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에 논평한다*
댓글(이병0):
선생님 고려사가 139권인데, 일단 이성계가 고려를 망하게 하고 쫒겨서 한반도로 들어 오면서 왜 조선이 고려를 이었다고 합니까? 대륙에서 주원장이 명을 세워 왕조를 이었다면 그들도 원이나 고려를 이은 왕조라고 전 왕조의 역사 편찬을 할 수도 있었던 것인데, 역사가 이어지는 원리가 궁금합니다.
댓글(이기0):
제가 알기로는 고려가 대진을 빼고 신라 백제 고구려 역사를 편찬했기 때문입니다. 삼국을 계승했다는 것 입니다. 원래는 明이 元과 고려 역사를 편찬해야지요. 이성계한테 朝鮮이란 국호 대신 和寧이란 국호를 줬다면 明이 고려 역사까지 편찬했을거로 봅니다. 明과 李朝鮮이 역사 나누기를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典據는 없으니 검증 불가능한 소설입니다.
논평(김태영학파T.K.School):
아직도 역사(歷史: iσtopia, history, geschichte, bamsa)의 정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역사를 뜻하는 단어들의 의미를 살펴보자. 歷史란 ‘언덕 밑 평지에서 벼농사를 많이 지으며 정착하여 오랜 시간을 살다 간 조상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람’의 의미이다. iσtopia는 그리스어로 ‘연구나 탐구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란 뜻이고 발음을 ‘히스토리아(historia)’라 한다. history는 영어이며 ‘과거에 일어난 모든 사건을 기록한 것’을 뜻하고 geschichte는 독일어로 ‘일어난 사건, 사실’이란 의미이다.
bamsa는 인도어로 ‘가족의 가계, 계보’를 뜻한다. 즉, 역사란 가족의 가계 즉, 족보(族譜)를 말한다. 역사를 가장 쉽게 표현한 글자가 바로 인도의 bamsa이다. 다시 말하면 역사가 족보이고 족보가 역사이다. 따라서 한민족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자신의 족보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혈통(血統)을 알지 못하면서 어찌 동이배달한민족(東夷倍達韓民族)의 역사를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증조부(曾祖父)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이스라엘 역사를 줄줄 외는 사람들을 접할 때는 참기 힘든 구역질이 난다.
함께 살펴본 역사란 단어들의 공통점은 사람(人)과 장소(場所)와 시간(時間)이다. 그래서 역사의 3대 요소를 사람, 장소, 시간(공간)이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장소가 공간이며 시간과 공간은 같은 의미이니 역사의 66%(67%)가 장소(場所)이다. 고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한마디의 답은 ‘장소(場所)’인 것이다.
후왕조(後王朝)가 전왕조(前王朝)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일반적인 역사전수(歷史傳授) 방법이다. 역사전수 방법으로 김태영학파(T.K.School)는 속적주의(屬籍主意: lineage principle)와 속지주의(屬地主義: territorial principle)를 주창한다.
속적주의란 ‘한 혈통 한 문중(門中)에 속하는 국적’을 뜻하고 속지주의란 ‘부속되어 있는 땅으로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땅’의 의미이다. 그런데 동이배달한민족은 속적주의가 강한 민족이다. 우리는 소호금천씨의 후예이고 단군왕검의 후예이며 구제치우를 조상으로 받들고 강(姜)씨나 신(申)씨나 방(方)씨가 염제신농씨의 후손이라 자부하지만 지나인(支那人)들은 그런 혈통에 관심이 없다.
“이성계가 고려를 망하게 하고 쫒겨서 한반도로 들어 오면서 왜 조선이 고려를 이었다고 합니까?”에 대한 답이다. 이성계는 거란족으로 몽고의 다루가치를 하다가 고려에 귀화한 사람으로 고려인(高麗人)이다. 당시 한반도는 고려의 변방이다. 그러므로 ‘고려를 이었다고 하는 것’은 속적주의와 속지주의를 따른 것이다. 이는 마치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으로 국호는 바뀌었으나 이씨조선을 이은 것이나 같은 맥락이다.
“대륙에서 주원장이 명을 세워 왕조를 이었다면 그들도 원이나 고려를 이은 왕조라고 전 왕조의 역사 편찬을 할 수도 있었던 것인데”의 답은 이렇다. 지나(支那)의 역사는 모두 속지주의에 의해 기술된 역사이다. 지금의 중공이 주장한 동북공정이 그 한 예(例)이다. 이와같이 명나라의 주원장은 속지주의를 취했다. 그러나 주원장은 고려의 변방인 한반도까지 통치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성계로부터 방과, 방원, 이도(세종), 이향(문종)에 걸쳐 명나라와의 밀약에 의해 대륙의 고려 영토만을 넘겨주어 빼앗기게 되고 한반도에는 이성계가 서울인 한양(漢陽)에 도읍을 정했다.
대진(大震)의 정사(正史)가 없다. 그런 면에서 대중상과 대조영이 고구려를 부흥시켜 698년에 건국하고 926년에 패망한 229년의 대진(大震)은 역사의 고아(孤兒)가 되고 말았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이 ‘대진사(大震史)’를 기록하지 않은 것이 천추의 한(恨)으로 남는다. 그러나 역사학자 김태영이 <대진(발해)의 강역 연구>란 논문을 출간함으로써 대진의 정사에 준하는 ‘대진사(大震史)’를 재구성하였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 것이다.
대진은 신라와 영토분쟁이 심했으며 대진은 거란에게 패망한 나라로 고구려의 북쪽 영토를 거란에게 빼앗긴 일로 김부식은 ‘대진사’ 기록을 체념한 듯하다. 고려와 거란이 서로 고구려를 이은 나라라고 다툰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김부식은 고려가 신라를 계승한 정통국이며 단군조선의 삼한에서 비롯된 고구려, 백제, 신라에 뿌리를 둔 왕조로 속적주의와 속지주의를 따른 결과이다.
“明과 李朝鮮이 역사 나누기를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典據는 없으니 검증 불가능한 소설입니다.”에서 “추측해봅니다”보다는 ‘주장합니다’라 하면서 주장의 논리성을 제시했더라면 훌륭한 댓글이 되었을 것으로 본다. 전거가 없다고 매양 추측만 할 것인가? 논리적 합리적 그리고 설득력있는 주장(主張)을 하기 바란다. 사실 명나라와 이씨조선은 밀약에 의해 땅을 뺏고 빼앗겼으며 고려의 역사를 왜곡하고 소중화(小中華) 행세를 하며 500년 동안 치욕적인 사대주의(事大主義)를 했던 가장 부끄러운 왕조가 되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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