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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김의 한민족 참역사
망국적인 식민사관에 언제까지 휘둘릴 것인가. 우리 민족의 참된 역사, 진실된 역사를 알리기 위해 평생을 싸워온 재야 사학자. 현재 뉴욕을 기반으로 한민족사관정립의식개혁회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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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발해)의 강역 연구 - 제71~75부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5-12-08 (월) 23:17:03


3. 정리부 위치

정리부(定理府)는 옛 읍루의 땅으로 정주(定州), 반주(潘州) 두 주를 관할한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 기록된 정주를 살펴보자.

“정주는 전국시 중산국(中山國) 땅이다. 한나라가 중산국을 두었다. 관할은 로노현(盧奴縣)이다. 후에 위나라가 중산군이라 했다. 군(郡)에서 정주로 했다. 고제(高齊)가 주를 고쳐 로노현에서 관할하고 안희(安喜)라 했다. 수나라가 정주를 고쳐 박릉군(博陵郡)이라 했다. 당나라 역시 정주라 하고 송나라는 승격하여 중산부로 했다. 명나라 초기 다시 정주로 고쳤다. ...청나라가 직례주라 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중산국을 찾아보자. “춘추시기 선우국(鮮虞國)이다. 전국시기 중산국이라 했다. 후에 위(魏)나라가 멸한 곳이다. 지금의 직례 정현(定縣)이다”라고 했다.

정현을 찾아보자. “한나라의 후국이다. 후한이 생략했다. 옛 성은 지금의 직례 창현(滄縣) 동남에 있다”라고 적고 있다.

창현을 살펴보겠다. “창현은 1913년에 창주를 내려서 설치했다. 치소는 즉 지금의 하북성 창현(滄縣)이다. 창주시와 함께 같은 성(城)이 관할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창주는 하북성에 있는 지명으로 오늘날의 발해만 가까운 지역이며 이곳이 바로 대진의 정리부가 위치했던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이제 반주(潘州)의 위치를 추적해 보도록 하자. “반주는 당나라가 두었으며 즉 지금의 광동성 무명현(茂名縣)이 관할한다. 송나라가 설치했으며 사천성 송반현(松潘縣) 북 480여리 이다”라고 기술하고 있으나 광동성이나 사천성은 대진의 강역이 될 수 없는 지역으로 무시하겠다.

반주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단서로 반영(潘營)이란 지명이 보인다. “반영은 직례 려현(蠡縣) 북쪽에 있다. 서쪽으로 청원현(淸苑縣) 경계와 접한다”라고 적고 있다.

청원현의 위치를 찾아보자. “청원현은 후위가 설치했다. ...원나라는 직례 보정로(保定路)에서 관할하게 했다. 청나라는 직례성에서 관할하게 했다. ...지금의 직례 보정도(保定道)에서 관할한다. 경한철로가 지나간다.”

“보정도는 신해혁명 후에 설치했으며 치소는 청원현이다. (지금의 하북성 보정시)다. 곧 폐지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함께 살펴본 내용을 정리하면 정리부가 통치하던 정주는 오늘날의 하북성 창주이고, 반주는 지금의 하북성 보정시로 요약된다. 따라서 함께 살펴본 내용을 종합하여 대진의 정리부를 지도에 표시하면 다음 <그림 29>와 같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에서

 

<대진(발해)의 강역 연구> - 제72부

4. 동평부 위치

동평부(東平府)는 불녈(拂涅)의 옛 땅으로 이주(伊州), 몽주(蒙州), 타주(沱州), 흑주(黑州), 비주(比州)의 5주를 통치한다.

“불녈부는 물길 7부의 하나로 지금의 길림성 영안현(永安縣)으로부터 북쪽 일대이다. <길림통지>에 의하면 지금의 영고탑성 서남 80리에 옛 성(城)이 있다”라고 기술하고 있으나 필자는 동의할 수 없다.

첫째, 읍루를 물길이라 부른 것으로 읍루지역은 동모산과 홀한성이 있는 황하강 일대를 지칭하고

둘째, 후술하겠지만 동평부가 통치한 5주의 대부분이 황하강 주위의 하남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동평부가 관할한 5주의 위치를 하나씩 추적해 보도록 하자.

이주(伊州)의 위치를 살펴보자. “수나라가 두었으며 이름을 바꾸어 여주(汝州)라 했고 또 개명하여 양성군(襄城郡)이라 했다. 당나라가 다시 이주라 했다가 개명하여 여주라 했다. 지금의 하남성 임여현(臨汝縣)에서 관할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임여현은 하남성 낙양 남쪽 여양(汝陽) 동남, 여주(汝州) 서북에 위치하고 있다.

몽주(蒙州)를 찾아보자. “몽현(蒙縣)은 춘추 송몽택(宋蒙澤)이다. ...옛 성(城)은 지금의 하남성 상구현(商丘縣) 동북 22리이다”라고 하였다. 상구현에서 동북 방향은 산동성 발해(동해) 지역을 일컫는다.

타주(沱州)에 대한 기록은 없고 대신 타구(沱溝)란 지명이 보인다. “타구는 한남성 언성현(郾城縣) 동남 55리에 있다. 여수(汝水)의 다른 갈래이다”라고 적고 있다. 여수라는 하천 때문에 임여, 여양, 여주 등이 이름이 생긴 것으로 하남성에 위치한다.

흑주(黑州)에 대해서 알아보자. 흑주란 지명은 보이지 않고 대신 단서를 찾을 수 있는 흑산(黑山), 흑하(黑河), 흑성천(黑城川) 등의 지명이 나타난다. 차례대로 확인해 보겠다.

“흑산은 하남성 준현(濬縣) 서북 70리에 있다.” “흑하는 옛 곽수(瀖水)다. 하남성 록읍현(鹿邑縣) 남쪽에 있다. 자하(茨河)로 들어간다.” “흑성천은 지금의 니하(泥河)다. 니하조를 보라”라고 기술하고 있다. 정리하면 이들 모든 지명은 하남성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비주(比州)를 찾아보자. “비양현(比陽縣)은 역시 비양(沘陽)이라 한다. 한나라가 설치했고 고성(故城)은 지금의 하남성 필양현(泌陽縣) 서쪽이다. 수나라가 옮겨 지금 관리한다. 명나라가 필양(泌陽)으로 개명했으며 지금의 필양현에서 관할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료비판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우선 글자를 심(沁)을 필(泌)로, 준(濬)을 준(浚)으로, 언(匽)을 언(偃)으로 바꾸면서 왜곡한 흔적이 보인다. 함께 살펴본 바와 같이 이들은 모두 하남성에 위치한 지리지명들 이다.

동평부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자. “동평부는 당나라 시기 발해가 두었다. 이주, 몽주, 타주, 흑주, 비주 다섯 주(州)를 통치했다. 옛 성은 지금의 길림성 영안(寧安)과 의란(依蘭) 사이이다. 송나라가 설치했다. 동평군 조를 보라”고 적고 있다. 우선 길림성에 있다는 것은 역사왜곡으로 수용할 수 없다. 앞에서 함께 확인한 이주, 몽주, 타주, 흑주, 비주 등의 지리지명이 길림성에 있었다는 기록이나 현대 지도에도 이들 지명들이 길림성에는 없다는 이유를 제시한다.

동평군조를 검토해 보자.

“동평군은 한나라 동평국이다. 무염(無鹽)에서 관할했다. 산동성 동평현 동 二十里에 있다. ...당나라가 운주(鄆州)로 옮겨 래현(來縣)에서 관할했다. 동평군으로 개명했다. 송나라가 동평부라 했다. 원나라는 동평로라 하고 명나라는 낮춰 주라고 했다. 즉 지금의 산동성 동평현에서 관할한다. 수나라가 두었다. 당나라가 폐지했다. 고치(故治)는 지금의 산동성 운성현 동 16리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종합하면 산동성 운성현(鄆城縣)이 대진의 동평부로 확인된다. 따라서 다음 <그림 30>과 <그림 31>에서 동평부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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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발해)의 강역 연구> - 제73부

5. 안원부 위치

안원부(安遠府)는 영주(寧州), 미주(眉州), 모주(慕州), 상주(常州) 4주를 통치한다.

영주의 위치를 찾아보자. “서위(西魏)가 설치했다. 수나라가 폐지하고 당나라가 다시 두었다. 바꾸어 팽원군(彭原郡)이라 했다. 즉시 다시 영주라 했다. 송나라가 영주팽원군이라 했다. 정안(定安)에서 관할한다. 원나라는 생략하고 정안현을 주에 편입시켰다. 청나라는 감숙성 경양부(慶陽部)에 속하게 했다. 중화민국이 다시 개명하여 영현(寧縣)이라 했다”라고 적고 있다. 영주, 팽원군, 경양부 등으로 지명이 바뀌지만 감숙성에 위치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미주의 위치이다. “미현은 주나라의 미읍(眉邑)이다. ...한나라가 미현을 두었으며 옛성은 지금의 섬서성 미현 동북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다음은 모주이다. “요나라가 두었다. 지금의 조선 평양 서쪽 200리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정확한 위치를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틀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단군조선(고구려)의 평양성이 있던 임분에서 서쪽으로 200리이면 안원부가 있는 감숙성 경양의 동쪽으로 섬서성의 어느 지점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주(慕州)는 평양과 안원부 사이의 한 지역으로 안원부에서 관할할 수 있는 주(州)임에 틀림없다.

상주에 대해서 알아보자. 유감스럽게 상주에 대해 “지금의 강소성 무진현(武進縣)이다”라고 적고 있으나 당시 강소성(江蘇省)은 신라의 핵심 영토로 대진의 강역과는 전혀 다른 곳이니 믿을 수 없다. 그러나 안원부가 다스릴 수있는 가능성이 있는 감숙성이나 섬서성 내에 상주의 위치로 보이는 단서가 있다.

“상분현(常芬縣)은 수나라가 두었다. 당나라는 그대로 따랐다. 옛 관할은 지금의 감숙성 임담현(臨潭縣) 서남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상가산(常家山)은 감숙성 적도현(狄道縣) 서남에 있다”라고 했는데 지명을 찾을 수 없다.

“상도성(常道城)은 경조 안차현(安次縣) 서북에 있다”라고 적고 있으나 역시 지명을 찾을 수 없다. 정리하면 감숙성 지금의 경양(慶陽)이 안원부로 요약된다. 지금까지 이용 가능한 기록에 근거하여 안원부의 위치를 나타내면 다음 <그림 32>, <그림 33>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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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발해)의 강역 연구> - 제74부

6. 회원부 위치

회원부(懷遠府)는 월희(越喜)의 옛 땅이다. 달주(達州), 월주(越州), 회주(懷州), 기주(紀州), 부주(富州), 미주(美州), 복주(福州), 사주(邪州), 지주(芝州)의 9주를 통치한다.

“달주는 즉 지금의 사천성 달현이다.” “달현은 한나라가 선한현(宣漢縣)을 두었으며 후위가 석성(石城)이라 개명하고 현(縣)을 통주(通州)에 설치했다. 원래 사천성 동천도(東川道)에 속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의 대진의 강역은 사천성이 될 수 없음으로 동의할 수 없다.

월주를 살펴보자. “월부는 남조 송나라가 회계군(會稽郡)을 동양주(東揚州)로 설치했다. 수나라가 오주(吳州)로 개명했다. 또 바꾸어 월주라 했다. 곧 회계군이라 했다. ...즉 지금의 절강성 소흥현(紹興縣)이 관할한다”라고 말하고 있으나 절강성은 신라의 영토로 대진의 강역이 될 수 없으므로 따를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월(越)이란 지명의 근원을 찾아보아야 한다. “월은 주(周)나라 국명으로 사성(姒姓)이다. 자작이며 하나라 소강의 후손이다. ...옛 성은 지금의 산동성 제성현(諸城縣) 동남140리에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월이라는 지명이 예부터 산동성에 있던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은 회주(懷州)의 위치를 추적해 보겠다. “회주는 후위(後魏)가 두었다. 야왕(野王)에서 관할한다. 즉 지금의 하남성 심양현(沁陽縣)에서 관할한다. 수나라가 하내군이라 했다. 당나라가 제원 서남에 있는 백애성(柏崖城)에 회주를 두었다. 즉시 옮겨 야왕성에서 관할했다. 금나라가 남회주라 했다. 후에 급히 회주라 했다. 원나라가 회경로(懷慶路)라 했다. 명나라는 회경부라 했다. 즉 지금의 하남성 심양현에서 관할한다”라고 하여 대진의 동모산이 있던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에 있는 심양을 일컫는 말이다.

다음은 기주에 대해서 알아보자. “기(紀)는 주나라 국명이다. 강씨 성으로 후작이다. 춘추 시기 제(齊)에게 멸했다. 지금의 산동성 수광현(壽光縣) 남쪽이다”라고 하여 기주가 산동성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주의 고치(故治)는 즉 지금의 광서성(廣西省) 소평현(昭平縣)”이라 하지만 광서성은 당시 대진의 강역과는 멀리 떨어진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대신 부평현(富平縣)이란 지명을 살펴보자.

“부평현은 한나라 후국이다. 후한이 개명하여 염차(厭次)라 했다. 지금의 산동성 양신현(陽信縣) 동남이다”라고 적고 있다.

미주(美州)에 대한 기록은 없고 대신 미재정(美哉亭)이란 지명이 나오는데 “미재정은 지금의 하남성 방성현(方城縣) 성내(城內)”라고 적고 있어 하남성에 위치한 지역임을 밝혀주고 있다.

다음은 복주에 대해서 알아보자. “복주는 지금의 복건성 민후현(閩候縣) 동북에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당시의 대진의 강역과는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관련이 없다. 대신 복산(福山)이란 지명이 “산동성 복산현 서북 5리”라 하고, “복산집은 산동성 박산현(博山縣)에 있다”고 하며,

“복산현은 한나라가 모평현을 설치했다. 당나라는 생략하고 봉래현에 속하게 했다. ...명나라 청나라 모두 산동성 등주부(登州府)에 속하게 했다. 중화민국 초에 산동성 교동도(膠東道)에 속하게 했다”라고 하여 복산, 복산집, 복산현이 산동성에 위치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사주(邪州)와 지주(芝州)에 관한 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함께 살펴본 내용을 종합하면 대진의 회원부는 하남성과 산동성의 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은 <구당서>에 언급된 “[개원] 20년(732)에 무예(武藝)가 그의 장수 장문휴(張文休)를 보내 해적(海賊)을 거느리고 등주자사 위준(韋俊)을 공격하였다”라는 땅이다.

무예황제가 이곳을 정벌하여 빼앗은 후에 회원부를 두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본고 제6장에서 이미 밝힌 바 있으니 확인하기 바라며, 다음 <그림 34>와 <그림 35>로 회원부의 위치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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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발해)의 강역 연구> - 제75부

7. 안변부 위치

안변부(安邊府)는 안주(安州), 경주(瓊州)의 2주를 관할한다.

안주의 위치를 찾아보자. “안주는 요나라가 설치했다. 치소는 귀인현(歸仁縣)이며 지금의 요녕성 창도현(昌圖縣) 서북 사면성(四面城)이다”라고 적고 있다. 창도현 서북은 지금의 내몽고 지역을 뜻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사면성을 찾을 수 없다.

경주(瓊州)의 위치를 추적해 보자. “경주는 한(漢)나라가 두었다. 지금의 광동성(廣東省) 경산현 남 60리에 있다. ...광동성에 속한다”라고 하지만 당시의 대진의 영토와는 방향이 달라 동의할 수 없다. 또 다른 출처를 확인해 보겠다. “당나라 정관 5년(632)에 두었다. 치소는 경산현에 있다. 지금의 해남성(海南省) 경산현 동남 경산동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해남성 역시 당시 대진의 강역과는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이 지역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안변부는 내몽고에서 찾아야 한다. 안변부의 위치로 내몽고 임황(臨潢)에 주목하자. “임황부는 요나라가 설치하여 상경(上京)이라 하고 겸하여 현을 두었다. 금나라가 개명하여 북경(北京)이라 했다. 또 바꾸어 임황부라 했다. ...옛 성은 지금의 열하 임서현(林西縣)이다”라고 하여 요나라가 설치했다고 적고 있다.

임서현을 보자. “임서현은 청나라 광서(1875∼1908) 년간 나누어 임서현을 두었다. 직례 적봉주(赤峯州)에 속한다. 민국은 열하성 열하도에 속하게 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임황부를 임서현이라 하는데 임황부는 요나라가 설치한 것이고 임서현은 청나라가 설치한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내용과 상충되는 기록이 보인다.

<五禮通考(오례통고)>에 “지리지에 요나라는 임황(임서현)에서 발생했고 서쪽으로 돌궐을 겸하고 동쪽으로는 발해를 합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사료비판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첫째, 임황(임서현)은 요나라가 일어난 곳이 될 수 없으며

둘째, 요나라는 916년에 세워졌고 대진은 698년에 건국된 나라로 219년후에 나타난 나라가 요이며

셋째, 상(商)은 훈육(獯육), 주(周)는 험윤(玁狁), 한(漢)은 흉노(匈奴)라 하고, 당(唐)은 돌궐(突厥)이라 하고, 송(宋)은 거란(契丹)이라 하고, 원(元)은 지금 달단(韃靼)이라 불리던 부족으로 요나라는 세우기 전에는 거란이라 하였으며

넷째, 거란의 주거지는 기주의 북쪽으로 장성(長城)이 막고 있는 산에 의지하여 요새(要塞) 밖의 내외 몽고이고

넷째[다섯째], 고구려가 패망할 당시 거란족은 섬서성 서안 동부 영주(營州)에서 살았으며

다섯째[여섯째], 따라서 요나라가 건국된 916년 이전에는 내몽고 임황(임서현)은 거란(요)의 땅이 될 수 없는 대진의 강역으로 이곳이 바로 안변부라고 주장한다. 안변부의 위치를 다음 <그림 36>으로 제시하니 확인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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