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백제가 한반도에 있지 않은 이유
마. 공주의 무령왕릉은 일제의 조작
충남 공주에서 백제 제25세 무령왕릉(武寧王陵)의 지석(誌石)이 발견되었다.
지석(誌石)이란 죽은 사람의 이름, 출생, 사망 년 월일, 행적, 무덤의 좌향(坐向) 등을 기록하여 무덤 앞에 묻는 판석(板石)을 말한다. 판석은 릉비가 아니다.
무령왕에 대한 여러 가지 사료를 교차확인 해보면 무령왕은 부인에게 독살당하였고 아들인 성왕(聖王)이 백제의 제26세 왕이 된다.
지나 대륙에 있던 백제의 무령왕릉이 공주에서 발견된 이유는 다음의 하나로 보인다. 첫째, 아들인 성왕이 아버지 무령왕의 살해된 사실을 감추기 위해 행적을 한반도로 옮겼거나 둘째, 백제가 망한 후 백제의 후예들이 한반도에 와서 만든 것이거나 셋째, 일본이 동이배달한민족의 역사를 왜곡하여 마치 한반도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었던 것처럼 각본을 만들어 한반도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일제가 만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세 번째 이유에 가장 큰 비중을 두는 이유는 지석에 ‘무령대왕’이란 존호(尊號)를 사용하지 않고 이름인 ‘사마(斯麻)’를 쓴 점과, <일본서기>의 기록에, “일본 30대 흠명천황(欽明天皇) 13년(552)에 백제의 성명왕이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것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막부시대를 거치면서 불교를 대단히 중요시 여긴 나라이다. 역사적인 큰 인물을 기록할 때는 그의 부모 특히 아버지를 언급하는 것이 동서양의 보편적인 역사 서술 방법이다. 고구려를 세운 추모를 설명하기 위해서 아버지인 해모수가 언급되어야 하고, 이씨조선을 세운 이성계를 설명하려면 그의 아버지인 이자춘을 기록해야 하는 이치와 같다. 아버지의 혈통을 찾을 수 없을 때는 알(卵)에서 나왔다고 기록한 난생신화(卵生神話)와 같은 맥락이다.
일제는 한반도의 충청도가 백제의 영토였다고 역사를 왜곡하기 위한 고도의 술법으로 자신들에게 불교를 전해준 백제의 성왕(성명왕)을 역사에 기록하는데 있어 필요충분조건으로 무령왕(사마)을 언급해야 했던 것이다.

백제의 제26대 성왕이 신라에 빼앗긴 신주(新州)를 되찾으려고 친히 5천 군사를 이끌고 가다가 신라의 복병에 살해되자 생에 허무함을 느낀 성왕의 셋째 아들 임성태자가 왜[일본열도]에 들어가 지금의 나라현(那良縣)에 나라(那良)라는 나라(國)를 세운 때로 무령왕(사마), 성명왕(성왕), 임성태자, 일본에 최초 불교 전래, 흠명천황 등 동시대에 일어난 중대한 사건들을 고려해 볼 때 공주의 무령왕릉의 지석은 일제의 조작이 틀림없다.
또 다른 이유로는 31명의 백제왕들 중 30명의 왕릉이나 지석은 한반도에 없기 때문이다. 영어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제비 한 마리 왔다고 해서 여름이 온 것은 아니다.” 대륙을 주름잡던 대(大) 백제국의 31명의 왕들 중 왕릉도 아닌 단 하나의 지석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한반도의 충청도, 전라도가 백제는 아닌 것이다.
아직도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믿고있는 한국 역사학계는 나머지 30명의 백제왕들의 묘(墓)와 비석(碑石)과 지석을 한반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1958년 중공 공산당 약진(躍進) 때 지나 대륙에 있던 부어주아 정신이 깃든 묘지들을 모두 파버렸다지만 6.25때 북한 공산당들이 백제 땅, 충청도와 전라도에 있던 묘지들을 도굴(盜掘) 훼손(毁損)했다는 말은 들은 바 없다. 광활한 대륙보다는 좁은 충청도, 전라도에서 찾는 것이 훨씬 쉬울 것이라 본다. 백제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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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영토 연구> - 제59부
2. 백제가 한반도에 있지 않은 이유
바. 백제는 한때 백만대군을 가졌고
최치원(崔致遠)은 신라 말의 대학자이자 당시의 천재였다고 전한다. 최치원의 문집(文集)에 실려 있는 태사시중에게 올린 글속에, “고구려와 백제가 한창 왕성할 시기에는 강한 군사가 1백만이나 되었으므로 남으로는 오월(吳越)을 침략하고 북으로 유주(幽州), 연(燕) 제(齊), 노(魯)를 꺾어 중국의 큰 위협이 되었던 것입니다.”
백제가 강성할 때 1백만 대군을 가지고 있었다는 놀라운 기록이다. 한반도의 전라도, 충청도에 있던 백제가 당시 백만 대군을 어떻게 훈련할 수 있었으며 백제 땅 전라남도 아래에 오(吳)나라와 월(越)나라가 그리고 한반도 백제 북쪽 땅에 유주(幽州), 연(燕), 제(齊), 노(魯)나라가 있지도 않았고 한반도에 그런 나라들이 있었다고 기록된 문헌사료는 없다. 전라남도 남쪽은 바다고 북쪽은 고구려라 하지 않았던가! 백제는 대륙에 있었다.
사. 기병 수십만이 황해를 건너올 수 없으며
백제 제24대 동성대왕 10년(AD449)에 위(魏: 북위)나라가 수십만 기병으로 백제를 침략해오자 왕은 장수 사법명, 찬수류, 해례곤, 목간나를 보내 위를 쳐부수었다.
이 위는 북위(北魏)로 선비족 탁발규(拓跋珪)가 세운 나라로써 백제를 침공할 당시는 하남성 낙양(洛陽)에 도읍을 하고 있을 때이다.
한반도의 전라도, 충청도에 백제가 있었다면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위나라는 반드시 배를 타고 지금의 황해를 건너 한반도에 왔어야 한다.
기병(騎兵)이란 말(馬)을 탄 군사를 말한다. 따라서 수십만 마리의 말과 군사 수십만을 배에 싣고 황해를 건너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남제서>에는 위나라의 군사와 기병이 배를 타고 한반도에 왔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백제는 지나대륙 산서성에서 건국하여 고구려에 밀려 여러 차례 도읍지를 옮기면서 황하 남쪽으로 내려와 마지막 도성인 사비성 즉 안휘성 청양에서 660년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 망할 때까지 백제의 왕도(王都)는 모두 대륙에 있었으며, 하남성 낙양에 있던 위나라와 국경을 접(接)하고 있었기에 위나라의 수십만 말을 탄 기병이 백제를 공격한 것이다. 백제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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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영토 연구> - 제60부
2. 백제가 한반도에 있지 않은 이유
아. 13만 대군의 3,744리의 뱃길은 허구
“소정방(蘇定方)은 백제왕과 왕족 신하 등 93명과 백성 1만 2천명을 데리고 사비(泗沘)에서 배를 타고 당나라로 돌아갔다.”라고 <삼국사기/신라본기> ‘태종무열왕 편’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당나라 도읍지는 섬서성 서안(西安)이다. 서안에서 한반도 부여 사이의 거리는 직선거리 약 3,744리이다.
또한 소정방이 백제를 칠 때에 13만 대군을 거느리고 배를 타고 왔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3,744리를 오고 갔다는 것은 소설같은 이야기로 믿어지지 않는 대목이다.
일제 식민사학이 대륙에 있던 백제를 한반도에 있었던 것처럼 조작(造作) 날조(捺造) 왜곡(歪曲)한 것을 아무 비판없이 무조건 받아들인 탓이다. [물론 한반도에 백제가 있었다고 주장한 최초 원흉들은 이씨조선 후기 실학자들이다.-<제5부 머리말>참고]
당나라 소정방이 13만 대군을 데리고 배를 타고 온 곳은 섬서성 서안 남서부에 있는 성고(成固)에서 배를 타고 한수(漢水)를 거쳐 양자강(장강)으로 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 강을 따라 양자강 가까운 거리에 있던 백제의 사비성(泗沘城)까지 왔던 것이다. 백제는 지나대륙에 있었다.
성고의 위치는 다음 <그림 2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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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영토 연구> - 제61부
2. 백제가 한반도에 있지 않은 이유
자. 경기도 광주군 춘궁리에는 천연염지가 없어
<삼국사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류는 미추홀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편히 살 수가 없어 위례성[미추홀]으로 돌아와 보니 온조는 도읍을 막 정했으며 백성들이 편히 살고 있으므로 마침내 부끄러워 뉘우치고 죽었다.”
미추홀은 산서성 남서부에 있는 소금이 생산되는 천연호수인 운성염지 부근이기 때문에 소금기가 있어 물이 짜고 호수 근처이기 때문에 땅이 습한 것이다.
백제의 ‘하남위례성[미추홀]’이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춘궁리(春宮里)에 있었다고 한다면 춘궁리 일대는 산서성처럼 염지(鹽池)가 있어 물이 짜고 토질이 습해야 한다. 그러나 춘궁리는 물이 짜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그런 곳이 아닌 것으로 안다.
미추홀은 지나대륙 산서성 남서부인 요서(遼西)에 있었으며 미추홀은 동서 35km 남북 7km의 소금이 생산되는 염지인 지금의 해지(解池)부근이다. 미추홀의 위치를 더 정확하게 설명하면 당시의 대방군 지역이다. 백제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
3. 백제 전성기의 강역도
백제가 가장 강성한 시기의 영역은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에 위치한 패수(浿水)로부터 산동성 일부, 하남성 동부 일부, 안휘성 남부, 호북성, 호남성, 강서성, 광동성, 광서성, 운남성, 귀주성, 사천성 남부 일부와 대만, 필리핀, 그리고 해남성을 망라하였다.
각주 제161을 참고하기 바라며 백제 전성기의 강역의 대강을 다음 <그림 22>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만, 필리핀, 해남성은 색칠을 하지 못했으나 백제의 강역에 포함되며 이해를 돕기위해 <그림 23>을 함께 제시하니 대조하기 바란다.
지금까지 함께 살펴본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고증한 백제의 강역에는 한반도의 어떤 지역도 포함되지 않았음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한반도 한강 이남에 마한과 백제가 위치했다거나 경기도 남부 충청·전라도라고 추정(推定)하고 억측(臆測)한 한백겸, 안정복, 정약용, 신경준, 한진서, 윤정기, 박주종 등을 선두로 석사 및 박사학위 논문에서 “한반도에 백제가 있었다”는 견해를 보인 강남욱, 권태건, 김병희, 김진규, 김형태, 羅庚峻, 배성현, 백미선, 소규섭, 안태중, 오강석, 윤상열, 윤성호, 최병식, 이병현, 이왕호, 李在桓, 이정범, 전진국, 정지은, 최병운, 최진회, 판보싱 등의 주장은 문헌사료에 전혀 근거없는 허구의 잡설(雜說)임이 판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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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p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