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와 영주의 위치 연구(제9부)
2. 기주가 유주
9주의 위치를 동서남북의 방향으로 표시하고 있는 <주례직방씨>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동남은 양주(揚州), 남쪽은 형주(荊州), 황하의 남쪽은 예주(豫州), 동쪽은 청주(靑州), 황하의 동쪽은 연주(兗州), 서쪽은 옹주(雍州), 동북은 유주(幽州), 하내는 기주(冀州), 북쪽은 병주(幷州)라 부른다.”
라고 하여 동북방향을 유주라 부르고 있다. 직방씨는 ‘천하의 지도(地圖)를 관리하는 곳’으로 주나라 당시 서주(西周)의 도읍지인 섬서성 호경(서안)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방향을 나타낸 것이다. <주례직방씨>에 의하면 <상서/우공>과 <여씨춘추/유시람>에서 언급한 기주인 산서성 남부가 유주가 되고 하내(河內) 즉 황하북부 하남성은 그대로 기주임을 알 수 있다. 이해를 쉽게 하기위해 아래 <그림 5>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런데 “우공(禹公)이 물을 다스린 후에 순(舜)임금이 기주를 나누어 유주와 병주로 하였다”라고 기술하고 있어 기주인 산서성 남부를 유주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순이 기주를 나누어 만든 유주와 <주례직방씨>의 유주가 같은 지역임을 앞의 <그림 5>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주는 섬서성 서안에서 본 동북방향으로 오늘날의 산서성 남부를 가리키고 있다.
동북지역이 유주라고 기록하고 있는 문헌사료는 <書蔡氏傳旁通(서채씨전방통)>, <五禮通考(오례통고)>, <禮書綱目(예서강목)>, <周官集注(주관집주)>, <周禮纂訓(주례찬훈)>, <周禮述註(주례술주)>, <欽定周官義疏(흠정주관의소)>, <周禮註疏刪翼(주례주소산익)>, <周禮全經釋原(주례전경석원)>, <周禮傳(주례전)>, <周禮集說(주례집설)>, <周禮訂義(주례정의)>,
<周官總義(주관총의)>, <周禮詳解(주례상해)>, <周官新義(주관신의)>, <周禮註疏(주례주소)>, <禹貢錐指(우공추지)>, <禹貢長箋(우공장전)>, <陳氏尙書詳解(진씨상서상해)>, <尙史(상사)>, <逸周書(일주서)>, <遼史(요사)>, <晉書(진서)>, <前漢書(전한서)>, <山東通志(산동통지)>, <畿輔通志(기보통지)>, <欽定滿洲源流考(흠정만주원류고)>, <大淸一統志(대청일통지)>, <圖書編(도서편)>, <玉海(옥해)>, <群書考索(군서고색)>, <藝文類聚(예문유취)>, <玉芝堂談薈(옥지당담회)>, <春明夢餘錄(춘명몽여록)>, <唐開元占經(당개원점경)>, <欽定授時通考(흠정수시통고)>, <讀書劄記(독서차기)>, <元朝典故編年考(원조전고편년고)>, <歷代帝王宅京記(역대제왕택경기)>, <春秋分記(춘추분기)>, <皇王大紀(황왕대기)>, <經稗(경패)>,
<大淸一統志(대청일통지)>, <十一經問對(십일경문대)>, <通典(통전)>, <書纂言(서찬언)> 등 모두 46종에 이른다. 요약 정리하면 동북(東北)이라 지칭한 오늘날의 산서성 남부를 유주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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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와 영주의 위치 연구(제10부)
지금까지 함께 살펴본바와 같이 <여씨춘추>에서 유주(幽州)라는 지역이 최초로 등장하고 있다. 인용문에서 “북방으로 유주이며 연(燕)나라” 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서안(西安)이나 낙양에서의 북방은 산서, 섬서, 하남성이 서로 만나는 황하가 ‘ㄴ’자처럼 꺾이는 지역이며 유주가 연나라 땅이라 하였는데, <통전>에 “지금의 노룡현에는 옛 고죽성이 있고 백이숙제의 나라였다. 전국시 연에 속했다. 진(秦)나라의 우북평과 요서 두 개의 군(郡)이다. 진(晉)나라 때는 요서군이다. 후위(後魏) 역시 요서군이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약하면 고죽국의 땅을 요서라고 하였는데 전국시 연나라의 영토라는 것이다. “북방으로 유주이며 연이다”고 하였고 “고죽성이 있는 백이숙제의 나라로 전국시 연에 속했다”고 하였으므로 유주가 백이숙제의 나라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그렇다면 유주의 정확한 위치를 재확인하기 위해서 고죽국의 위치가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한서/지리지>에 “요서군은 진(秦)나라 때 설치한 것으로 유주(幽州)에 속하며 영지에 고죽성(孤竹城)이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후한서>도 “요서군 영지에 고죽성이 있으며 백이숙제의 나라다”라고 적고 있다. <설문해자>에서 허신은 “수양산은 요서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들 세 문헌을 종합하면 유주가 요서이며 백이숙제의 나라이고 수양산이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사기집해>의 기록이다. “집해에서 마융이 말하기를: 수양산은 하동(河東) 지방의 포판(蒲坂)에 있는 화산(華山)의 북쪽에 있고 황하가 꺾여 흐르는 곳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화산은 섬서성 서안 동북에 있는 산이며 하동은 황하 동쪽의 산서성을 뜻한다. 정리하면 산서성 남서부의 한 지역을 포판이라 하였고 그곳에 백이숙제의 나라 고죽국의 상징인 수양산이 위치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고죽국이 있던 요서이자 유주의 위치를 확정지을 수 있는 결정적인 자연지형물이 바로 유수(濡水)와 수양산(首陽山)인데 당나라의 지리서인 <원화군현도지와 <괄지지>는 “중조산이 수양산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수양산인 오늘날의 중조산이 있는 산서성 남서부가 유주이자 요서이며 고죽국이었고 한때는 연나라 땅이었으며 하동이자 기주였다로 정리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그림으로 표시하면 다음 <그림 6>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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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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