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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即今<陝西西安>) : 九黎, 朝鮮(고리국)시대의 驪戎國
[後漢書] (郡國志) 京兆尹新豐有驪山。경조윤 신풍新豐에 려산驪山이 있다.
【註】杜預曰:古驪戎國。韋昭曰:戎成居此山,故號驪戎。 又高句驪,國名。 又縣名。
【주석】두예杜預가 이르길 : 옛 려융국古驪戎國이다. 위소韋昭가 이르길 : 융戎이 이 산에 거처를 이루어 옛날에 려융驪戎이라 불렀다.
또 高句驪의 나라이름이고 또한, 현이름이다
注, 索隱在新豐縣南,故驪戎國也. 舊音黎. 徐廣音力知反
색은, 려산은 신풍현의 남쪽에 있다. 옛 려융국이다. 驪의 옛 음은 黎이다. 서광은 그 음이 ‘리’이라 했다 (力력+知지 = 리(절운)
[國語] (晉語一) 韋注曰:驪戎,西戎之別在驪山者也
논평한다.
구려(九驪)란 나라는 없었고 고리국(槀離國)이라는 나라도 없었으며 조선을 고리국이라 했다는 기록도 없다. 어찌 “조선을 고리국”이라 망발(妄發)을 하는가.
고리국(槀離國)이 기록된 문헌은 『欽定滿洲源流考(흠정만주원류고)』, 『玉芝堂談薈(옥지당담회)』, 그리고 『搜神記(수신기)』가 전부이며 『欽定滿洲源流考(흠정만주원류고)』에 의하면 “오늘날의 개원(開原) 서북의 경계 밖으로 읍루(挹婁)와 함께 실질적인 이(齒)와 입술(唇)과 같은 땅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흠정만주원류고』에는 왜곡된 내용이 아주 많다. 교차확인 하면 밝힐 수 있는 대목이다.
고리국이 최초로 언급된 출처는 이암(李嵒: 1297∼1364)이 지은 「단군세기」 제47대 고열가단군 기사이고 『흠정만주원류고』는 청나라가 1778년에 출간한 것으로 흠정만주원류고의 고리국 이야기는 이암으로부터 유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선(朝鮮)이란 국호가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것은 왕검단군이 산서성 임분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라 부른 것으로 아무리 빨라야 BC2333년 경이다.
려산(驪山)은 섬서성 임동현(臨潼縣) 동남으로 람전현(藍田縣)에 있는 람전산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신풍현은 오늘날의 섬서성 임동현 동쪽이다. 동남쪽이 아니다. 그리고 려융(驪戎)은 주(周)나라의 국명이며 첩의 소생이란 의미의 희(姬)씨 성이다. 희씨성은 황제헌원의 후예라는 뜻으로 왕검은 헌원의 후예가 아니다.
섬서성은 서쪽이다. 서융(西戎)의 임금은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BC2598)이다. 금천씨는 청해성 청해변(靑海邊)에서 태어나 감숙성, 청해성, 섬서성, 산서성을 개척한 최초의 융(戎) 임금이며 섬서성 화산(華山)을 관할했고 도읍지는 섬서성 감천(甘泉)이다. 금천씨는 김씨의 조상으로 성씨가 김(金)씨이니 희(姬)씨인 헌원과는 관계가 없는 인물이다.
<후한서> 두예의 주(註)에 의하면 위소(韋昭)가 말하길 “융(戎)이 와서 이 산(려산)에 살았기 때문에 려융(驪戎)이라 불렀다(戎來居此山故號驪戎)”라 적고 있다. <후한서> 권 29 <사고전서> 참고할 것. 서융의 한 무리가 려산(驪山)에 와서 거처한 이유로 려융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백두산(白頭山)에 융이 와서 살았다면 백융(白戎)이고 한라산(漢拏山)에 융이 와서 거쳐했다면 한융(漢戎이라는 말과 같다. 그리고 “또 고구려의 나라 이름이고 또한 현 이름이다”란 내용은 없다.
“韋昭曰:戎成居此山, 故號驪戎. 又高句驪,國名. 又縣名(위소韋昭가 이르길 : 융戎이 이 산에 거처를 이루어 옛날에 려융驪戎이라 불렀다. 또 高句驪의 나라이름이고 또한, 현이름이다).”에서 려융이 고구려인 것처럼 해석하고 있으나, 논자의 해석은 다르다. “又高句驪,國名. 又縣名.”을 ‘한편 고구려가 있는데 나라 이름이며 또 현 이름이다’라고 해석한다. 다시 말하면 려융과 고구려는 별개의 개념이다.
첫째, 고구려를 려융이라 했다면 고구려 대신 주몽이 세운 나라는 려융이라 기록된 문헌사료가 있어야 하지만 그런 문헌은 찾아볼 수 없으며 둘째, 려융이 고구려라면 려융이란 현(縣) 이름도 당연히 있어야 하나 려융이란 현의 이름은 없고 셋째, 위소(201∼273)는 삼국시기 오나라 사람이며 넷째, 명색이 BC716년 경의 려융에 대해 주석할 수 있는 사람이 다섯째, AD240년 경의 고구려와 혼동할 만큼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 등이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제4단, 1408쪽에 “<좌전 장공(莊公) 28년> 진(晉)나라가 려융(驪戎)을 벌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장공은 BC716년 경 사람이다. 고구려는 BC232년에 생긴 나라인데 어떻게 탄생하지도 않은 고구려를 485년 전에 장공이 려융국(고구려)를 멸할 수 있는가.
려(黎)는 전욱고양(顓頊高陽)의 아들이며 전욱고양은 소호금천씨의 아들이니 려(黎)는 소호금천씨의 손자이다. 전욱고양은 BC2513년 경 사람으로 단군조선과는 무려 180년이란 연대 차이가 나는 기사이다.
려(驪: 검은 말)는 려(黎: 검다)에서 유래된 것으로 먼 후대로 오면서 고구려의 려(麗: 곱다, 빛나다)를 려(驪)로 지나인들이 각색(脚色)하여 왜곡한 것이다.
『한단고기』에 나온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인냥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한단고기』의 내용 중에는 과장(誇張), 허구(虛構), 그리고 오류(誤謬)가 많다. 그리하여 저자는 지금 ‘『한단고기』의 오류 비판과 지리지명 고증’(제20집)의 학술논문을 집필 중이다. 결론을 말하면 『한단고기』의 내용 가운데 지나친 종교적인 기사를 제외한 나머지 중 약 45%는 오류이고 55%정도 역사성을 갖는다.
따라서 『한단고기』에 기록된 고리국(槀離國)은 허구이다. 섬서성 서안에 구려가 있었고 조선이 고리국이며, 조선(고리국) 시기에 있었다는 려융국(驪戎國)이 고구려로 마치 고구려가 섬서성 서안에 있었던 것처럼 조작, 왜곡하지 말라. 고구려가 섬서성 서안에 있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섬서성 서안에 고구려가 있었다면 1차사료와 문헌자료로부터 전거(典據)를 제시하기 바라며 저자의 학술논문 제20집이 출간되거든 참고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끝으로 역사를 논(論)할 때는 반드시 사료비판(史料批判)과 교차확인(交叉確認)이란 절차가 있음도 잊지 말라.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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