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백제는 마한 54국의 하나
<三國志(삼국지)/魏志(위지)> 동이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한[백제]은 대방(帶方)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황하)로 경계를 삼고, 남쪽은 왜(倭)와 접하여 사방 4천여리 이다.

[한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마한, 둘은 진한, 셋은 변한이며 진한(辰韓)은 옛 진국(辰國: 단군조선)이다. 마한은 [삼한 중에서] 서쪽에 위치한다. 그 백성들은 토저생활(土著生活)을 하고 곡식을 심으며 누에치기와 뽕나무 가꿀 줄을 알고 면포(綿布)를 만들었다.
[나라마다] 각각 장수(長帥)가 있어 세력이 강한 사람은 스스로 신지(臣智)라 하고 그 다음은 읍차(邑借)라 하였다.
[마한의 여러 나라는] 爰襄國(원양국), 牟水國(모수국), 桑外國(상외국), 小石索國(소석색국), 大石索國(대석색국), 優休牟涿國(우휴모탁국), 臣濆活國(신분활국), 伯濟國(백제국), 速盧不斯國(속로불사국), 日華國(일화국), 古誕者國(고탄자국), 高離國(고리국), 怒藍國(노람국), 月支國(월지국),
咨離牟盧國(자리모노국), 素謂乾國(소위건국), 古爰國(고원국), 莫盧國(막로국), 卑離國(비리국), 占離卑國(점리비국), 臣釁國(신흔국), 支侵國(지침국), 狗盧國(구로국), 卑彌國(비미국), 感奚卑離國(감해비리국), 古蒲國(고포국), 致利鞠國(치리국국), 冉路國(염로국), 兒林國(아림국), 駟盧國(사로국), 內卑離國(내비리국), 感奚國(감해국), 萬盧國(만로국), 闢卑離國(벽비리국), 白斯烏旦國(백사오단국), 一離國(일리국), 不彌國(불미국), 支半國(지반국), 拘素國(구소국), 撻盧國(달로국), 牟盧卑離國(모로비리국), 新蘇塗國(신소도국), 莫盧國(막로국), 古臘國(고랍국), 臨素半國(임소반국),臣雲新國(신운신국), 如來卑離國(여래비리국), 楚山塗卑離國(초산도비리국), 一難國(일난국), 狗奚國(구해국), 不雲國(불운국), 不斯濆邪國(불사분사국), 爰池國(원지국), 乾馬國(건마국), 楚離國(초리국) 범오십여국(凡五十餘國).” 이라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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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영토 연구> - 제29부
모두 55국을 기술하고 있는데 목지국(目支國)과 백제국(伯濟國)에 주목하자.
목지국을 기록하고 있는 문헌사료는 8가지로 <樂書(락서)>, <後漢書(후한서)>, <通志(통지)>, <欽定滿洲源流考(흠정만주원류고)>, <通典(통전)>, <文獻通考(문헌통고)>, <圖書編(도서편)>, 그리고 <御定淵鑑類函(어정연감유함)> 등이다.
그런데 “목지국(目支國)을 위지(魏志)에서는 월지국(月支國)이라 했고 문헌통고(文獻通考)에서는 자지국(自支國)이라 하였다.” 기록마다 일관성이 없는 것은 목지국인지, 월지국인지, 자지국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역시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중국역사지명대사전>,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는 ‘목지국’과 ‘자지국’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
단지 <삼국지/위지>에만 마한 55개의 나라를 열거하고 있으며 이들 이름들 중에 목지국과 자지국은 없고 대신 윌지국(月支國)이 있을뿐이다.
따라서 마한 55개국을 기술한 <삼국지>가 1차사료가 됨으로 <삼국지>의 기록을 믿지 않을 수 없다.

월지국(도)은 서역국으로 감숙성 돈황(燉煌)과 기연산(祁連山) 사이임을 알 수 있다. “전국시 월지는 융(戎)의 땅이고 한(漢)나라 초에는 흉노 휴도왕과 곤사왕의 근거지이다”라고 하였다. 마한이라고 하는 이 지역은 옛 서융(西戎) 땅이고 진(秦) 때는 월지국이며 한(漢)나라 초에는 흉노의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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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영토 연구> - 제30부
진(秦)나라는 도읍지가 섬서성 함양(咸陽)으로 마한지역에 위치한 나라이며 진은 융족(戎族) 속에서 성장하였고 목축을 하는 부족이었다. 그러다가 주(周)에 의지하여 융을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융과 구별하기 시작하였다.
주나라에 대해서 알아보자. 주나라를 세운 고공단부(古公亶父: 문왕의 아버지)도 서융(西戎)으로 섬서성 기산(岐山)에서 처음 나라를 열었다. 그 후 호경(鎬京)으로 천도하였으며 호경인 지금의 섬서성 서안(西安)에 있던 주(周)나라 유왕(幽王)은 BC771년에 견융(犬戎)의 침입을 받아 죽었다.
유왕의 아들 평왕이 다음 해에 낙읍(洛邑: 지금의 낙양)으로 동천(東遷) 하면서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되었고 존왕양이(尊王攘夷), 주왕실을 높이고 융(戎)과 적(狄)을 물리치는 것이 패주(霸主)들의 원칙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화하족과 이민족의 확실한 구별이 시작되었다.
이들이 이민족이라 한 것은 동이 9족을 일컫는 말이다. 진(秦)과 주(周)가 모두 같은 서역 즉, 마한에 위치하였다는 사실로 볼 때 진과 주도 마한의 일 국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필자는 진나라와 주나라도 단군조선 삼한 중의 하나인 마한에 속한 한 개의 나라라고 주장한다.
첫째, 진과 주는 마한지역 범주 안에 속한 나라이고
둘째, 진이나 주 역시 융족(戎族)이었으며
셋째, 주나라 유왕을 죽인 견융은 단군조선을 가리킨 것이고
넷째, 진시황 정(政)의 성씨는 김씨이며
다섯째, 진나라의 난리를 괴로워하여 동쪽으로 온 사람이 많았으며 그 다수가 마한의 동쪽에 자리 잡아 진한에 흡수되었다는 사실 등을 열거할 수 있다.
마한 땅에 있던 진(秦)과 주(周)는 황하를 사이에 두고 진한·변한과 가까웠기 때문에 진나라의 난을 피해 섬서성에서 동쪽인 산서성으로 피난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한반도에 진한과 변한이 있었다면 수천리의 육로와 황해를 건너 섬서성 진나라에서 한반도 먼 곳까지 피난 올 필요가 없다. 진한·마한·변한은 서로 가까운 대륙에 위치했기에 가능했다.
<후한서>와 <삼국지>에는 백제의 백자를 ‘伯’인 ‘맏백’, ‘우두머리백’자로 기록하고 있다. 나중에 백제가 산서성 남부에서 황하를 건너 남하하여 섬서성 동쪽인 요서(遼西)로 도읍지를 옮기면서 백제(伯濟)에서 백제(百濟)로 표기가 바뀐 것으로 보인다.
월지국, 곤사왕국, 휴도왕국, 주나라 기산, 진나라 함양, 황하 등의 위치를 다음 <그림 6>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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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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