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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舍利) 걸걸중상(乞乞仲象)이라는 자가 있어 말갈의 추장 걸사비우(乞四比羽)와 고[구]려의 남은 부족들이 동쪽으로 달아나 요수(遼水)를 건너서 태백산(太白山)의 동북을 거점으로 하여 오루하(奧婁河)에 의지하여 성벽을 쌓고 굳게 수비하였다."
선생님 태백산은 어디인지 찾을 수 없습니다.
논평(김태영학파T.K.School):
우선 문헌사료를 읽을 때는 가끔 약간의 지리지명 왜곡이 보이므로 액면(額面)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으며 그런 이유로 역사학자는 반드시 교차확인을 해야 한다. 이는 마치 권성동이가 이재명을 비방(誹謗)하는 내용이 사실이 아닌 이치(理致)와 같다 하겠다.
태백산(太白山)은 모두 7개가 있다. ① 길림성 장백산(長白山) ② 절강성 승현(嵊縣) 서쪽 70리 ③ 섬서성 미현(郿縣) 남쪽 ④ 감숙성 경양현(慶陽縣) 북 150리에 있다. 흑수(黑水)가 여기에서 발원한다. <중국역사지명대사전>(1995) p.142. ⑤ 일명 태을산(太乙之山)으로 섬서성 태백현(太白縣) 동남 ⑥ 섬서성 양현(洋縣) 동북 일명 태백령(太白嶺) ⑦ 하남성 석천현(淅川縣) 남 80리 등이다.
함께 태백산의 위치분석과 교차확인을 해보자.
첫째, <신당서>에서 말하고 있는 요수(遼水)는 산서성에 있는 고구려의 압록수(鴨綠水)를 일컫는 말로 요수(압록수)는 황하로 들어가는 하천이고
둘째, 고구려의 평양성, 국내성, 환도성, 안시성, 봉황성(오골성), 영락궁 등은 모두 산서성에 위치하며
셋째, 고구려의 대장군 대중상과 대조영은 고구려를 되찾겠다는 의지(意志)에서 초기의 국호를 후고구려(後高句麗)라 하여 고구려 땅에서 일어났고
넷째, 걸걸중상이란 당나라가 일방적으로 대(大)씨인 대중상의 성(姓)을 걸걸(乞乞)씨라 호칭하여 기록한 지독한 역사왜곡이고 → 연개소문(淵蓋蘇文)을 천개소문(泉蓋蘇文)이라 기록한 당나라의 만행과 같음.
다섯째, 천문령(천문산, 의무려산, 광녕산, 운태산)과 동모산(소태산)은 고구려의 강토였던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河內)에 위치한 지리지명들이고 → 이곳은 고구려의 부소갑이고 신라의 송악군임.
여섯째, “요수를 건너 태백산(太白山)의 동북을 거점으로”란 문장 속의 태백산은 앞에서 살펴본 7개의 태백산 범주에 들지 않으므로 즉, 동북(東北)인 산서성 남부와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河內) 지역에는 태백산이 없으니 지명 왜곡이고
일곱째, 따라서 대진과 관련되는 <신당서>의 태백산은 태행산(太行山)의 오기(誤記)이거나 아니면 고의적(故意的)인 사실 왜곡, 날조, 조작이며
여덟째, “오루하(奧婁河)에 의지하여 성벽을 쌓고 굳게 수비하였다”라고 적고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오루하(奧婁河)에 관한 기록이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중국고대지명대사전>, <중국역사지명대사전>, <한민족사 고금 지리지명사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공(架空)의 하천으로 판명되고
아홉째, 그러나 단서(端緖)가 보이는데 오루하의 루(婁)는 읍루(挹婁)의 루(婁)를 남겨두어 하남성 하내 지역임을 암시하고, 오(奧)자는 ‘아랫목오’, ‘그윽할오’, ‘쌓을오’로 가장 깊숙한 곳이며 구석진 곳으로 근거지를 쌓았다는 뜻으로 섬서성 서안에서 먼 지역에 도읍지가 있었음을 시사(時事)하며 → 고구려의 평양성이 있던 산서성 임분(臨汾)에 비해 먼 곳임.
따라서 김태영학파(T.K.Schoo)는 <신당서>가 말하고 있는 오루하는 대진의 두 번째 도읍지가 된 홀한성(忽汗城)이 있던 홀한해(忽汗海)의 곡필(曲筆)이라 단정한다. 홀한해는 읍루 지역이고 당나라의 도성(都城)인 섬서성 “서안에서 2000리”라면 그윽한 구석진 곳이 아니겠는가.
자세한 내용은 김태영, <신라의 강역 연구>(2023), <고려의 강역 연구>(2023), 그리고 <한민족사 고금 지리지명사전>(2024)를 참고하기 바란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p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