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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동의 통일 고리-Gori
인공관절수술 전문 정형외과 의사, 수필가. 평양의대병원에 수술법 전수, 6.15 해외측 공동위원장으로 조국통일 위한 사회활동, 저서로 <꼬레아Corea , 코리아 Korea>, <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 <평양에 두고 온 수술가방>. <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의 꿈>, 2011년 한겨레통일문화상 수상. 통일국호 ‘고리-Gori’ 를 남과 북에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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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DMZ

이대생 휴전선 장병위문공연(上)
글쓴이 : 오인동 날짜 : 2021-07-27 (화) 11:07:17

이대생 휴전선 장병위문공연()

 

1967년 군의관으로 강원도 철원 휴전선경비 육군3사단 23연대에서 1년 복무하고 다음해 후방 춘천 부대에서 쓴 복무수기를 그 시절 발표할 수 없었다. 1991년 월간 신동아 논픽션공모 본선에 올랐으나 당선되지는 못했다. 그때도 군사정부시절이었다.

 

53년뒤 보게된 수기 <아듀! DMZ> 17장 중 11. [이화여대생 휴전선경비장병 위문공연] 을 당시 이화여대 학생회장 지은희(전 여성부 장관-덕성여대 총장)에 처음 보냈다. 1960년대 후반을 함께해온 인연들과도 함께 돌아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20211



왼쪽:오인동 중위 - 위문단장 지은희 앞줄 오른편에서 3째 이화여대 위문단원들과 - 이삼희 23 연대장과 장교들 이화여대생들의 최전방장병 위문공연 - 휴전선 경비 육군3사단 23연대

 

196712월 첫 토요일, 이때쯤이라 생각해 왔던 날이다. 휴전선경비 1중대에 파견되었던 고참 최 병장과 김 일병이 돌아왔고, 고정탱크와 장벽저장고에서 안 병장, 윤 일병, 그리고 2중대의 장 상병과 모 일병도 교회에 가기 위해 의무대로 들어왔다. 고문관(군 복무 부적격 병사) 색출과 후송준비에 온힘을 쏟았던 본부 위생병들이 두 달만에 모두 함께 하게 되었다. 나는 이 상사, 보좌관 정 소위와 구급차 운전병을 포함한 전 의무대원들에게 잔치판을 마련했다.

 

커다란 막걸리통에 안주거리를 내무반에 푸짐하게 싸놓고 그간의 피로를 마음껏 풀도록 했다. 마시고 싶은만큼 다 마시고 놀고 싶은만큼 놀며 밤 새워도 좋다고 했다. 그밤 의무대는 노래와 춤과, 숟가락으로 양은 식기를 두드리며 노래하는 소리로 떠나가는 듯 했다. 덩실덩실 춤도추며 최 병장의 기타 반주에 함께 부르는 유행가며, 김 병장의 목 따는 노랫소리, 저마다의 장기를 보여준 그들은 고참도 신참도 계급장도 잊은 듯 모두 함께 신나게 판을 이어갔다.

 

그렇게도 신나게 논 위생병들을 본 뒤, 가장 힘들게 훈련받고 고되게 작업하는 보병병사들에게 일년에 한번 휴가외에는 복무의욕을 북돋아 줄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라디오에선 성탄절이 가까워지며 크리스마스캐롤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우리 병사들에게도 흐뭇한 년말과 신나는 새해를 맞게 해 줄 뭐가 없을까 막연히 생각하던 중 문득, 위문공연단!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들어온 국군장병위문은 바로 우리같은 최전방 DMZ(비무장지역) 경비부대가 아니겠는가?

 

의무대 고참 이 상사에 물어보니 위문단이 온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자 곧, 대학생 시절 함께해 온 경아의 동생 경희가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 학생회 부회장인게 생각났다. 퍼뜩, 가능할 수도 있겠지? 어떻든 한번 부닥쳐 보자!

경희가 겨울 방학 중, 학생회 활동 중에 국군장병 위문도 끼어 있단다.

"그럼 어디로?”

"학생처에서 정했는데 서울 교외의 공군00부대로 가게 될 것 같아요."

"그래~? 서울에 있는 그런 부대에 구태여 위문이 필요할까? 위문하려면 우리 부대처럼 북방 정전선을 지키는 최전방 휴전선DMZ경비부대로 와야 진짜 위문이 아니겠어?"

 

하지만 어느 부대, 어떤 수속을 밟아야 하는지도 몰라 학교에서 정해주는 대로 하려던 참이라 했다.

마음에 품고 온 얘기를 털어 놓았다. 그녀의 눈빛이 밝아지고 있었다.

"그럼 임원들과 의논해 보고 알려 드릴게요."

 

11월 하순 이래 눈에 덮힌 우리 제1대대 의무대 라디오에서는 안 상병이 즐겨 부르는 쟈니 리의 뜨거운 안녕이 흐르고 있다. “또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위문단이 와 주었으면 하는 기대는 더욱 커졌다. 한편 온다면 위문단을 어떻게 데려오고 또 공연은 어디서 해야 할지? 덜컥 겁도 났다. 또 위문단은 오겠다는 데 우리부대가 받을 수 없다면 어쩌지? “기어이 가신다면 보내 드리리..” 그는 더 애절하게 절규하고 있다. 속 타는 며칠이었다.

 

1221, 전보 한 장! <위문 감, 그 곳 여부 의논차 217시 소공동 남지다방, 경희>

와아! 윷가락은 던져졌다. 마음을 가다듬고 깊은 숨 쉬고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조대균 대대장에게 그 동안의 일을 말하니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곧 전화로 연대장에게 보고했다. 대대장의 짚차로 문헤리 연대본부로 달렸다. 참나무 토막이 은은히 타고 있는 난로 열기 따스한 연대장실, 잔잔한 미소를 띤 이삼희 대령은 궁금한게 한 둘이 아니었다......

" ..년말에 전방부대로 장병위문단들이 온다고 알고 있었는데 ……......“

"으음, 오인동인 달라. 다르단 말이야" 연대장은 나를 오 중위나 군의관이 아니라 항상 내 이름을 불렀다.

 

연대에 부임했을 때부터 느꼈었지. 그 비틀족 같은 머리칼에, 사격대회 때 엉터리 '명중 보장약' 작전 ..... 흐으음, 명문 이화여대생들이 우리 연대 장병들을 위문하러 온다는 자체가 사건이며 큰 영광이지. . . ! 뒤는 내가 다 지원할 테니 어서 서울 다녀오게"

 

그 날 이후 나의 생활은 청아골과 서울을 왕래하는 시간과 거리의 숨바꼭질이었다. 이화여대로 찾아가 지은희 회장과 임원들에게 중부전선 최전방 철원의 육군 백골 제3사단 23 연대로 위문을 결정해 준데 대해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아득하고 멀게만 느껴질 휴전선 경비부대 장병위문은 여러분의 기억에 오래 오래 남을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날짜를 정하고 공연내용을 협의했다.

 

한편, 위문단을 맞게될 우리 연대도 바빠졌다. 위문단 수송, 위문 공연장, 음악밴드 준비, 위문 날의 장병 재배치 및 이동, 위문단원들의 식사 등 할 일이 많았다. 그 준비에 바빠진 연대본부 장교들은.., "오 중위, 군의관이 갑자기 정훈장교라도 됐나? .여대생들 온다고 마음만 들뜨게 해 놓고.."

"방금 기동훈련이 끝나 좀 쉴까 했는데?" 한 마디씩 하는 건 분명 진반 농반 이었지만 나는,

"이봐, 오죽하면 군의관이 이런 일을 할라고? 그래 우리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사병 복지가 하늘에서 떨어지나 아니면 사기앙양이 땅에서 솟느냐 말이야? "

".., 이거 왜 이래? 그저 한마디 해 본 건데 흥분하지 마시오, 하하하........."

 

마지막으로 위문단원들의 공연연습장에 들려 우리 '23연대가'와 보병이 가장 즐겨 부르는 군가의 악보를 건네주었다. 음감이 빠른 단원들은 생전 처음 불러보는 투박한 군가를 피아노 반주에 따라 어렵지 않게 소화해 냈다.

 

공연연습을 참관하고 교정(校庭)을 빠져 나왔다. 상점 유리창마다 네온불빛이 휘황했고 삼삼오오 걷고 있는 청춘남녀들의 물결 속에 징글벨 음악이 흐르고 있다. 이런 모습들은 두껍게 눈 덮인 전선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북적대는 서울을 뒤로하고 청아골로 가는 한산한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하편 계속>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오인동의 고리-G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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