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문을 내면서
동이배달한민족사 원류의 하나인 기원전 2333년에 세워진 단군조선(壇君朝鮮)을 “단군조선은 신화다”라는 8글자의 짧은 한 문장으로 말살하고 은폐(隱蔽)시킴으로써 민족사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오늘 이 시간까지도 단군조선의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허구의 기자조선이 실존했다고 믿으며 조선이란 국호를 그대로 사용한 도적 위만(衛滿)이 기원전 194년에 속임수로 빼앗은 변한(번조선)을 고조선이란 이름 아래 민족사라고 가르치고 배우고 앵무새처럼 주절대고 있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단군조선에 관한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없는 허구의 엉터리 학위논문들을 발표하게 하며 실력없는 논문심사위원이라 하는 무식한 교수들이 이들 논문들을 심사하고 학위를 수여하는 타락된 관행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고 신화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모든 역사는 허구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라고 아널드 줴이 토인비(Arnold J. Toynbee: 1889-1975)도 말한 바 있다. 단군조선은 신화가 아니다. 신화냐 신화가 아니냐는 단지 통찰력있는 역사학자의 해석상의 문제인 것이다.
연나라 노관의 부하인 위만이 도읍했다는 왕험성(王險城)의 위치에 대해 의견 역시 분분하다. 청말의 양수경과 중공의 김육불은 낙랑군이 평양에 위치했다고 하며 오늘날의 평안남도 평양이 왕험성이라 하고 한백겸도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고 했으며 안정복은 낙랑군이 평양부라 하였다. 정인보는 왕험성이 지금의 요녕성 해성이라 하였고 신채호와 리지린은 요녕성 개평으로 보았으며 윤내현은 왕험성을 하북성 창려 부근으로 비정하고 있는 현실이다.
고대사의 지리지명들을 한반도로 끌어들인 사람들은 조선후기 실학자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문헌사료에 근거하지 않고 제멋대로 소설을 썼다는 점이다. 단군조선에 관한 기록은 넘쳐나게 많다. 물론 단군조선, 삼한,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대진, 고려가 직접 관찬사로 편찬된 역사서는 많지 않다.
그러나 지나(支那)의 문헌사료들을 주밀하게 조사, 검토, 비교, 분석, 교차확인 하면 많은 역사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문제는 대한민국 제도권 식민반도 역사학계의 종사자들이 원전 문헌사료들을 읽지 않고 공부하지 않으며 연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이배달한민족사의 상고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이 우리민족이 세운 나라가 지은 문헌사료들이 많이 전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지나인이지만 탁월한 사학가로서 역사적 내용을 크게 왜곡시키지 않고 사실대로 기록해 준 사람들이 있다. 한나라 사마천(司馬遷), 동한의 조엽(趙曄), 동진의 서광(徐廣), 북송의 구양수(歐陽修), 송의 라필(羅泌), 명나라의 장대(張垈) 등이 남긴 탁월한 문헌들이 없었다면 동이배달한민족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이 요원했을 것으로 믿으며 고인이 된 이들 석학들께 진정어린 감사를 드린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한국의 대통령선거 출마자들의 자질검증 때문에 온 세상과 한국이 시끄럽다. 건강이 제일이요 아는 것이 힘이라 했으니 아무쪼록 모두 건강하게 지내길 바라며 민족사에 관심을 가져 왜곡된 동이배달한민족사의 진실을 밝히는데 동참해 주었으면 바란다.
1차사료와 문헌자료의 고증(考證)에 의해 최초로 밝힌 『壇君朝鮮의 疆域 硏究』가 동이배달한민족사의 진실을 확정짓는 계기가 되었으면 바란다. 본 학술논문 참고자료 중 사서의 순서는 한자 획 순서로 적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정이 있어 원칙을 무시하고 나열하였으니 너그러히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2022년 1월 12일
역사학자 김 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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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2부
壇君朝鮮의 疆域 硏究
金泰瑛*
< 목차 >
I.머리말
II. 동북의 위치
1. 동북과 동북삼성의 차이점
2. 동북에 기주와 유주가 위치
III. 고죽국은 유주에 위치
1. 유주에 요서(군)이 있고
IV. 요동과 요서의 위치
1.황하동쪽은요동서쪽은요서
2.요동에서는 천연 소금이 산출
V. 패수의 위치
1. 단군조선은 패수의 서쪽에
2.패수는 동쪽으로 흘러 황하로 진입
VI.동북인 산서성이 단군조선의 핵심영토
1. 왕검의 왕옥산은 산서성 남부
가. 왕검의 고향 단향은 왕옥산과 패수 부근
나. 예맥조선은 단군조선의 다른 이름
다. 공자가 살고 싶어 한 단군조선
2.평양성,왕험성,왕검성의 위치
가. 평양성
나. 왕험성
다. 왕검성
VII. 백악산 아사달의 위치
VIII. 맺음말
<국문초록>
단군조선의 중심지역과 관련된 국내 학위 및 학술 논문 84편을 모두 검토해본 바 이들의 주장, 비정, 추정은 기존 역사학계의 통설인 요동중심설, 대동강중심설, 이동설, 그리고 요서중심설과 똑같은 것으로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전혀 근거없는 잡설임을 확인하였다.
본고의 목적은 한국 역사학계의 모든 잡설을 종식시키고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단군조선의 강역을 고증하고 확정시키는 것이다. 지명을 밝히는 최초의 문헌사료는 <상서/우공>, <여씨춘추/유시람>, <회남자/지형훈>, 그리고 <주례/직방씨>이다.
이들 문헌사료들을 확인한 바 기주, 유주, 요서, 수양산, 고죽국 등이 동북이라고 하는 황하로 둘러싸여 있는 산서성 남부임을 고증하였다. 산서성 남부에 있던 고죽국이 고구려의 영토였으며 고구려가 평양에 자리했다는 사실을 <수서>, <구당서>, <신당서>, <명사>를 통하여 고증하였다.
<로사>에는 왕검단군의 고향인 단향이 산서성 남부에 있는 왕옥산 부근인 례연에 위치했다고 하며 왕옥산에서 ‘예’라는 하천이 발원하는데 이 ‘예’라는 하천으로 인하여 예맥조선이란 이름이 생겼고 예수를 연수, 제수, 패수 등으로 불렸음을 고증하였다.
<오월춘추>와 <산해경>에 근거하여 왕옥산을 부루산, 부우산, 부부산, 부함산(불함산), 방산 등으로 불렸음을 밝혔다.
패수(예수)는 왕옥산에서 발원하여 남동으로 흘러 동쪽에서 황하로 진입하는 하천이며 <수경/십삼주지>에 “옛 연나라 사람 위만이 패수 서쪽에 있는 조선까지 갔다”란 기록을 확인하였다. 왕검단군의 왕검성은 패수의 서쪽에 있는 원곡이고, 왕험성은 황하변에 있는 조양진이며, 평양은 임분시에 위치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왕검성이 변한의 도성이고 왕험성이 마한의 도성이며 평양이 진한의 도읍지임을 밝혔다. 따라서 단군조선의 핵심지역은 동북인 산서성 남부와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임을 고증하였다. 단군조선의 강역은 주나라가 있던 섬서성 일부를 제외한 아시아 전지역임을 밝혔다.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단군조선의 강역을 고증하였음으로 대한민국의 역사학계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이 왜곡해 온 기존 통설을 즉시 폐기하고 최초로 밝힌 필자의 고증을 정설로 받아들일 것을 주장한다.
주제어: 기주, 유주, 요서, 요동, 하동, 수양산, 노룡, 유수(난하), 고죽국, 고구려, 왕옥산, 부루산, 방산, 부함산, 예수, 예맥조선, 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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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3부
I. 머리말
단군조선(壇君朝鮮)은 BC2333년에 왕검이 개국한 나라이며 고구려의 패망은 668년으로 단군조선의 개국으로부터 4355년 그리고 고구려의 패망으로부터 1354년이란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오늘날까지도 단군조선의 정확한 강역(疆域)을 밝히지 못하고 비정, 추정, 추측으로 일관된 수많은 설(說)이 난무한 것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에서 비롯된 것이라 주장하며 이에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고조선이란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을 함께 지칭하는 것으로 단군조선을 사장(死藏)시키고 허구의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을 부각시키려는 역사왜곡의 일환이었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하며
둘째, 논문을 작성한 사람들은 선행연구자들의 잘못된 논문이나 사실적 근거가 없이 출판된 단행본에 의해 연구해 왔다는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고
셋째, 논문작성자들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조사, 검토, 비교, 분석, 교차확인 하지 않고 단지 선행연구자들과 똑같은 논리를 따랐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하며
넷째, 고고학과 역사학을 분별하지 못하고 깨진 기와장과 벽돌조각이 발굴된 지역이나 또는 진흙으로 만든 봉니(封泥)가 평양시에서 출토되었다고 해서 평양이 고조선의 핵심영토라는 비역사학적 주장에 문제를 제기한다.
조선(朝鮮)이란 이름을 구체적으로 분류하면 왕검조선, 예맥조선, 단군조선, 발조선, 진조선(진한), 막조선(마한), 번조선(변한), 기자조선, 위만조선, 이씨조선, 북조선, 남조선 등 약 12가지로 나눌 수 있으나 후술하겠지만 왕검조선과 예맥조선은 단군조선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따라서 단군조선의 영토안에 진한, 마한, 변한이 있었고 단군조선 땅이 기자조선이라 하고 다시 위만조선으로 바뀌었다 하니, 이씨조선, 북조선, 남조선을 제외한 모든 조선은 단군조선의 범주에 속함이 타당하다.
이씨조선을 포함하여 조선을 기록하고 있는 원전문헌사료는 599종이며, 발조선(發朝鮮)에 관한 기록은 12종으로 모두 611종에 달한다.
단군조선이란 이름이 기록된 문헌사료는 명나라 시기 제작된 저자가 없는 왜곡된 문헌으로 <朝鮮史略(조선사략)>, <朝鮮賦(조선부)>, <朝鮮志(조선지)>가 있으나 특히 지리지명에 대해 왜곡된 부분이 많아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하겠다. 조선을 기록하고 있는 이들 모든 문헌사료들을 주밀하게 검토, 분석, 교차확인 하여 단군조선의 강역을 고증하고 확정하려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며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단군조선의 위치를 최초로 밝혔다는데 본고의 의의를 찾고자 한다.
단군조선의 위치와 관련하여 한국역사학계의 기존 통설은 크게 넷으로 요동중심설(遼東中心說), 대동강중심설(大同江中心說), 이동설(移動說), 그리고 요서중심설(遼西中心說)이 있다.
요동중심설은 단군조선이 요녕성 요하의 동•서부지역에 위치했다고 보는 설로 유형원, 이익, 권람, 홍여하, 이종휘, 신채호, 정인보, 리지린 등의 견해이다.
대동강중심설은 한반도 대동강 지역에 있었다는 설로 북한학계에서 강조한 것이며 정약용, 안정복, 한치윤 등이 속한다.
이동설이란 요동에서 한반도 대동강 유역으로 이동했다고 보는 설로 천관우, 이형구, 김정학 등이 이에 속한다.
단군조선은 처음부터 요서에 위치했었다고 인식한 것이 요서중심설이며 문정창, 윤내현 등의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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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p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