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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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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너구리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7-12-31 (일) 05:57:14

너구리는 왜 죽기전에 절에 왔을까..

 

 

20171229_153311.jpg


 

 

너구리는 영어로 라쿤(Raccoon), 혹은 프로시언 로토(Procyon lotor)라고 합니다. 라쿤은 원주민 말로 냄새를 찾는 손이라는 뜻이고 프로시언 로토는 씻는 곰이라는 뜻입니다, 너구리가 먹이를 먹기전에 물에 담그는 습관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위생관념(?)과는 무관하다고 하네요.

 

미국서 살면서 가장 애처롭게 보인 동물은 너구리입니다. 길에서 가장 많이 비명횡사(非命橫死)하는 동물이기때문이죠. 도심만 벗어나면 펼쳐지는 자연의 풍광에 동물들도 많다보니 차에 치이는 경우가 많은데 다소 굼뜨기때문일까요.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들이 너구리의 사체(死體)입니다.

 

어제(29) 오후 330분경 뉴욕주 샐리스베리 밀즈에 있는 원각사를 찾았습니다. 얼마전 인도네팔의 부처님성지를 다녀온 순례단의 현지 동영상을 받기위해선데요. 뜻밖의 장면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지광스님과 너구리 - Copy.jpg

 

 

주지 지광스님이 저를 위해 처소(處所)에서 동영상 파일을 갖고 법당 앞에 차를 세웠는데 그 앞에 너구리 한 마리가 죽은 듯 누워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그 직전에 제가 왔을때만 해도 없었는데 스님이 잠시 처소에 다녀온 5분정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어제 기온이 섭씨 영하 8도 정도였지만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15도는 될만큼 혹한(酷寒)이었는데요. 가까이 다가보니 너구리는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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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스님은 처음엔 절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누워 있는줄 알았다고 합니다.(원각사에는 보리라는 이름의 진돗개가 있고 버려졌다가 자연스럽게 식구가 된 고양이도 몇 마리 있습니다.) 대낮에 너구리가 법당 앞에 누워있는 장면은 상상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소리를 내고 발등으로 살살 건드려 봐도 너구리는 미동(微動)을 하지 않았습니다. 약에 취했는지, 어디를 다쳤는지, 도대체 어떻게 이곳까지 와서 혼절했는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무슨 상처가 있나 싶었지만 피는 흘리는 것 같지는 않았고 발들이 추위에 동상이 걸린 것 마냥 오그라들었습니다.

 

지광스님은 아이구, 참 큰일이네. 얘를 어떻게 하지..” 그사이 총무일을 보는 자비성 보살도 나와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스님 동물구조대같은 곳을 찾아서 전화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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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쩍 않고 숨만 내쉬는 너구리를 그냥 뒀다간 이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얼어죽을게 틀림없는만큼 당장 방법을 취해야 했습니다. 우선 너구리를 따뜻한 곳에 옮기는게 급선무였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보호장비도 없는데 야생의 너구리가 갑자기 깨어나 공격할 수도 있으니 함부로 손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지광스님이 후원에 있는 큰 플라스틱 통을 가져와 담아보려 했지만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자비성보살이 적당한 들것을 찾다가 종이 박스 두 개와 큰 타월을 들고 나왔습니다. 타월을 들것처럼 감싸서 너구리를 박스안에 넣을 요량이었죠.

 

결국 저까지 합세하여 무사히 너구리를 박스에 넣고 난로가 있는 후원까지 옮길 수 있었습니다.

 

 

지광스님과 너구리.jpg

 

자비성 보살이 따뜻한 물을 너구리 입가에 흘려주고 반응을 살피며 체온을 유지시켜 주었습니다. 일단 따뜻한 곳에 옮겼으니 안심은 됐고 인터넷으로 동물구조대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개나 고양이처럼 반려동물을 위한 곳들은 많지만 야생동물 구조(Wild animal rescue)와 관련된 시설은 근처에선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광스님이 결국 동물병원 한곳에 전화를 했더니 우리는 야생동물을 취급할 수가 없다. 일단 긴급조치는 잘 했으니 함부로 손 대지 말고 이곳에 전화를 해보라며 한군데 도움이 될만한 연락처를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너구리에겐 그리 시간이 많지 않았나 봅니다. 제가 집에 돌아오고 얼마 안된 오후 6시 경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자비성 보살은 따뜻한 곳에서 좀 나아질까 싶었는데 치료도 못받고 이렇게 되니까 너무 마음이 않좋네요..”하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래도 너구리의 마지막 가는 길은 편안해 보였다고 합니다. 얼었던 발도 온기에 녹았는지 윤기도 나고 마치 합장하듯 손을 모은 모습이었다니 말입니다.

 

너구리가 살았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따뜻한 곳에서 사람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광스님은 땅이 얼어 소형 포크레인을 동원해 너구리를 위한 안식처를 만들어 주신다고 하네요.

 

대체 그 너구리는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순간에 어떻게 원각사 법당 앞에 올 수 있었을까요. 너구리와 원각사는 무슨 인연이 있었을까요. 어쩌면 너구리는 전생에 사람은 아니었을까요. 비록 어떤 죄업(罪業)으로 동물이 되었지만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 참회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순간 스님의 손길을 청한 것은 아닐까요.


저물어가는 2017년 뉴욕원각사를 찾아온 한 너구리의 특별한 사연이 가슴을 시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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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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