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道(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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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辶(착: 책) + 首(수: 머리) = 道 (머리맡에 책을 쌓아두고 책을 가까이 하면서 열심히 공부를 하면 깨달음과 지혜를 얻는다.)
<자전상의 정의>: 金文은 行+首(音). 또, 行+又+首(音).‘行행’은‘길’을 본뜬 것. ‘首수’는 ‘목’의 象形. 이민족의 목을 묻어 정화된 길의 뜻을 나타냄. 篆文은 金文의 ‘行’부분이 ‘辵착’이 됨. 파생하여, 사람이 지키고 실천해야 할 바른 길, ‘도리’의 뜻을 나타냄. 또, 조리있게 말하다의 뜻도 나타냄.
*해설:
노자의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도는 가히 옳은 도이며 비상한 도다. 이름도 가히 옳은 이름이며 비상한 이름이다.” 노자(老子)는 그의 저서 <도덕경>에서, 도는 도다 비상한 도다. 이름은 이름이다 비상한 이름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2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왕필(王弼)이 지은 <왕필의 노자>와 1774년에 태어난 조선 후기의 홍석주가 지은 <홍석주의 노자>를 비롯하여 모두 100종이 넘는 노자의 <도덕경>을 읽어보았는데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을 제대로 해석한 사람은 오직 이중재 한사람 뿐이였다.
다른 이들의 해석은 “도가 도로 여겨지면 상도가 아니고, 이름이 이름으로 여겨지면 상명이 아니다”, “도를 말로 하면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지어 부르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도라고 할 수 있으면 항구한 도가 아니고 이름을 이름이라 할 수 있으면 항구한 이름이 아니다”, “도는 말할 수 있다면 한결같은 도가 아니며, 이름은 이름할 수 있다면 한결같은 이름이 아니다” 등등 말도 되지 않은 엉터리 해석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해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해석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들의 비논리적 해석의 원인은 도(道)와 명(名)의 참뜻을 알지 못한 무지의 소치로 인한 것이다. 하기야 공자도 도(道)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거늘 누구를 탓할까. 도는 학문을 통해서 얻어지고 학문은 책을 통하여 체계화되며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율곡 이이(李珥: 12/26/1536-1/16/1584) 어른이 지은 <성학집요>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三代精專讀書時求道(삼대정전독서시구도) 삼대를 통해 열심히 학문을 익혀야 도를 얻을 수 있다.” 책을 통하여 도를 통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나타내주는 문장이다. <맹자>에 의하면, “君子之志於道也 不成章不達(군자지지어도야 불성장불달) 군자가 도에 뜻을 두었으나 학문을 이루지 못하면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다”라고 하여 득도(得道)의 어려움을 말해주고 있다.
노자(老子), 이이(李珥), 맹자(孟子) 모두 도(道)를 얻는 일이 쉽지 않음을 잘 웅변해주고 있다. 똑같은 주제의 책을 수 만권 읽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양한 주제의 서적을 두루 섭렵해야 도를 통하게 되고 깨닫게 되며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도(道)의 뜻으로 ‘길도’란 책을 많이 읽어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길이란 의미이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길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설문해자>를 지은 허신은 “도는 다니는 길이다(道, 所行道也)”라고 해설하였다. 한자가 한(漢)나라나 지나의 글자가 아니라는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도를 얻은 사람은 가장 큰 세 가지의 탐욕이 사라진다. 첫째, 음식에 대한 탐욕이 없어지고 둘째, 쎅스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며 셋째, 물욕에 대한 탐욕이 사라진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은 아직 도를 통했다 할 수 없는 것이다.
뜻글자인 한자(韓字)의 심오한 철학사상을 알지 못하고 도(道)란 글자를 잘못 사용한 예가 많아 보인다. 예를들면 태권도(跆拳道), 합기도(合技道), 검도(劍道) 등의 도(道)가 그 한 예라 하겠다. 도(道) 대신 술(術)이나 기(技)를 사용하여 태권술(跆拳術), 태권기(跆拳技), 검술(劍術), 검기(劍技), 합기술(合技術)이라 해야 옳다. 지혜(智慧)의 본성인 식(識)은 학문 즉 책을 통해서이지 육체적인 기술을 연마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도(茶道)의 도(道) 역시 잘못 사용된 또 하나의 예이다. 차를 만드는 법이나 차에 관한 예의뿐만 아니라, 아무리 차를 많이 마셔도 그리고 여러 종류의 차를 즐겨도 지혜를 얻는 일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책을 가까이하여 열심히 학문에 정진하면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진리가 다름아닌 도(道)인 것이다.
*글자뜻:
(1) 길도 (2) 순할도 (3) 구역이름도 (4) 말할도 (5) 말미암을도 (6) 다스릴도 (7) 인도할도 (8) 부터도 (9) 책을 통하여 깨달음과 지혜를 얻을 도(필자의 주장)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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