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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적인 식민사관에 언제까지 휘둘릴 것인가. 우리 민족의 참된 역사, 진실된 역사를 알리기 위해 평생을 싸워온 재야 사학자. 현재 뉴욕을 기반으로 한민족사관정립의식개혁회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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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영토 연구 - 54~57부

백제는 대륙에 있었다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5-05-03 (토) 21:01:30

"백제는 대륙에 있었다"


논자는 임성현(任城縣)이 바로 임존성(任存城)이 있던 곳으로 백제 제2 도읍지였던 한성(漢城)이라고 주장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임(任), 임성현, 임성군, 임성국 등의 지명이 백제의 임존성(任存城)의 ‘임(任)’과 ‘임성(任城)’이 같고

둘째, 이들 지명들은 모두 산동성 제령(濟寧)을 가리키며

셋째, 본고 제4장 제2절에서 밝힌 바와 같이 백제의 도읍지 한성(漢城)이 위치한 곳이 바로 산동성 제령(濟寧)이고

넷째, 임존성을 끝까지 지키던 지수신(遲受信) 장수가 임존성이 함락되자 처자식을 두고 고구려로 피했다는 기록 때문이다.

 

당시 고구려의 도읍지는 산서성에 위치하였고 산동성의 일부는 백제의 영토로 고구려와 백제의 임존성이 서로 가까이 있어 황하강만 건너면 고구려로 피신이 가능했던 것이다.

 

660년 백제가 패망할 당시 고구려는 대륙에 건재하게 존재했던 나라이다. 만약 한국 역사학계의 통설처럼 백제의 임존성이 충남이나 전북에 있었다면 어떻게 직선거리 약 3,360리의 먼 거리에 있던 고구려로 지수신(遲受信) 장수가 도망할 수 있었겠는가의 가능성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것도 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서 말이다. 실현성도, 논리성도, 합리성도, 설득력도, 객관성도 없는 허구일 수밖에 없다. 백제의 임존성은 한반도에 있지 않았음을 입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임존성의 위치를 대략 표시하면 다음 <그림 19>와 같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백제의 영토 연구> - 제55부

 

2. 백제가 한반도에 있지 않은 이유

 

지금까지 백제의 도읍지들이 대륙에 위치하였음을 살펴보았다. 이밖에 다른 이유로 백제가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는 점들을 다음과 같이 검토해 보고자 한다. 일부는 앞에서 이미 살핀 내용으로 중복된 곳도 있다.

 

가. 백제의 지명들은 모두 대륙에

 

요동(遼東), 요서(遼西), 치양(雉陽), 패수(浿水), 대수(帶水), 마수산(馬首山), 진평이군(晉平二郡), 해(海: 황하), 한수(漢水), 한산(漢山), 직산(稷山), 황산(黃山), 숭산(崇山), 사성(蛇城) 백강(白江), 탄현(炭峴), 사(泗), 비(沘), 사주(泗州) 이런 지명(地名)은 모두 대륙에 있는 지명들이다. 한반도에는 이런 지명들이 없었다.

 

당나라 때 요사렴이 지은 <양서>의 기록에, “백제 이전에 동이(東夷)는 삼한(三韓)이 있는데 마한, 진한, 변한이다. 변한, 진한은 각 12국이고 마한은 54국이다. 큰 나라는 만여 가구이고 작은 나라는 수천 가구이며 총 십만여 가구다. 백제는 그 중 하나의 나라이다.

 

나중에 차차 강대해져서 여러 작은 나라들을 병합했다. 백제는 본래 요동의 동쪽에 있던 고구려와 함께 있었다. 진(晉)나라 때 고구려가 원래 요동을 다스리고 있었으며 백제 역시 진평이군 땅인 요서를 차지하고 있었다. 스스로 백제군을 두었다. 이윽고 고구려에 패해 약자로 수 년 있다가 남쪽 한(韓) 땅으로 옮겨갔다.”

 



본문에서 언급한 요동(遼東)은 여러 차례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좁은 의미의 요동으로 현재의 산서성 임분시(臨汾市)이며, 요서(遼西)는 산서성 임분시 남서쪽의 운성시(運城市) 일대이다.

한반도에 요동과 요서가 있었다거나 요녕성 요하(遼河)의 동쪽이 요동이었다고 기록된 1차사료나 문헌자료는 없다.

 

명, 청, 그리고 중화민국을 거치면서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중공의 김육불(金毓黻)을 포함하여 몇몇 어용학자들의 날조된 논문들이 나타나면서 요동을 요녕성 쪽으로 이동시켜 왔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백제의 영토 연구> - 제56부

 

2. 백제가 한반도에 있지 않은 이유

 

나. 진평이군은 충청도에 없고

 

<양서>의 기록에, “진(晉)나라 때 백제 역시 진평이군 땅를 차지하고 있었다.”라고 했는데 진나라는 사마염(司馬炎)이 하남성 낙양에 세운 서진과 사마예(司馬睿)가 강소성 남경에 세운 동진을 말한다.

 

진평이군이란 진평군(晉平郡)과 진평현(平平縣)으로 황하가 굴곡하는 지역의 남쪽 섬서성 동부와 하남성 서북부 지역인 요서를 일컫는 말이다. 백제가 이 진평이군 지역에 도읍지인 하남위례성을 세워 백제의 강역을 통치했었다는 기록이다.

 

엉터리 한국 제도권 식민 반도사학자들의 이론대로라면 한반도 충청도 백제 땅을 한때는 진나라가 다스렸다는 말과 같다. “백제가 진평이군 땅을 경략하고 있었다.”는 기록은 <양서>뿐만 아니라 <송서>, <남사>, <양직공도>에도 기록되어 있다.

 



다. 서울 북쪽 근교에서 말갈과 싸울 수 없으며

 

<삼국사기/백제본기>에 나타난 백제가 치룬 전쟁 기록을 보면, 위(魏)나라와 1번, 한(漢)나라와 1번, 고구려와 28번, 신라와 41번, 그리고 말갈과 21회 전쟁을 한 것으로 되어있다.

 

원래 말갈은 단군조선 말기에 ‘조선족’에서 갈라져 나간 지파로 예(濊), 읍루(揖婁), 물길(勿吉), 말갈로 부르다가 말갈에서 몽고족, 속말갈, 흑수말갈로 나누어지며 흑수말갈에서 여진족(女眞族)으로, 여진족에서 생여진(生女眞), 숙여진(熟女眞)이 생기고 생여진에서 만주족으로 이어지는 족속을 말한다.

 

말갈을 지금의 내외 몽고에 살고 있는 몽고족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으로 보인다.

반도사학으로 보면, 전라도 충청도는 백제, 경상남북도는 신라 그리고 신라와 백제 북쪽은 고구려의 영토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말갈이 발붙일 곳은 없다. 그런데도 백제는 말갈과 21번이나 싸웠다. 한마디로 백제가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는 증거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백제의 영토 연구> - 제57부

 

2. 백제가 한반도에 있지 않은 이유

 

라. 계백장군이 싸운 황산은 안휘성에

 

<삼국사기/백제본기> 제31대 의자왕 20년(660) 5월의 기록을 보면,

“당나라와 신라 군사가 이미 백강(白江)과 탄현(炭峴)을 지났다는 말을 듣고 왕은 계백 장군을 보내 결사대 5천명을 거느리고 황산(黃山)에 나아가 신라 군사와 싸우게 했다. 4번 싸워 4번 다 이겼으나 군사가 적고 힘이 모자라서 마침내 패전하여 계백이 전사했다.”

 

이때 계백장군이 마지막으로 싸운 황산은 한반도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일대”가 아니다.

지나대륙 안휘성과 절강성과 강서성이 서로 만나는 지점으로 안휘성에 있는 황산인 것이다. 현재의 대륙지도에 황산(黃山)이라고 글자 한 자 틀리지 않고 뚜렷하게 남아있다.

 

황산 바로 위에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였던 사비(泗沘)가 있다. 사비성에서 황산은 직선거리로 약 230리이다.

 



백제는 대륙에 있었다. 백제 31명의 왕들 중 단 한 명의 왕릉도 없는데 어찌 한반도 충남에 일개 장수의 무덤이 있을 수 있겠는가. 마지막 도읍지인 사비성이 있던 청양(靑陽)과 계백장군의 마지막 전투지였던 황산을 지도에 나타내면 다음 <그림 20>과 같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에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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