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잘 되어가면 해외동포들은 뿌듯한 마음으로 조국에 박수를 보내고, 어려워지면 진보계 재미동포는 미북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국무부와 상.하원의회를 설득하려고 뛰어다닙니다. 미북관계 좋아지면 남북관계도 좋아지는 것이 전례였기 때문입니다.
당사자들과 만나 한반도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평화협정촉구건의서를 건네고 또 대통령에게 미국의 국익을 위한 New Korea 정책건의서와 더불어 면담을 요청하고 나오면서 자부심도 느꼈습니다.
클린턴과 오바마 대통령의 답신도 받아 보았지만 결국 미북관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하여 차츰 처량하고 씁쓸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왜 우리 문제를 남북끼리 해결하지 못하고 미국의 선처(善處)를 빌면서 초라해져야 합니까?
2000년 6.15에서 10.4 선언까지의 7년은 분단대결 50년사를 하나씩 허물어 가는 희열(喜悅)과 희망(希望)에 찬 나날이었습니다. 그때는 점잖 떠는 교만한 미국의 보수인사들도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화해/협력/교류의 거대한 파도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은 남북이 해내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통일의 동력은 남북자신에서 나와야 합니다. 조국의 지도자와 지성인들은 올바른 역사인식, 냉철한 시대인식, 우리는 한 겨레라는 민족의식에 바탕을 둔 통일관을 정립하고 국민과 인민을 이끌어가야 합니다.
이제는 지도자가 과감하게 “통일보다 더 좋은 분단은 없다”는 확신에 찬 얘기를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한반도통일을 원하는 주변국은 없다는 피동적 사고가 아니라, 남북이 원한다고 함께 외치며 나가면 주변국을 뿌리칠 수 있다는 능동적 사고를 불어넣어 주어야 합니다.
민족(民族)이란 명제에 주눅 들 필요가 없습니다. “민족보다 나은 동맹은 없다”는 진리를, “동맹은 한때이고 민족은 영원하다”는 얘기를 주저할 이유도 없습니다. 남과 북은 역사. 문화. 정서를 공유한 민족이라는 동질성의 토대에서 ‘한강의 기적’도 ‘서해갑문의 역사’도 일궈냈습니다.
설익은 세계화 논리에 취한 남녘동포가 ‘민족’소리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본 남한 보수계 원로인사가 앞으로 중국, 일본, 러시아의 민족주의 부활을 경계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우리 민족끼리’라는 값진 정신을 왜 버려야 합니까?
평양의학대학병원에서 북녘의사/간호원들과 발가벗고 수술복만 입은 채 어깨 비벼대며 일하다 보니 동포(同胞)의 정서가 이렇게 빨리 또 가깝게 다가 올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하나’ 라는 끈끈한 정을 더 많은 남북민중의 교류와 접촉을 통해 체험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제가 한민족의 자손으로 전공분야에서 실력으로 세계에 임했듯이 우리의 재량(裁量)으로 자신을 가지고 세계의 누구와도 당당하게 대하자는 것입니다.
북측에 드리는 말씀
북은 남한과 서방세계에 비합리적, 기만적 독재불량국가로 낙인 되게 방치한 과거를 뉘우쳐야 합니다. 북이 밖에서 보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면 이제는 능동적으로 고정관념을 바꿔 주어야 합니다. 1994년 제네바북미기본합의에서 시작해서6자회담 9.19공동성명 합의를 어긴 측이 북이 아니라면 실례를 들어 진지한 어조로 밝혀 남측과 세계에 알려야 합니다. 핵폐기가 다음 단계로 진전하지 못하는 이유를 말할 때 2.13합의를 안 지킨쪽이 어느쪽인지도 가려내야 합니다.
적절한 때마다 불거졌다 슬그머니 잠잠해지고 마는 마약과 위조달러 생산국이란 딱지도, 사실이 아니라면 떼어버려야 합니다. 사건이 일어나거나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곧 차분하고 설득력 있는 말과 글로써 진실을, 조선글로서뿐 아니라 영문 등 외국어로 서방언론매체에 기고해서 알려야지요. 강소국이 강대국횡포의 벽을 넘기 어렵지만 적어도 남한동포들에게는 알려야 합니다. 더 이상 혼자서 ‘우리식대로의 원칙’만 지키면 진실은 밝혀진다는 오만(傲慢)이나 태만(怠慢)을 계속한다면 손해만 봅니다.
남녘국민이 북에 퍼주기만 했다는 말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민족의 공생/공익을 위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군사시설을 모두 철수하고 남측에 영토까지 내주며 ‘더 크게 퍼주었다’고 생각하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얘기도 차분하게 말 할 수 있겠지요. 남한은 북에 땅 한 평이라도 내 줄 수 있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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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이 식량을 지원해 주었더니 원자탄으로 돌아왔다고 하는 것이 남녘 국민들의 강한 비난입니다. 왜 핵무기를 개발했는지 그 이유를 성실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이 복잡한 일을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예로 얘기할 수도 있겠지요. 전쟁 뒤 아직까지 미국이 북에 그래왔듯이 만약, ‘남녘에선 미군이 철수하고 북녘에 주둔한 중국군 몇 만이 원자포와 미사일을 배치하고, 매년 조.중연합 대남군사훈련을 하며 위협한다’면 남녘도 핵/미사일 방위수단을 생각 안 했겠느냐 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북의 핵은 남한을 표적으로 한 것이 아님을 밝히고 그래도 남한국민들이 못 미더워 한다면 이라크와 리비아의 경우와는 다르게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예방하고 있다는 논리도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겠지요. 북은 김일성 수령의 유훈(遺訓)이라는 참된 ‘한반도비핵화’의 뜻을 남과 함께 힘 합쳐 이루자고 제안해야 합니다.
북의 미군철수 주장에 대해서도 입장을 바꿔서 ‘조선은 중국과 동맹을 맺고, 남한은 바다 건너 한참 먼 미국과 동맹관계라면, 남한은 위협적인 중국군 철수하라고 안 할 것이냐고? 또 북의 군사작전권을 틀어쥔 중국이 남한과 맺은 정전협정을 반세기 이상 그대로 붙들고 있으면, 남한은 중국에 평화협정 하자고 요구하지 않을 것이냐고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남한과 중국 사이에 낀 군사주권도 없는 북이 계속 중국 눈치만 보고 있다면 말입니다.
남한정부가 동포애로 지원해준 식량에 대한 감사표시도 제때에 하면 남한 국민은 또 화답할 것입니다. 허나 또 그 식량은 모두 인민군대로 들어간다고 비난하면, 이것도 사실이 아니라면 설명을 해야지요. 사실이 아니기에 설명할 필요도 없다면 오해는 깊어만 갈 것 아닙니까?
북의 식량수요는 약 550만 톤인데 이중 450-500만 톤은 자급자족하고 있으며, 110만 인민군이 먹는 식량은 25만 톤이라는 간단한 수치도 말해 줄 수 있겠지요. 그러면 또 남한국민이 이번엔 식량은 평양에 사는 노동당 간부들이 다 전용한다고 하겠지요. 노동당 간부는 2백여만의 도시 평양에 보다 2,400만이 사는 전국 각 지방에 더 많다는 사실도 상기시켜줄 수 있겠지요.
아프리카 나라에 식량지원하며 분배감시 요구한다는 얘기 못 들었지만 지원자가 원하면 모욕(侮辱)이라 생각하지 말고 당당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해, 전체는 하나를 위해”라는 정신 따라 나눠 갖고, 나눠 먹으며 사는 곳이 북의 진면목이라면 상대가 이해하도록 보여주어야 합니다. 고난의 행군시기도 이겨왔다는 신념을 갖고 말입니다. 지독한 인권탄압국가라고 북을 지탄(指彈)하는 미국과 남녘 보수층의 비난에 대해서 할 말은 무엇인지도 알고 싶네요.
개혁/개방은 왜 안 합니까? 하고 있다면, 자신의 처지에 맞는 방법으로 하고 있는 실례를 보여주며, 다시 역지사지의 논리로, 예컨대 ‘중국의 무력위협과 경제적 압박고립정책으로 외자차관 한 푼도, 교역도 봉쇄당한 남한에 북이 왜 개혁/개방 안 하냐고 다그치면 뭐라 답할 것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 압박 속에서 자주와 사회주의체제를 지키려는 남한이 개혁/개방을 쉽게 할 수는 없겠지요. 베트남은 통일하고 다이모이, 중국은 분단대결 걱정 없어 흑묘백묘(黑猫白猫)의 개혁/개방 한 것입니다. 분단국을 비분단국과 같은 차원에서 비교해서는 안되지요.
남녘에 대고 거칠고 위협적이며 전투적인 고음/강성방송만 되풀이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북의 지도층도 인민들에게 ‘이팝에 고깃국을 먹게 하려고’ 애쓰고 있는 정상적인 우리 겨레 사람들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설득력 있는 어조로 말해야 합니다.
금지구역을 무단으로 넘어 피살된 금강산 관광객사건에 대해 북에서 보낸 적절한 유감표명이 남녘국민에 여러 이유로 잘 전달되지 않았고, 연평도 포격전에서 북의 인명피해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잘 알려진 남측민간 인명피해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유감표시는 남북관계를 호전(好轉)시킬 수도 있습니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좀더 연구해 가며 진위(眞僞)가 가려질 때를 기다려야겠지요.
이렇게 해서 북은 울타리 안 인민들의 통일교육을 넘어서 통합의 상대인 남녘 국민들의 마음도 얻어야 합니다. 다 같은 겨레인 남녘동포도 북녘형제가 국제적 불량아로 인식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북녘 인민들도 남녘만큼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란 것을 남녘국민이 이해할 때 화해/협력/교류는 쉬워지고 통일의 희망은 커집니다. 북의 원칙에 입각한 자주성/자존심으로 중국, 소련, 미국과 맞서 결국은 이겨내어 온 실력을 이해하고 격려하는 남녘과 해외동포들도 많습니다.
<下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