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코미디의 대상으로 삼아도 좋다.”
1987년 12월 28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는 MBC 코미디언 송년모임에 참석해 의미심장(意味深長)한 말을 꺼냈습니다.
“앞으로 창작 연예활동에 성역(聖域)이란 있을 수 없고 소재는 완전히 개방되야 하며 설사 나를 코미디의 대상으로 삼아도 좋다..특히 선거과정에서 나를 반대했던 일부 연예인의 활동에 위축이 있어서는 안된다..”<경향신문 1987년 12월 29일 기사 발췌>
그 보도에 웃음이 나오더군요. 얼마나 이 나라가 표현의 자유가 없었으면 대통령 당선자가 마치 시혜(施惠)라도 베풀듯 ‘나를 웃음의 소재로 삼아도 좋다’고 짐짓 관대한 척 윤허(?) 하느냐 이겁니다.
그는 12.12 신군부의 반란(反亂) 동지였던 전두환 소장과 지었던 전죄(前罪)가 있습니다. 신군부는 80년 광주민주화항쟁을 군화발로 짓밟은 후 사회정화(社會淨化)를 빌미로 수많은 사람들을 강제연행, 악명높은 삼청교육대에서 혹독한 군사집체 훈련을 시켰습니다. 교육을 받다 죽은 사람도 있었고 후유증으로 폐인(廢人)이 된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범죄를 저질렀다면 법에 의해 처벌하면 되는데 나이를 불문하고 멋대로 끌고가 수주간 혹독한 ‘얼차레’를 시켰으니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문제는 길 가던 사람도 재수없으면 끌려갔다는 것입니다.(그 무렵 대학생이었던 전 광화문에서 불심검문을 당할 때 기관원으로 보이던 카키색 바바리 사내의 매서운 눈길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당대 최고의 연예인도 여럿 피해를 입었는데 가령 저질(底質) 코미디언으로 낙인찍혀 TV에서 자취를 감춘 ‘땅딸이’ 이기동같은 이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그 후유증으로 타계한 사실이 훗날 배삼룡의 증언으로 밝혀졌습니다. 신군부에 의해 방송출연이 금지돼 당시 인기를 끌었던 ‘사와’라는 빙과류 사업을 하다 부도를 내자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경제인’이라는 핑계로 끌려갔는데 사실은 ‘3김’의 하나인 김종필을 지지했기 때문에 미운털이 박혔다는 얘기도 전해졌지요.
기억하시겠지만 박용식이라는 탤런트는 ‘지존무상’인 그분과 너무나 닮아서 방송출연이 정지됐고 (한때는 그이가 가발을 쓰고 출연한 드라마도 기억나네요.) 코미디언 이주일도 80년대초 그넘의 머리숱 때문에 방송을 한동안 못했습니다. 전국의 대머리 아저씨들이 그야말로 분기탱천할 만행(蠻行)입니다. 여담(餘談)이지만 TV드라마에서 식모이름으로 자주 애용된 ‘순자’도 그분의 부인 이름이어서 퇴출되야 했구요. 주걱턱 코미디언으로 인기있던 심철호가 여자가 아니었던게 천만다행이었습니다.
“나를 코미디의 대상으로 삼아도 좋다”는 소리에 당시 언론은 우리도 대통령을 풍자하는 선진국이라며 ‘노비어천가’를 부르며 찬양했지만 신군부의 핵심이었던 그의 쇼맨쉽에 국민들은 쓴웃음을 지을 도리밖에 없었지요.(노태우의 이른바 '고독한 결단'으로 평가되는 6.29선언도 국민적 항쟁에 부딛친 당시 정권의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그마저도 실은 정권이양을 고려한 전두환의 기획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요.)
어쨌든 노태우의 한마디로 인해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정치인들, 방귀깨나 뀌는 사회 저명인사들을 웃음의 소재로 삼기 시작한 시대가 열렸습니다. 풍자(諷刺)가 못마땅한 후대의 대통령이 있다면 ‘이사람 노태우’, ‘보통사람 노태우’를 원망할 일입니다.
대통령 풍자가 가장 인기를 끌었던 시절이 김영삼 김대중 정부 때였다면 풍자가 시들한건 현 이명박 정부인 것 같습니다. 풍자를 성대모사(聲帶模寫) 정도로만 치부한 우리 코미디언들의 상상력과 자기계발의 부족도 이유가 있겠지만 풍자를 허락하지 않는 방송 스스로의 자기검열때문이 아닐까요.
마음먹기로만 한다면 MB처럼 풍자하기 좋은 인물이 없습니다. 취임이후 줄곧 긴장관계에 있는 박근혜 전 대표도 과거 3김처럼 맞물려 요절복통의 설정개그도 가능할뿐더러 그게 아니더라도 얼마나 ‘꺼리’들이 많습니까.
예를 들어볼까요. 취임이후 끊임없이 화제를 모으는 ‘내가 그거 해봐서 아는데’ 시리즈만 응용(應用)해도 대박입니다.
“내가 민주화운동을 해봐서 아는데..” (2008년 6월 11일)
“나도 체육인이다. 수영연맹회장을 해봐서 아는데..”(2008년 8월 26일)
“내가 노점상을 해봐서 여러분 처지 잘 아는데..” (2008년 12월 23일)
“나도 창업했던 소상공인선배라서 아는데..”(2009년 2월 12일)
“나도 기업을 운영해봐서 잘 아는데..”(2009년 5월 31일)
이밖에 “나도 비정규직 출신이어서 아는데..”, “나도 한때 철거민이어서..”, “나도 떡볶이 장사를 해봐서..”, 천안함 사건때는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 파도에도 그리 될 수 있다”는 유명한 어록(語錄)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시리즈가 국민들의 입에 회자(膾炙)된 탓인지 한동안 뜸하다가 지난 2월 28일 심야 민생탐방때 동대문 시장에서 한 옷가게 주인에게 “열심히 해라..내가 장사해봐서 안다”고 다시 이어져 국민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또 3월 28일 환경미화원을 포상하는 자리에서 “대학다닐 때 재래시장에서 환경미화원을 했다”고 밝혀 또하나의 전력(前歷)을 공개했습니다.
‘내가 해봐서’와 유사한 어록들도 있습니다. 서울시장 재임시절 ‘하나님께 서울시를 봉헌’할만큼 독실한 ‘장로 대통령’인 그이건만 2008년 9월 불교계의 ‘종교편향’ 비판이 일자 “나는 원래 불교와 매우 가까운 사람으로 불교계에 친구도 많다”고 밝혀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하였지요.
대통령을 비롯, 유독 MB정부인사중에 병역미필자가 많아 ‘군미필정권’이라는 조롱도 받고 있지만 국군통수권자로서 능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듯 합니다. 지난 2월 10일 최전방 해병대 2사단 장병들을 찾아 “내가 젊었을 때 해병대가 있는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해병대와는 아주 친숙하다”고 했거든요.
이 때문에 “대체 우리 대통령은 안해본게 뭣이며, 모르는게 뭐냐?”는 말이 나올 법 합니다. 사실 ‘내가 해봐서 아는데’의 MB 화법은 상대의 처지에 나의 과거 경험을 대입시켜 공감대(共感帶)를 형성하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기법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너무 강조하면 불편함과 피로감의 역효과를 낳습니다. 설사 상대와 똑같은 경험을 했다해도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다를진대 당장 고통을 겪는 사람에겐 허무한 위로가 될 뿐이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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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22일 양천구 수해현장 가정집을 방문해 “마음을 편안하게 먹어요. 기왕에 된거니까 편안하게..”하며 위로(?)하자 쑥대밭이 된 집에서 거의 울듯한 표정의 아주머니는 “편안하게 먹을수가 있어야죠”하고 대꾸하는 KBS 뉴스를 보고 실소(失笑)를 터뜨린 것도 비단 저만은 아니었을겁니다.
MB식의 화법이라면 우리 국민 모두 안해본게 없고 모르는게 없을 것 같습니다. 어디 한번 해볼까요? “공수부대 나온 친구 있어서 잘 아는데..” “우리 이웃집 불나서 잘 아는데..” “미국 드라마 많이 봐서 잘 아는데..” "와이프가 애 낳아서 잘 아는데..“ “대통령 많이 겪어서 나도 잘 안다구..”
그런데 맙소사, 우리 대통령의 독특한 화법이 급기야 국제적으로 유명해질 모양입니다. 이번 동계올림픽 개최의 개가(凱歌)를 올린 남아공에서 이런 얘기를 하셨더군요.
“I was a member of the board of Fina(swimming's governing body) and fellow sportsman so this is why I can appreciate more than anyone what the IOC and Olympic Movement have given Korea. Now we want to give back.”
“내가 국제수영영맹(FINA) 멤버를 해봐서 아는데 IOC와 올림픽운동이 한국에 기여한 것에 대해 그 누구보다 내가 감사한다. 이젠 우리가 보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