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이배달한민족 참역사
요서이자 유주에 위치했던 고죽국의 위치를 밝히는 결정적인 하천 유수(濡水)에 대해 알아보자. 유수에 관하여 필자의 논문 제1집 <고구려의 요동 요서 위치에 대한 소고>와 제2집 <고구려의 압록수 위치 연구>』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으나 유수를 구체적으로 지도상에 표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유수와 노룡(새)의 위치에 대해 수많은 설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유수와 노룡(새)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자 하여 본 논문에서 밝히려고 한다. <수경주>에서 유수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유수는 노룡산(盧龍山)에서 나온다. ...연(燕)을 나누어 요서군으로 두었으며 영지에 속한다. <魏土地記(위토지기)>... 비여성 40리에 유수가 있다. 남쪽으로 흘러 고죽성 서쪽을 지나 우측에서 현수(玄水)와 합류한다. 세상에서 소위 말하는 소유수라 하는데 그렇지 않다.”라고 적고 있다.
<수경주>는 후위(북위: 386-534)의 역도원(酈道元: 470-527)이 연창(延昌) 4년(515)경에 지은 것으로 후한말의 학자인 상흠(桑欽: 8-25)이 지은 <수경>에 주석을 단 지리서이다. 주석을 다는 과정에서 상흠의 <수경>과는 다소 다른 부분이 감지되고 있어 역도원의 고의이거나 후대의 왜곡이 아닌가 생각한다.
<수경주>의 유수를 자세히 읽어보면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기 위해 주로 동서남북의 방향을 바꿔 알지 못하도록 조작한 곳이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고 기주, 유주, 요서에 위치해야 할 하천들이 오늘날의 하북성이나 요녕성으로 옮겨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나무만 보지 않고 숲을 보면 감추어진 사실들을 명확하게 찾을 수 있다. 지금부터 필자가 제시한 유수의 발원지, 유수, 노룡(새) 등과 관련하여 <수경주>의 왜곡 여부를 각자의 판단에 맡기고자 한다. 불행하게도 상흠이 지었다는 <수경>은 현존하지 않는다.
다음은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의 기록이다. “흑룡산... 즉 옛 유수이며 오늘날의 난하다. 구양수(歐陽修)는 즉 요나라 때의 더위를 피해 찾는 탄산(炭山)이다. 탄산조를 보라”고 하였고 “탄산: 요나라 시기 더위를 피해 찾는 지역이다. 살펴보건데 탄산의 이름이다. 요나라 때 가장 잘 알려진 곳이다. 이로부터 나온 모든 설은 같지 않다.
구양수가 이르길 난수(난하)가 탄산 동북에서 나온다고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옛 유수이며 지금의 난하가 흑룡산이나 노룡산에서 발원한다 하였는데, 유감스럽게도 오늘날의 산서성 남부에 ‘룡(龍)’자가 들어간 지명을 찾아볼 수 없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과 <중국역사지명대사전>에는“흑룡관(黑龍關)”, “흑룡담(黑龍潭)”, “흑룡동(黑龍洞)”, “흑룡언(黑龍堰)” 등 “룡“자가 들어있는 지명들이 있다. 함께 살펴본 바와 같이 역도원은 <수경주>에서 “노룡산에서 유수가 발원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은 “흑룡산에서 발원한다”고 적고 있다.
산서성 남부에 ‘흑룡’이 들어간 지명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노룡산’ 보다는 ‘흑룡산’의 기록에 더 신뢰감이 간다. 아무튼 유수의 발원지가 ‘흑룡산’과 ‘노룡산’으로 서로 다르지만 이 유수라는 하천은 난하라고도 하고 역수(易水)라고도 불렸으며 오늘날의 속수(涑水)임을 알 수 있다. 노룡새는 요서 영지현 고죽성 서쪽으로 흐르는 유수가 현수와 만나는 곳이다.
지금까지 내용을 종합하면 수양산이 있는 산서성 남서부 즉 기주, 유주, 요서, 때로는 영주, 동북지역, 북연이 위치했던 바로 이곳에 유수가 있고 현수가 만나는 바로 그 곳이 노룡(새)이며 이 유수를 난하라고도 하였고 역수라고도 하였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지도상에 유수, 현수, 흑룡산(탄산), 노룡(새)의 위치를 표시하면 다음 <그림 7>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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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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