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요동의 소금
<관자/지수>편에 “연[북연]나라 요동에는 구운 소금(煮)이 있다”고 하였고, <사기/조선열전>에는 “한(漢)이 일어났으나 그곳이 너무 멀어 지키기 어려워 요동의 옛 요새를 다시 수리하고 패수(浿水)에 이르러 경계로 삼아 연에 속하게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연나라가 있던 요동에서 소금이 생산되었으며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를 경계로 하여 연나라에 속하게 하였다 하므로 연이 어디에 있었는지 그리고 연의 땅이던 요동에 소금이 산출되었는지를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1. 요동땅의 연(북연)
패수와 경계를 이루는 연은 북연으로 주(周)나라 무왕이 상국인 은(殷)을 멸하고 동생 소공석(召公奭)을 제후로 삼아 다스리던 나라이다. 북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서주 초기에 봉하였으며 희성(姬姓)이고 도읍은 계(薊)이다. 전국시 7웅의 하나이며 기원전 222년에 진(秦)에 의해 멸했다.”
북연의 도읍지인 계에 대하여 “계는 남쪽으로 제(齊)와 조(趙)와 통하며 발해(勃海)와 갈석(碣石) 사이에 있는 큰 고을이다. 사고(師古)의 주해에 의하면 계현(薊縣)은 연[북연]의 수도이다”라고 적고 있다. <사기/화식열전>에서는 “연은 발해와 갈석 사이의 큰 고을이다. 남으로 제(齊)와 조(趙)와 통하며 동북으로 호(胡)와 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의 호는 고구려를 뜻한다.
당시 제(齊)의 도읍은 하남성 정주와 낙양 사이였고 조(趙)의 도읍지는 섬서성 장안(長安)이였다. 북연의 수도 계(薊)가 하남성뿐만 아니라 섬서성과도 가까운 곳에 위치했음을 알 수 있다. 요약하면 연의 도읍지는 ‘갈석과 발해’의 사이에 위치하고 남으로 섬서성 장안의 조(趙)와 통하고 동북으로 호(胡)와 접하는 동서는 길고 남북은 폭이 좁은 강토를 소유한 아주 작은 나라임을 의미한다. 동서가 길고 남북의 폭이 좁은 당시의 북연 강역을 도형으로 표시해보면 대략 아래 <그림 6>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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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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