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지리명을 한반도에 붙인 장본인들
1844. 한반도 남쪽 경상남도 김해에 가야(가락국)가 있어 고대 일본야마토 정부가 이곳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의 역사왜곡임을 고증한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권34, 잡지 제3, 지리1 신라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김해소경(金海小京): 옛날 금관국(金官國)-혹은 가락국(駕洛國)이라 하고 혹은 가야(伽耶)라고도 한다-이다. 시조 수로왕으로부터 10대 구해왕(仇亥王)에 이르러, 양(梁)나라 중대통(中大通) 4년(532)인 신라 법흥왕 19년에 백성을 거느리고 와서 항복하므로 그 땅을 금관군(金官郡)으로 삼다가 문무왕 20년(680)인 당나라 영륭(永隆) 원년에 소경(小京)으로 삼았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쳐 김해경(金海京)이라 했는데, 지금의 금주(金州)이다.” “[金州]: 西魏置. 隋改曰西城郡. 唐復置金州. 改曰漢南郡. 尋復爲金州. 宋曰金州安康郡. 治西城. 今陝西安康縣治. 元復曰金州. 省西城縣入之. 明改爲興安州. 淸升爲興安府,” 장려화등, 『중국고금지명대사전』 (대만: 상무인쇄, 1982), 제1단, p.541. 논평: 금주를 오늘날의 섬서성으로 옮겨놓았다. 교차확인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漢南縣]: 宋置華山縣. 西魏改曰漢南. 唐省. 遷宜城縣治此. 卽今湖北宜城縣治.” 중국고금지명대사전』 (대만: 상무인쇄, 1982), 제4단, p.1103. 논평: 한남현(군)이 호북성이라 가리키고 있다. 섬서성과 호북성에 ‘금주’가 있었던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기 위한 수법이 동원되고 있다. 호북성이 절강성과 가깝기 때문에 섬서성보다 논리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臨海郡]: 三國吳太平二年置, 治所在臨海縣(今浙江臨海市). 後移治章安縣(今臨海市東南章安). 隋開皇中廢. 唐天寶元年又改台州爲臨海郡, 治所在臨海縣(今臨海市) 乾元元年復改爲台州.” 魏嵩山, 『중국역사지명대사전』 (광동: 광동교육출판사, 1995), p.797. 논평: 당나라 때 태주를 임해군이라 했다고 말하고 있다. 임해(군)는 오늘날의 절강성 지도에도 뚜렷하게 나온다.
“[台州]: 春秋越地. 三國吳置臨海郡. 唐置海州. 尋改曰台州. 因天台山爲名. 尋復曰臨海郡. 元又改曰台州. 宋曰台州臨海郡. 元改台州路. 明初改台州府. 屬浙江. 淸因之. 民國廢. 治所卽今臨海縣.”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제2단, p.197. 논평: 태주란 지명은 천태산 때문에 생겼다고 말하고 있다. 임해현, 임해군, 태주, 천태산은 모두 절강성에 있다고 적고 있다. 현대 대륙지도에서 쉽게 확인 가능하다.
“[天台山]: 在浙江天台縣北.”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제4단, p.131. 논평: 임해를 천태라고도 했는데 천태산 때문에 생긴 이름이며 천태산은 절강성 천태현 북쪽에 있다고 적고 있다.
“[新羅縣]: 晉置. 南朝宋廢. 故城在今福建長汀縣西南.”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제1단, p.1019. 논평: 신라현이 복건성 장정현 서남에 있다고 적고 있다. 신라가 한반도 경상남북도에 위치했다면 왜 신라현이 대륙의 복건성 장정현 서남에 있을까?
“[新羅礁]:在浙江定海縣西南海中.卽日本僧慧鍔觸舟禱佛處.”『중국고금지명대사전』제1단, p.1019. 논평: 일본승이 부처에게 빌었던 곳인 신라초가 절강성 서남바다에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만약 한반도 경상남도 김해에 가락국이 있고 신라가 있었다면 신라초도 경상도 서남바다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절강성 서남바다에 신라초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복건성과 인접하는 절강성(浙江省) 임해(臨海: 김수로왕의 가락국이 있던 김해(金海)에는 신라산(新羅山)이 있다고 <중국고지도>와 <대청일통지>에 기록하고 있다.” 김태영, 『동이배달한민족사』 서울; 소호출판사, 2013. pp.462-463. 논평: 신라산과 천태산의 위치와 똑같아 동일한 산으로 보인다.
• 고대지리지명을 한반도로 끌여들인 원흉들은 다름 아닌 이씨조선 후기 실학자들로 『동국지리지』의 한백겸과 『동사강목』의 안정복은 마한의 강역을 지금 한강 이남의 경기, 충청, 전라도 땅이라고 하였고, 『아방강역고』를 지은 정약용은 고조선, 한사군, 고구려, 백제, 신라, 졸본성, 국내성, 평양성, 패수 등을 한반도에 설정하는 소설을 썼다.
이밖에 이익, 유형원, 신경준, 한진서, 성해응, 한치윤, 홍석주, 홍경모, 이원익, 홍여하, 임상덕, 정극후, 허목, 남구만, 이세구, 이이영, 홍만종, 박지원, 이병도, 이기백, 노태돈, 송호정, 김태식, 김육불 등 모두 동이배달한민족사를 근거없이 왜곡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가락국이 있던 곳은 절강성으로 당시의 김해는 임해(臨海)를 뜻한다. “[臨海郡]: 三國吳分會稽東部置. 治臨海. 尋徙章安. 故城在今浙江臨海縣東南一百十五里. 隋廢. 唐置台州. 改曰臨海郡. 治臨海. 尋復曰台州. 宋曰台州臨海郡. 元廢. 卽今浙江臨海縣.” 장려화등, 『중국고금지명대사전』 (대만: 상무인쇄, 1982), 제1단, p.1292.
• 한반도에 있다는 任那日本府에 대한 선행연구자들의 학위논문과 학술논문은 다음과 같다. 이근우, 「任那日本府說에 대한 批判的 硏究」(국내석사),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3.; 김경영, 「광개토왕릉비문에 보이는 ‘倭’의 實體에 대하여: 소위 ‘任那日本府設과 관련하여」(국내석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1996.; 박장우, 「’임나 가야설‘에 대한 비판적 고찰」(국내석사), 신한대학교 지식복지대학원, 2021.;
김주인, 「광개토대왕릉비에 나타난 ’왜‘에 관한 연구: 신묘년조를 중심으로」(국내석사), 신한대학교 지식복지대학원, 2021.; 박성기, 「『三國史記』의 倭 관계기사와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서술: 4-6세기 삼국의 대외관계를 중심으로」(국내석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2009.; 박경남, 「日帝의 同化政策과 扶餘 文化遺産의 ’재해석‘」(국내석사), 공주대학교 문화유산대학원, 2020.;
박진이, 「일제강점기 문화재 반출과 조선인 대응」(국내석사), 강원대학교, 2016.; 김은영, 「제2차 조선교육령의 목적과 역사교육: 대만교육령과의 비교를 중심으로」(국내석사), 동국대학교, 2016.; 박형인, 「한국과 일본의 중학교 교과서 고대 한 • 일교류사 서술 검토」(국내석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2015.; 김택균, 『古代韓日關係 倭記事에 關한 硏究』(국내박사), 동의대학교 대학원, 2006;
한성례, 「일본의 고대 국가 형성과 『만요슈(萬葉集』」(국내석사), 세종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 2011.; 방종근, 「일본의 역사문화적 상황과 신교실천의 과제」(국내석사), 한신대하교, 1995; 최명화, 「일본의 한국사 서술경향에 관한 고찰」(국내석사),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한국사전공, 1983.;
김상만, 『개화•일제기 한국 관련 서양 문헌에 나타난 한국인식 양태연구』(국내박사), 명지대학교, 2008.; 송은설, 「日本歷史敎科書 韓國史 關聯 內容 分析: 1997년판 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중심으로」(국내석사), 西江大學校 敎育大學院, 2001.; 김기섭, 「일본 중등 역사 교과서의 임나일본부설」, 『백제문화』 Vol.0 No.58,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2018.;
이찬구, 「문헌학과 금석학의 융합으로 보는 광개토태왕릉비의 왜(倭)와 임나(任那) - 임나일본부설과 관련하여 -」, 『역사와 융합』 Vol.- No.53, 바른역사학술원, 2016.; 연민수, 「임나일본부설의 역사학」, 『東北亞歷史論叢』 Vol.- No.53, 동북아역사재단, 2016.; 尹錫曉, 「任那日本府說에 關한 考察」, 『한성사학』 Vol.5 No.-, 한성사학회, 1988; 朱甫暾, 「『日本書紀』의 編纂 背景과 任那日本府說의 成立」, 『韓國古代史硏究』 Vol.15 No.-, 한국 고대사학회, 1999.;
유용태, 「학설의 유령 – 당대 중국 동아시아 인식 중의 ‘임나일본부설’」, 『역사비평』 Vol.- No.131, 역사비평사, 2020.; 황순종, 「가야사(伽倻史)와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에 대한 주류학계의 인식 비판」, 『세계한단학회지』 Vol.5 No.1, 세계한단학회, 2018.; 이승현, 「학문적 비평에 대한 명예훼손 판단 법리와 쟁점 - ‘임나일본부설 사건’과 ‘제국의 위안부 사건’을 중심으로」, 『言論仲裁』 Vol.144 No.-, 언론중재위원회, 2017.;
안춘배, 「공동연구 1: 한•일 고대관계사 연구 – 특히 임나 일본부문제를 중심으로: 考古學上(고고학상)에서 본 任那日本府說(임나일본부설)」, 『伽羅文化』 Vol.8 No.-, 경남대학교 가라문화연구소, 1990.; 최재석, 「계획된 픽션 ‘임나일본부설’」, 『한국논단』 Vol.22 No.-, 한국논단, 1991.; 김태식, 「역사산책 광개토옹릉 비문 논쟁과 임나일본부설」, 『역사비평』 Vol.- No.36, 역사비평사, 1997.; 金昌鎬, 「古新羅 積石木槨墳의 400年 上限說에 대한 의문: 日本學界의 任那日本府說에 대한 反論(1)」, 『嶺南考古學』 Vol.- No.4, 嶺南考古學會,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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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괄 논평: 임나일본부에 관한 석사학위논문 13편과 박사학위논문 2편 그리고 관련 국내학술논문 53편 총 68편의 논문을 모두 검토해본 바 이들 논문들은 한결같이 역사논문이라기 보다는 문학창작인 수필이나 기행문이나 소설의 특징을 넘지못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역사논문은 반드시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고증할 수 있는 기록을 제시해야 하지만 이들 선행연구자들은 단 한명도 문헌사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허구의 소설로 일관했다.
이씨조선 후기의 실학자라는, 문헌사료들을 읽지않은 어리석은 자들이 고대 지리지명들을 모두 한반도로 끌어들여 문헌사료에 전혀 근거없이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진한, 마한, 변한,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락국(가야) 등이 마치 한반도에 위치했었던 것처럼 역사적 사실을 날조 왜곡하여 경상남도 김해에 가락국인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는 허구를 자의적으로 해석 추론하여 작성한 설(說)들로 일고의 가치가 없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함께 살펴본 바와같이 금주, 한남현(호북성), 임해군, 태주, 천태산, 신라산, 김해(임해), 신라현(복건성), 신라초(절강성 서남 바다속) 등의 지리지명들은 모두 절강성이나 절강성과 인접지역인 복건성과 호북성에 위치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 남쪽 경상남북도나 전라도에 이들 지리지명들이 있다는 기록은 문헌사료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허구의 소설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가락국(가야)이나 임나일본부의 주장은 허무맹랑한 역사왜곡의 극치임을 고증한다. 김태영, 『史根經 II』 2022년 여름 출판예정, 제1844항.; 김태영, 『동이배달한민족사』 서울: 소호출판사, 2013. pp.475-485.; 김태영, 『동이배달한민족사』(개정증보) 서울: 세계출판사, 2021. pp.555-566. 참고.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김태영 박사
S000 Park
그럼 현재 경상도 지역에 있는 소위 '가야 무덤'은 무엇으로 봐야 되나요?
Paul Kim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허구의 소설입니다. 경상도 지역에 있는 무덤이 "가야무덤"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요?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덩달아 그렇게 생각한 것으로 문헌사료상 기록된 근거가 없지요. 우선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모든 사건을 기록한 것"이고 고고학이란 "과거 인류의 물질적 유물을 연구하는 학문"을 말합니다. 그리고 고고학은 인류학의 한분야로 인류학이란 "인간의 체질과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문화적 편견을 없애는데 그 목적이 있어요. 인류학에는 1) 체질인류학 2) 문화인류학 3) 언어인류학 4 고고학이 있지요. 역사는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토대로 하는 학문입니다. 가야무덤 이야기는 고고학입니다. 역사적으로 어떤 문헌사료에도 한반도 경상도 가야에 김수로왕이 세운 가락국(가야) 있었다는 기록이 없으며 게다가 "가야무덤"이라고 하는 그 무덤이 가야의 무덤이라고 기록된 문헌사료는 없어요. 그러니 경상도 가야무덤은 새빨간 거짓으로 허구의 소설이지요. 고고학은 역사학의 보조학문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필자는 고고학을 민족의 이동사를 추적할 수 있는 학문으로 봅니다. 자세한 내용은 김태영, <사근경: 역사는 모든학문의 뿌리> 서울: 세계출판사, 2021. pp.24-25. 제15항을 참조하세요.
이00
Paul Kim 가르침 감사합니다. 제게 있어서 經은 선생님 저술뿐 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서문에 나온다는 팔도 위치와 京府牧郡縣 등이 현 반도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솔깃. ...
Paul Kim
이00 반도사관을 이땅에 심은 자들은 일본 사람들이 아니고 이씨조선 후기에 살았던 실학자들입니다. 실학자라는 사람들이 문헌사료들을 읽어보지도 않고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진한, 마한, 변한,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맥국 등이 모두 한반도에 있었다고 허구의 소설을 썼어요. 이들 실학자들의 책을 보고서 일본이들이 그대로 따랐고 이병도가 그대로 답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어요. 실학자들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실학자들이 한반도사관의 원흉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지적하지도 못합니다. 왜인가요? 1차사료나 문헌자료를 읽지 않았고 실학자들이 지은 책조차도 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3년간 한국의 모대학에 있을 때에 동양사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친구에게 물었더니 사마천의 <사기>조차도 읽지않은 사람이었어요. 한국사도 아닌 동양사 전공자가 말이예요. 그 사람뿐만이 아니예요. 한국의 제도권 강단 사학자들이 모두 문헌사료를 읽지 못한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역사책 이름을 대면 그런 책이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무식한 자들이예요. 한국사 전공자들은 더 합니다. 그들은 한자로 적혀있는 사서를 읽지 못해요. 우리의 역사왜곡은 일본인들이 아니라 우리 조선 사람들, 즉 실학자들입니다. 그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 25사> 아주 잘된 역사서예요. 자신들의 역사서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기술하고 과장이 약간씩 있지만 역사적 사실이 잘 기록되어 있어요. 가끔 왜곡, 날조, 조작된 곳이 있으므로 교차확인 해야 할 영역이지요. 그것이 실력있는 역사학자의 사명입니다. 이선생에게 바라는 것이 바로 그 점입니다. 근거없는 엉터리 출판물에 너무 집착하지 마시고, 아! 이런 책도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하시고 지나치세요. 허구의 소설은 허구일 뿐입니다. 역사가 아니예요. 이선생은 소설가가 아니라 역사학도입니다. 건강챙기시구요.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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