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에 답한다*
댓글(배흥렬): 백제시대 왕인박사가 영산강포구에서 일본으로 갔다.고 해설사가 영상 엘범 산! 에서 말을 하는군요, 영산강포구는 중원땅의 어디를 이르는 말일까유?
답: 먼저 “중원땅‘이 아니라 대륙이라 해야 옳다.
왕인(王仁: ?∼?)에 대한 기록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없는 내용으로 일본의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나온 이야기이다. 우선 김태영학파(T.K.School)는 <고사기>와 <일본서기>는 왜곡이 심하여 불신(不信)한다.
<삼국사기>의 연대표에 의하면 백제의 관미성이 함락되고 산동성 한성(漢城)인 제령(濟寧)으로 도읍을 옮긴 것은 392년경이고 한성에서 호북성 웅진(熊津)인 무한(武漢)으로 천도한 것은 426년경이다.
백제가 웅진에 도읍한 시기의 강서성은 백제의 영역이고 강서성에 영산(榮山)이란 지명이 있으니 이곳을 “영산강”이라 지칭한 것으로 이해된다.
본래 황하강 가운데의 갈석산같은 섬이나 주변 산에 살던 왜(왜노)가 남쪽 복건성 해단도(海壇島)와 대만(臺灣)으로 내려간 것은 하남성 낙양에 있던 북위(北魏)가 망한 265년경이며 그후 왜(왜노)의 활동 지역은 복건성 해단도와 대만이기 때문에 백제의 영토인 강서성 임천현(臨川縣) 남 70리의 영산(榮山)을 영산강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왕인이란 사람이 강서성 임천현 남 70리에 있는 영산에서 내륙의 하천이나 강의 뱃길을 이용하여 복건성의 해단도와 대만으로 갔다고 봄이 설득력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왕인은 <삼국사기>에는 없는 사람임으로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가공인물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만에 있던 왜(왜노)가 지금의 일본열도로 들어간 것은 536년 경이고 왜(왜노)가 국호를 일본(日本)이라 고친 것은 670년이다.
어쨌든 백제는 한반도에 실존한 사실이 없으니 왕인이 한반도 영산강(榮山江)에서 일본으로 갔다는 이야기는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없는 새빨간 거짓말인 창작 소설이다.
강서성에 위치한 영산강은 첨부 지도에서 확인할 것이며 더 자세한 내용은 김태영, <700년 부여국의 허구와 동명왕·고주몽 관계 연구>(제21집) 세계출판사, 2024; 장려화 등,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제2단, p.1095를 참고하기 바란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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