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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史實에 남의 눈치 왜보나?”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5-03-14 (금) 21:21:48

댓글 논평


댓글:

북사는 당나라 이연수가 편찬했다하니 당나라 수도인 장안을 기준으로 하여 양자강 좌측이라 했겠지요? 그럼 우측에 남사의 대상인 남조인가요? 강소와 절강은 신라 아닌가요? 지도 그리기가 어렵습니다.

 

논평: 

우선 당()나라의 도읍지는 섬서성 서안(西安)으로 장안(長安)이 아니다. 서안이나 장안에서는 한수(漢水)가 가깝지 장강(長江: 양자강)은 멀다. 그러므로 장안에서 기준하여 좌측·우측했다는 견해는 논리적이지 못하다.

 

()이란 장강(長江: 양자강)을 일컫는 말로 강동과 강서는 장강을 기준하여 동·서로 지칭한 것이다.

 

강동과 강서는 강좌(江左)와 강우(江右)에서 혼합·발전된 것이다. , ‘강좌강우설은 강서성 녕도(寧都) 사람인 위희(魏禧)<日錄雜說(일록잡설)>에 기인한 것이다. 위희는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에 활동하였으며 저서로는 <魏叔子文集(위숙자문집)><左傳經世(좌전경세)> 등이 있다. 본래 강동은 강소성을 강서는 안휘성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위희의 <일록잡설>에 의해 나중에는 강서성도 강서로 칭했다.

 

지금의 강소성을 강동(江東)이라 일컫는 것은 진()이 망할 무렵 농민반란군인 유방과 항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유방과 항우의 고향은 강소성이다. 강소성 패현(沛縣)은 유방의 고향이고 강소성 숙천(宿遷)은 항우의 고향이다. 강동이 고향인 두 사람이 강동에서 군사를 모아 강서인 안휘성에서 전투를 한 내역으로 인하여 강동·강서가 유래되었다.

 

이들이 마지막 결전을 벌인 싸움이 바로 해하전투(垓下戰鬪)로 안휘성 영벽현(靈璧縣) 동남이다. 고구려의 도움으로 유방이 항우에게 승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밝힌 내용이다.

초기 신라의 영토는 강소성과 절강성 북부였고 절강성에 있던 가락국을 병합하고 나서는 절강성 전역이 신라의 강토가 되었다. 절강성에 있던 가락국은 백제의 영토가 된 적이 없다.

 

당시의 강역개념은 오늘날의 영토개념과 다르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한 것으로 기억된다. 강소성 강녕(江寧)은 신라의 도읍지 금성이었고 호북성 무한(武漢)은 백제의 도읍지 웅진이었으며 절강성 김해(임해)는 가락국의 도읍지였고 복건성 해단도(海壇島)와 대만도는 왜(왜노)가 있던 곳이다. 자세한 내용은 내년 초에 출간될 김태영, <가야의 영토 연구>(22)을 참고하기 바란다.

 

도읍지가 서로 이웃하고 있어도 전쟁없이 사이좋게 지내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이는 마치 21세기인 지금도 서로 이웃하고 있는 유럽 여러 국가들이 전쟁없이 잘 지내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시기에 따라 영토 범위가 다르지만 개괄적인 그림을 그리자면 그렇게 된다. 따라서 당시의 강역은 가장 강성한 시기를 기준하여 그리면 될 것이며 지나(支那) 정권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 역사적 사실대로만 따르면 될 것이지 왜 남의 눈치를 보려 하는가.

 

위도 35도로 갈리는 황하(黃河) 이남은 본래 단군조선의 한지(韓地)로 변한(弁韓) 땅이었다. 조상들의 땅에 신라, 백제, 가야, 고구려가 영토를 관할 한 것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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