후국이라 하더라도 힘이있어 나라가 부강해지면 주객이 뒤바뀌어, 형제의 위치도, 부자의 위치도, 그리고 주.종, 주인과 종의 위치도 바뀌는 것이 세상사이고, 세상 인심인 것을 역사(歷史)를 통해 수없이 보아왔다.
1911년 10월 손문이 민족, 민권, 민생의 3민주의를 내세우며 호북성 무창에서 신해혁명을 성공한 후, 그 다음해인 1912년 1월 1일 강소성 남경에 “중화민국”을 건설한다. 지나대륙에서는 4269년만에 최초로 2글자 이상의 국호(國號)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우연이라고 생각하는가? 1,000년 (정확하게 975년) 사직 신라(新羅)가 있었던 곳이 바로 강소성, 절강성, 안휘성, 호북성이였으며, 신라 3대 유리 이사금9년 (32)봄에 6부의 이름을 개정하고, 성(姓)을 내려, 이(李), 최(崔), 손(孫), 정(鄭), 배(裵), 설(薛)이라 했다는 기록이있다. 지나대륙이 왜 갑자기 4269년만에 최초로 4글자의 국호를 만들었겠는가? 손문이 신라의 후예라는 생각은 해보지않는가!
4. 민족사의 조상(祖上) 출발이 다르다
우리는 환인(桓因), 환웅(桓雄), 백이(伯夷: 장자, 장손), 동이(東夷; 광명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여 살던 민족), 단군왕검(壇君王儉)의 후예이다. 특히 동이배달 한민족은 환웅천황(桓雄天皇)인 거발한 환웅의 배달국(培達國: 도를 통한 민족의 나라란 뜻)이 세워진 BC 3898년 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 동이배달한민족의 금년(2010년) 역사역년(歷史歷年)은 5,908년이다.
지나는 3황5제부터다. 3황은 태호복희씨, 염제신농씨, 황제헌원씨 이고, 5제는 소호금천씨, 전욱고양, 제곡고신, 요, 순임금으로, 3황 5제 중, 특히 황제헌원(黃帝軒轅)이 나라를 세운 BC 2697년 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지나(중국)의 금년 역사역년은 4,707년이다. 우리 역사가 지나보다 1201년이 앞선다. 그런데 태호복희씨나 염제신농씨는 배달국에서 서역으로 들어간 사람들이다.
5. 요, 순, 하(夏)때에 단군조선(壇君朝鮮)에서 문화뿐만아니라 글까지도 지나에 들어갔다
단군왕검의 아들 부루(扶婁)가 도산(塗山)(안휘성 회하가흐르는 현 숙주)에서 하(夏)나라 우(禹)에게 홍수를 다스리는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과 글인 금간옥첩 (金簡玉牒)을 가르쳐주었고, 서경 홍범편에 천내석우홍범구주(天乃錫禹洪範九疇)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기자가 단군을 가르켜 천(天)이라하고, 단군조선으로부터 하나라 우임금이 홍범구주를 전수받았다는 내용)
6. 민족의 유전자(DNA)가 다르다
동이배달한민족은 신하가 왕을 살해한 적은 있어도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된 경우는 없다. 반대로 아버지가 자식을 죽이거나 자살하도록 해서 자식이 자살한 경우는 있다. 고구려 2대 유리명왕 류리(BC 203)가 태자인해명(解明)을 자살하도록 해서 21세의 젊은 나이로 자살했고, 고구려3대 대무신왕 무휼(BC 161)이 왕자인 호동왕자더러 자살하라고해서 호동왕자가 자살했다.
지나의 진(秦)나라 진씨왕 정(政)은 아들인 호애(胡亥)에게 살해당했고, 수(隋)나라 양광(양제)이 태자인 형과 아버지인 수문제를 죽이고 왕이 된 자이다. 당(唐)나라 이연의 둘째아들인 이세민이 형과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같이 동이배달한민족은 왕이 되기 위해 자식이 아비를 살해(殺害)하는 패륜은 없다. 이것은 분명 유전자 Deoxyribonucleic Acid (DNA)가 다른게 아닌가.
7. 산해경(山海經)에 나타난 웅상(雄常)의 진실왜곡
大荒之中 有山名曰不咸 肅愼之國 在白民國 北有樹曰 雄常 先八代帝 於此取之(대황지중 유산명왈불함 숙신지국 재백민국 북유수왈웅상 선8대제 어차취지) “크게 거친땅 (만주)가운데 산이있으니 이름하여 불함산이다. 숙신국(단군조선)에 있다. 백민국(백의민족으로 장자이고 동이중제일 으뜸임)의 나라에 있으며, 북쪽에 나무가있는데, 이름하여 웅상이라한다. 팔대제(삼황오제)가 여기서 이 웅상의 나무를 취하였다."(제도나 문물뿐만 아니라 민족의 뿌리가 동이배달한민족 에게서 비롯됐다는 뜻)
동이배달한민족은 원래 수컷(雄)이고, 뛰어난 민족이고, 두목 즉 우두머리 민족으로 배달국을 연 환웅천황(桓雄天皇)을 시조(始祖)로 한 민족이다.
반면에 지나족은 모계사회에서 비롯된 민족으로 암컷을 상징하고 음(陰)을 상징하는 민족이다. 암컷은 수컷을 맞이하고 수용한다. 그래서 그 사실이 수치스러워 진서(晉書: 당나라 방현령이 지음)에서는 웅(雄): 수컷웅)자를 락(락: 글자가없음) (물이름락, 땅이름락)자로 바꿔놓아 전혀 문맥이 맞지 않게 조작을 했다.
요즘 나온 <산해경>에는 先八代帝(선8대제)를 先入伐帝(선입벌제)로 “선인(先人: 먼저살던사람)을 치고 제국(帝國: 황제국)이 되어” 고치고, 於此取之(어차취지)를 于此取之(우차취지) “숙신국을 취하게 되었다”로 완전히 조작, 날조를 했다.
역사는 민족 정기(精氣)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의 역사 에서 교훈을 얻어 같은 실수를 하지않는데 있다. 38년의 일제의 역사왜곡(歷史歪曲)과 날조는 빙산(氷山)의 일각(一角)이다. 중공이 본격적으로 역사연구를 한 것은 1996년부터 강택민 주석때 이붕(李鵬) 총리 주도하에서다. 불과 14년밖에 되지않는다.
지나인들은 지금 이시간에도 동이배달한민족의 민족사를 도둑질하고 있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이 그렇고 탐원공정이 그것이며, 고구려 발해의 역사는 말할 것도 없이 이제는 단군조선(壇君朝鮮)과 배달국(培達國)의 역사까지 자신들의 역사라고 조작(造作)하고 있다.
대만의 장 총통은 1979년 학자 60명을 동원하여 130권의 방대한 백화사기(白話史記)를 집필했다. 자신들의 민족사관(民族史觀)을 바로하기위하여 쓴 중화민국의 최근 정사(正史)이다. 일본은 어떠한가? 독도가 자기네들 땅이라고 엉터리 주장(主張)을 하고 있다.
이런 살벌한 민족사 수호 전쟁에서 대한민국만이, 보수니 진보니, 수구니 혁신이니, 영남이니 호남이니, 여당이니 야당이니, 21세기 신 당파싸움과 헛된 이념공방(理念攻防)으로 국력(國力)을 소진(消盡)하고있으니 통분(痛忿)을 금할 길 없다. 이조 505년동안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 대북 소북 의 당파싸움과 뭐가 다른가.
역사(歷史)을 잃으면 나라도 민족도 망한다. 대한민국 위정자께서는 더 늦기전에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 자랑스런 동이배달한민족사(東夷培達韓民族史)를 주변국에 빼앗기지 않도록 노력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