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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관절수술 전문 정형외과 의사, 수필가. 평양의대병원에 수술법 전수, 6.15 해외측 공동위원장으로 조국통일 위한 사회활동, 저서로 <꼬레아Corea , 코리아 Korea>, <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 <평양에 두고 온 수술가방>. <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의 꿈>, 2011년 한겨레통일문화상 수상. 통일국호 ‘고리-Gori’ 를 남과 북에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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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통합을 위해 무엇을 할것인가(上) 역사인식, 시대인식, 민족의식

글쓴이 : 오인동 날짜 : 2012-03-14 (수) 01:29:58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결로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났다. 해방 후 민족주의자들은 당연히 새로운 한 나라를 세우려 했지만 상극하는 이데올로기 신봉자들의 離合集散(이합집산)에 밀려 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 그 후 남과 북은 전쟁과 대립으로 50여 년을 지냈다. 오늘도 남과 북은 반목을 해소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

그러나 우리 주위는 이해를 달리하는 일본, 중국, 러시아, 그리고 세계의 패권국 미국이 둘러싸고 있다. 아직도 통일의 길은 멀기만 하다. 겨레통합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며 그리고 누가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가를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겨레 통합과 나라 통일은 남과 북 그리고 세계에 퍼져 살고 있는 한민족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운명을 주변국들의 처분에 맡길 수 없다. 이제야말로 우리 민족이 자주적인 역량을 발휘해서 우리의 의지대로 통일된 자주독립국가를 세워야 할 때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념대립이라는 갈등상태에서 살아온 남과 북의 정치인들과 동포들은 냉전의식과 사대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점은 해외동포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 조상들이 1세기 전 조선 근대화시기에 그르쳤던 민족의 역사를 오늘날 다시 되풀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든다.

이제 우리 민족사를 다시 돌이켜 보며 민족의 통합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할 때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어떤 자세가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또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자. 필자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인식과 의식이 확립되어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첫째, 우리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 지금 우리가 처한 시대에 대한 냉철한 시대인식이 필요하다.

셋째, 갈라져서 반목과 대립을 해 왔지만 우리는 결국 한 겨레라는 민족의식을 되찾아야 한다.

이러한 기본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갈라진 민족이 하나 된 공동체를 이루어야만 민족중흥을 기할 수 있다는 철학과 미래에 대한 비전(vision)이 서게 될 것이다. 이러한 토대에서라면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 통일관도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올바른 역사인식

개화기에 일어났던 역사의 면면들이 오늘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주는 교훈은 매우 크다. 1세기 전, 외부 문명세계의 존재를 모르고 동양적 질서에만 안주하던 조선은 1860년대에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정책에 휘말려 근대화의 역정이 외세에 의해 강제되기 시작했다.

 

www.ko.wikipedia.org

대원군의 개혁정책이 자리 잡기도 전에 영. 불. 미 제국과 일본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통상과 개항을 하라고 우리나라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대원군은 내수를 한 후 개방하겠다는 뜻에서 鎖國政策(쇄국정책)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허약한 국력으로 인해 더 이상 버틸 수도 없었다. 일본의 강압으로 약자의 입장에서 1876년 ‘조 ․ 일수호조약’을 체결해야만 했다.

이렇게 경제침탈은 시작되었다. 그 무렵 실학사상을 추구하던 소수의 선구자들이 평등과 개화사상을 전파하고 있었지만 일반 민중들의 역사인식을 강화하기에는 너무나 힘이 모자랐다. 오랜 전통의 봉건유교사회를 갑자기 의식화할 수는 없었다.

개방이 시작된 나라에서 판을 치던 부패한 관료들의 작태와 신식군대만을 우대하는 정책에 격분한 구식군대가 1882년 壬午軍亂(임오군란)을 일으켰다. 이 군란을 통제 할 수 없었던 조선조정은 일본을 제어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청국군의 도움을 청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무고한 군란 주도자들이 외국군대에 의해 처단 되는 민족적 수모를 자초하고 말았다.

 

www.ko.wikipedia.org

1884년에는 평등과 개화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던 김옥균 등 양반가의 젊은이들이 일본군의 도움에 기대어 甲申政變(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이 또한 조선조정의 수구파를 지원한 청국군에 의해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청국에 매달리는 사대주의 수구파의 득세로 민족자주역량의 근대화는 지지부진한 채로 10년이 지났다. 조정관리들의 계속되는 백성착취와 침탈을 자행하는 외세에 반발하여 ‘보국안민’과 ‘소파왜양’의 기치를 들고 커다란 규모로 일어난 것이 1894년의 동학농민항쟁이었다. 우리의 농민군들은 이번에는 일본군대에 의하여 분쇄되고 말았다.

나라 안의 문제를 나라 밖 외국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한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외세의 힘을 빌릴 때 마다 한 정파의 일시적 이익은 있었을지 모르나 손해를 보는 것은 나라 전체였다. 청국과 일본이 조선의 주도권을 놓고 각축하다가 드디어 우리 강토에서 청일전쟁까지 시작했으니 그 피해가 막심했다. 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조선의 내정에 강제로 간섭하기 시작해서 1895년 갑오개혁을 밀어 부쳤다. 조선왕조의 종말은 이렇게 다가오고 있었다.

조정 내부에는 친청파, 친일파 이외에 러시아 세력에 편승한 관리들도 있었다. 왕실의 안위가 위태롭다는 핑계로 왕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해서 일 년 이상이나 머물렀던 치욕스러운 俄館播遷(아관파천)이 1896년에 일어났다. 한편 이 시기에 민간 사회에서는 독립협회 등의 근대화 운동 등에 힘입어 일반 국민들의 국가적 독립의식이 높아져 가고 있었다.

1897년 국왕 고종이 아라사 공사관에서 환궁하며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이라고 변경했다. 대한제국은 조선왕조의 왕권이 명목상 황권으로 바뀐 것 외에 근대국민국가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청일전쟁 후 유지되어온 일본과 러시아의 세력균형이 영국과 미국이 일본 편에 서면서 깨지고 말았다. 동북아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일으켰던 러 ․ 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제2차 한일협약으로 대한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접수했다.

청 ․ 일, 러 ․ 일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몸부림치던 유약한 조선과 대한제국은 미국. 영국. 불란서. 독일에 도움을 청했지만 물론 헛된 일이었다. 각 나라들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일본을 방조하는 역할만 했다. 일본이 조선에서의 이익을 점하고 미국이 필리핀을 점하는 것을 서로 양해한 일본과 미국 간의 ‘가즈라 ․ 태프트 비밀협약’이 그 좋은 예이다.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는 이런 사실도 모르고 미국에 일본을 제어해 달라고 간청을 했던 부끄러운 사실도 있다. 결국 대한제국은 1910년 일본에 병합되어 식민지로 35년을 지내게 되었다.

역사는 이렇게, 자국 안에서 분열되어 이 나라 저 나라의 힘을 빌리려다 보면 결국은 외국의 간섭을 유도하게 되고 만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렇게 해서 들어온 외세는 각기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시적인 선심만을 쓴다는 엄연한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수구 기득권층이 그들의 위치를 고수하려 할 때, 또는 진보세력이 개혁을 추진할 때도 외세의 힘을 빌리면 결과는 언제나 민중들과 나라에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안겨 주었다.

그러한 외세는 인접국인 청국, 일본,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도, 영국도, 독일도, 불란서도 다 그들대로 자본주의적 착취를 자행해 왔다는 사실이다. 민족자존의 정신적 역량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역량을 집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땅은 언제나 외세들의 즐거운 사냥터가 되었던 것이다.

조국이 이러한 격동기에 처해 있을 때 실패한 갑신정변 후 미국에 망명해 살면서 선진 민주사회의 규범을 익힌 동포 서재필은 1896년 귀국했다. 그는 독립협회, 독립신문, 만민공동회 등을 조직하고 민중들에게 시민의식과 참정의식 그리고 진정한 민족의식을 일깨워 주기 시작했다. 위대한 근대화 운동이요 민족구원의 운동이었다.

그 10년 후, 한일보호조약이 체결된 후에는 또 한 분의 재미동포 안창호도 조국으로 나가서 국내지식인들을 규합해서 애국계몽, 국권회복, 교육진흥 운동을 일으켰다. 재미동포가 선도한 운동은 광범위한 사회적 호응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에 따라 생긴 무수한 언론매체, 헌정연구회, 자강회, 신민회 등의 활동은 눈부신 것이었다. 이러한 근대화 운동을 통해 심어진 민족정기는 훗날의 3 ․ 1 독립만세운동과 항일독립운동으로 면면히 이어져갔다.

그러나 이러한 해외선각 재미동포들의 애족. 구국활동에도 불구하고 청국이나 일본에 편승한 무리들의 사대망동으로 자력으로 근대화의 사명을 이루지 못하고 민족사를 그르치는 과오를 범했다.

우리가 이러한 과오를 다시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오늘날 세계역사의 흐름은 무엇이며 우리 주변국들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역량은 얼마나 달라졌으며 주변국들의 위상은 또 어떠한지도 알아야 한다. 우리 민족의 과거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바탕 위에서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정신이 무엇인가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下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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