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물줄기 소요수에 관한 <水經注(수경주)>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다.
“또 현토 고구려현에 遼山이 있고, 소요수가 발원한다. 고구려현은 옛 고구려, 호국(胡國)[고구려] 이다. 한무제 원봉 2년, 우거를 평하고, 현토군을 여기에 설치하였으며 왕망이 하구려라 하였다.
소요수는 요산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요양현을 지나 대량수와 만난다. 대량수는 북 요새 밖으로 흘러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요양에 이르며 소요수로 들어간다. 옛 <지리지>에서 말하기를, 대량수는 서남쪽으로 요양에 이르러 소요수에 들어간다. <군국지>에서 말하기를, 현(요양)은 옛 요동에 속하였고 후에 현토에 들어갔다.
그 물은 서남쪽으로 흘렀으며 본래 량수(梁水)이다. 소요수는 또 서남쪽으로 양평현을 경유하여 염연(淡淵)이 되고, 진(晉)나라 영가 3년에 물이 말랐다. 소요수는 또 요대현을 경유하여 대요수로 들어간다. 사마선왕이 요동을 평정하여, 소요수 위에서 공손연을 베었다. [소요수]는 서남쪽으로 요대현에 이르고, 대요수(大遼水)로 들어간다.”
소요수(小遼水)는 고구려에 있는 요산(遼山)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흐르는데 량수(梁水)가 서쪽에서 나와 소요수와 합류하여 흘러가다가 요대현에서 대요수(大遼水)로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다.
량수(梁水)는 산서성(山西省)에 있는 량산(梁山)에서 발원하는 하천으로 “량산은 산서성(山西省) 이석현 동북에 위치한 여량산(呂梁山)이며 이석수는 북쪽을 경유하여 황하(黃河)로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소요수, 요산, 량수, 량산, 여량산은 모두 산서성에 위치한 산과 하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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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압록수 위치 연구 – 제24부
셋째 물줄기 마자수에 대한 <通典(통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마자수는 일명 압록수라 하며 물은 동북 말갈백산에서 발원하는데 물색이 마치 오리머리 같다. 그래서 속명으로 그렇게(압록수) 부른다.
요동으로 500리를 가서 국내성 남쪽을 거쳐 또 서쪽에서 한 물과 합해지는데 즉 염난수다. 두 물이 합해 흘러 서남쪽으로 안평성[안시성]에 이르러 바다(황하)로 들어간다.
고[구]려 안에서는 이 물이 가장 크며 그 물결이 맑고 깨끗하고 경유하는 곳의 나룻터는 모두 큰 배를 정박할 수 있다. 그 나라[고구려]는 이것이 천연으로 이루어진 요새라고 믿는다. 물이 넓어서 300보의 넓이가 되는데 평양성 서북 450리에 있다. 요수 동남 480리에 있다.”
<漢書(한서)/地理志(지리지)>도, “마자수는 서북에서 염난수로 들어가고 서남으로 흘러 서안평(西安平)에서 바다(황하)로 들어간다. 2개 군을 거쳐 길이는 2,100리이다.” 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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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압록수 위치 연구 – 제25부
넷째 물줄기 염난수에 대한 <中國古今地名大辭典(중국고금지명대사전)>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염난수는 동가강인데 <한서지리지>에 마자수가 서북에서 염난수로 들어간다.”
앞의 <수경주>, <흠정만주원류고>, <통전>, <한서/지리지>,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의 기록들을 종합하면 대요수(大遼水)는 산서성 북쪽이자 말갈의 서남쪽 백평산(白平山) 혹은 지석산(砥石山)에서 발원하고 마자수(馬訾水) 역시 산서성 북쪽 말갈백산인 연경산에서 발원하여 남하하다가 국내성 서쪽에서 염난수(鹽難水)와 합류한다.
소요수(小遼水)는 요산(遼山)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흐르다 역시 국내성 서쪽에서 대요수와 합류하여 이 4개의 물이 남쪽으로 계속 흐르다 곡옥(曲沃)에서 서쪽 방향으로 꺾여 안시성(安市城)과 서안평(西安平)을 지나 황하(黃河)로 들어가는 하천(河川)이다.
수양산인 오늘날의 중조산에서 고사리를 캐 먹다 죽었다는 백이숙제의 나라 고죽국이 산서성 남서부라는 사실을 앞에서 밝힌바 있다.
따라서 산서성이 고구려의 영토였음으로 고구려의 영토인 산서성에 위치한 이들 네 물줄기를 그림으로 표시하면 요수(遼水)는 아래 <그림 7> 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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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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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자수(馬訾水) 역시 산서성 북쪽 말갈백산인 연경산에서 발원하여 남하하다가 국내성 서쪽에서 염난수(鹽難水)와 합류한다.
고구려의 압록수 위치 연구 – 제26부
2. 요수가 압록수
관잠산(管涔山)의 일부인 연경산(말갈백산)에서 흐르는 마자수(馬訾水)는 그 색이 오리 머리처럼 푸르러 鴨(오리압) 綠(초록빛, 푸른색) 水(물)라 부른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오리를 한번쯤 본 사람이라면 오리 머리가 푸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자는 뜻글자이기 때문에 각 글자마다 독특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런데 사료들을 꼼꼼히 잘 살펴보면 송(宋)나라 때부터 본래의 압록수(鴨綠水)가 압록수(鴨淥水)로, 즉 푸를록(綠)에서 맑을록(淥)으로 글자가 바뀌어 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오리 머리는 푸르다’와 ‘오리 머리는 맑다’ 중 어느 표현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답은 쉽게 얻어질 것이다.
글자가 달라지면 그 의미가 달라지고 본래의 사실이 왜곡될 수 있는 것이다. <新唐書(신당서)>에서 기술한 압록수의 록은 반드시 푸를록(綠)이여야 한다는데 이의가 없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압록수의 ‘록’자가 맑을록(淥)으로 쓰여진 사료는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료 비판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정리하면 대요수, 소요수, 마자수, 염난수의 4개의 물이 하나로 합쳐져 요수(遼水)가 되었으며 이 요수를 압록수(鴨綠水)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림 7>과 <그림 8>이 보여주듯이 압록수는 산서성에 위치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산서성에 위치한 고구려 당시의 요수이자 압록수가 현재는 분하(汾河) 혹은 분수(汾水)란 이름으로 불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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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압록수 위치 연구 – 제27부
IV. 압록수가 있는 산서성
1. 압록수 옆에 위치한 국내성, 평양성, 안시성
<通典(통전)>과 <新唐書(신당서)>의 기록에 “마자수(馬訾水)가 있어 말갈백산(靺鞨白山)에서 흘러나오는데, 물빛이 오리머리와 같이 푸르러 압록수(鴨綠水)라 부른다. 국내성(國內城) 서쪽을 거쳐 염난수와 합류한 다음, 다시 서남으로 흘러 안시(安市)(성)에 이르러 바다(海: 황하)로 들어간다. 평양성(平壤城)은 압록의 동남에 있어 큰 배로 사람이 건너다니므로 해자(塹濠) 역할을 한다”라고 하였다.
압록수는 4개의 물이 합쳐서 만들어진 하천으로 오늘날의 분수(汾水)이며, 산서성 북쪽에서 남쪽으로 2,100리를 흐르는 물이다.
국내성 서쪽으로 압록수가 흐르며 국내성 남쪽으로 평양성이 위치하고, 평양성은 압록수의 동남쪽에 있다고 하였다. 압록수는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안시성(安市城)이 있던 환도산(丸都山)이자 오늘날의 화염산(火焰山)을 지나 서안평(西安平)에서 바다(海)라고도 부르던 황하로 들어가는 하천이다.
환도산의 꼬리 쪽에는 환도성이, 머리 쪽에는 안시성이 함께 있어, 고구려의 도읍지인 국내성, 평양성, 안시성(환도성)은 모두 산서성에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들 도읍지들을 압록수의 물길에 맞추어 대치시켜 보면 국내성(國內城)은 평요, 평양성(平壤城)은 마자수에서 동남쪽 450리인 임분시에, 안시성(安市城)은 화염산, 그리고 졸본성(卒本城)은 태원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은 위치들을 확신시켜주는 내용으로 산서성 임분시에 있는 평양성으로 보이는 평양부와 국내성으로 보이는 평요에 위치한 평요고성(平遙古城)이 있다.
“중국 산서성 중부의 평요고성은 2,700년 역사적 문화로 유명한 성(城)으로서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으며 중국 고대 도시의 원형이다. 평요의 고대 명칭은 ‘고도(古陶)’였다. 서주 선왕 때(827-782BC) 대장군 윤길보 장군에 의해 토성으로 처음 세워졌다.”는 내용인데, 이 도성은 고구려의 전형적인 치(雉)형식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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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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