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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적인 식민사관에 언제까지 휘둘릴 것인가. 우리 민족의 참된 역사, 진실된 역사를 알리기 위해 평생을 싸워온 재야 사학자. 현재 뉴욕을 기반으로 한민족사관정립의식개혁회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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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영토 연구 - 제35~37부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5-03-03 (월) 19:12:37


1. 하남위례성

 

백제(百濟)라는 국명은 “百家濟海因號爲百濟(백가제해인호위백제) 백가, 즉 많은 사람들이 바다(황하)를 건넜다는 데서 백제라고 불렀다”라고 하였는데, 이 같은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 문헌사료는 『欽定滿洲源流考(흠정만주원류고)』, <唐會要(당회요)>, <通典(통전)>, <文獻通考(문헌통고)>, <太平御覽(태평어람)>, <冊府元龜(책부원구)>, <海錄碎事(해록쇄사)>, <御定淵鑑類函(어정연감유함)> 등 모두 8종에 달한다.

 

당시의 바다인 해(海)는 황하를 가리킨 것으로 백가구의 많은 사람들이 황하를 건넜다는 이유에서 백제라는 국호를 지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백제의 도읍지가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이라 한 것은 황하 남쪽에 있는 위례성으로 많은 사람들이 황하를 건너 남쪽에 내려와 국호를 백제라 하면서 도읍지를 황하 남쪽에 정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황하를 건넌 것이 사실인지를 고증해 보자.

 

<송서>에 “백제국은 본래 고[구]려와 함께 遼東인 동쪽 1천리에 있었다. 그 후에 고[구]려가 요동을 경략하자 백제는 요서(遼西)를 경략하여 차지했다. 백제가 통치한 곳은 진평군과 진평현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똑같은 내용은 <양서>, <자치통감>, <태평환우기>, <흠정만주원류고>에도 있다. 그런데 <흠정만주원류고>에 “백제가 역시 경략한 요서 진평이군은 당나라의 유성(柳城)과 북평(北平) 사이다”라고 적고 있으며 <통지>에도 “백제가 역시 경략한 요서 진평이군은 유성과 북평 사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통전>에는 “진평이군은 지금의 유성(柳城)과 안평(安平) 사이”라고 기록하고 있어 북평 대신 안평이라 적고 있다. 안평은 서안평(西安平)으로 압록수가 황하로 진입하는 입구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유성과 북평 사이나 유성과 안평 사이는 결국 같은 황하 남부를 의미한다.

 

유성(柳城)이 어디인지 알아보자. <중국역사지명대사전>에 “유성현은 섬서성 람전현(藍田縣) 동남”이라고 적고 있다. 주, 한, 수, 당의 도읍지였던 섬서성 서안 동남이 람전이고 람전의 동남이 유성(현)이다. 다음 <그림 7>에서 유성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백제의 영토 연구> - 제36부

 

북평(군)과 서안평의 위치에 대해서 알아보자.

 

북평군과 서안평은 고죽국의 영토였던 유주에 속한 지역이다. <漢書(한서)/地理志(지리지)>와 <後漢書(후한서)>가 기록한 유주(幽州)에는 요서군을 포함하여 7개의 군이 있는데 상곡군, 북평군, 요동군, 현토군, 낙랑군, 그리고 어양군이다. 이들 7개 군은 모두 산서성 남부에 위치한 지명이며 지도로 나타내면 다음 <그림 8>과 같다.

 

백제가 경략한 요서의 진평이군은 유성과 북평군 사이 혹은 유성과 서안평 사이라고 하였으니 <그림 7>과 <그림 8>을 종합하여 당시 백제의 영역(營域)을 도형으로 표시하면 다음 <그림 9>와 같다.

 

백제의 요서 진평이군은 <그림 9>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북평군과 유성의 사이로 황하 아래 하남성(河南省)과 섬서성(陝西省) 사이 일대를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이 요서이고 마한 지역이기도 하다. 한국 역사학계의 통설처럼 한반도 한강 유역도 아니고 충청도도 아니며 전라도도 아니라는 사실을 고증하였음으로 한국 역사학계의 통설은 허구임이 분명하게 입증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에서

 

 

<백제의 영토 연구> - 제37부

 

위례성 이외에도 백제는 오방(五方)이 있는데 “중방은 고사성(古沙城), 동방은 득안성(得安城), 남방은 구지하성(久知下城), 서방은 도선성(刀先城), 북방은 웅진성(熊津城)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고사성, 득안성, 구지하성, 도선성 등의 지명이 없어 위치 추적이 불가능하다.

 

또 백제는 담로(檐魯)가 있는데 중국의 군현(郡縣)과 같고 22개의 담로 모두 자녀나 동생 그리고 종친들이 나누어 차지하였다“고 하여 백제에는 22개의 군(현)이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백제의 담로에 대한 기록은 『太平御覽(태평어람)』을 비롯하여 약 7종이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22개 담로 이름이 기록된 곳이 없어 필자 역시 그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밝힐 수 없다.

 

“백제의 도읍지는 거발성(居拔城) 혹은 고마성(固麻城)이라 하는데 진(晉)나라 시기 요동[서] 진평이군이며 유성과 북평 사이다”라고 <通志(통지)>가 밝혀주고 있다. <흠정만주원류고>와 <태평어람>에도 백제의 도읍지를 거발성 또는 고마성이라 했다고 적고 있다.

 

지금까지 함께 살펴본 내용을 종합하여 정리하면 백제(십제) 최초의 도읍지는 산서성 남부 한사(한설)였고 천연소금이 나오는 운성염지 부근에 살던 비류가 온조의 도읍지인 한사를 둘러보고 부끄러워하여 화병으로 죽자 온조는 형 비류의 땅까지 차지하여 강성해졌으나

 



고구려가 요동을 빼앗아 경영하자 백제는 백가(百家)의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황하(黃河)를 건너 요서인 하남성과 섬서성 사이이며 유성(柳城)과 북평(北平) 사이에 도읍을 정하여, 황하의 남쪽이라는 의미의 하남(河南)에 위례성을 만들어 도읍했는데 지나(支那)의 사서에는 위례성(慰禮城) 대신 거발성(居拔城)과 고마성(固麻城)이란 명칭으로 불렀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다시 말하면 위례성, 거발성, 고마성은 백제란 국호를 사용한 온조왕의 첫번째 도읍지이며 문헌사료에는 세 가지 이름으로 알려진 것이다.

 

백제왕은 서쪽인 이곳 위례성뿐만 아니라 동쪽의 또 다른 성(城)에서 거주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백제]는 동서 450리 남북 900리이다. 그 나라 도읍지는 거발성이라 부르는데 역시 고마성이라고도 한다”라고 하여 당시 백제는 동서가 450리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후술하면서 문헌자료의 근거를 제시하겠지만 동서 450리보다는 훨씬 넓은 최소한 1,500리가 되어야 한다. 제9대 책계왕 때 고구려의 침략을 두려워하여 아차성과 사성을 수축하였다는 이들 두 성(城)은 산동성(山東省)에 있었으며, 제13대 근초고왕과 고구려 고국원왕과 싸운 치양(雉壤)과 패하(浿河)는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河內) 지역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함께 살펴본 바와 같이 온조가 도읍한 하남위례성은 황하를 사이에 둔 대륙 산서성, 섬서성, 하남성에 위치하였음으로 한국역사학계가 주장하고 있는 한반도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춘궁리”의 위례성은 허구임이 명백하게 고증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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