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어놓건대 사반세기 기자생활을 하면서 헛다리 짚는 오보를 저 역시 했습니다. 특종을 꿈꾸는 취재기자들은 늘 지뢰밭을 걷듯 오보의 위험을 안고 살아갑니다.
혹자는 두번 세번의 사실확인을 해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금언을 늘어놓지만 매일 피말리는 속보경쟁을 하는 기자들로선, 특히 열악한 취재환경에서 도박같은 판단을 강요(?)받는 한국 언론인으로선 참으로 어려운 주문입니다.
그럼에도 기자들의 오보는 1차적으로 그들의 책임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김정은 방중’ 오보사태 분석은 시간대별 자료를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고 연합뉴스를 흠집내기 위한 의도는 아니라는 것을 부연(敷衍)하고자 합니다.
연합뉴스는 한국 미디어로선 가장 많은 기자들을 보유한 권위있는 국가기간통신사라는 점에서 다른 매체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를 용납하기 어렵다는 것도 이해할 것으로 믿습니다.
중요 사안을 정확하고 빨리 보도해야 하는 속보는 양날의 칼 같아서 기자들에게 특종이라는 짜릿한 당근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오보라는 쓰디 쓴 잔을 들이키게도 합니다. 현장기자에게 오보는 정말 최악의 상황입니다. 매일 경쟁사 기자들과 치열한 전쟁을 치르다 낙종(落種)을 했을 때의 참담함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러나 낙종도 오보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더욱이 그 오보를 특종으로 생각했다면 충격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하지요.
이번 오보 사태는 불확실한 사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했다는 점이 근본 원인으로 분석됩니다. 연합이 ‘김정은 방중’이라는 제목기사로 1보를 날렸을 때 글자 하나 차이가 운명을 가름짓게 했습니다. 만일 ‘김정은 방중설’이라고 했다면 그 가능성만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설혹 사실과 다르더라도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
(1986년 조선일보가 호외로 김일성 피격 사망이라는 세계적인 오보를 하고 다른 매체들도 이를 따라갔을 때 중앙일보는 김일성 사망설이라는 제목을 달아 ‘물귀신 오보’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너무 약하게 나간다는 내부 지적을 받았지만 사망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후에는 정확한 판단이라는 칭찬이 쏟아졌고 해당 편집기자는 큰 상도 받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연합은 처음부터 김정은 방중이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이는 믿을만한 소식통의 제보였을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정황(情況)으로 볼 때 여러 팩트들을 종합분석하는 과정에서 내린 성급한 결론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이용하는 특별열차의 이동, 국경 지역의 삼엄한 경계, 현지에서 보내온 소식통의 상황제보는 당연히 김정일의 중국 방문이라는 팩트를 유추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필 김정은의 방중으로 결론내려진 것은 첫째 김정일이 최근 1년사이에 세 번이나 중국을 찾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 둘째 사실상 2인자인 김정은이 불원간 중국을 방문할 것으로 전망이 됐다는 점때문입니다.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동반 방중이 고려되지 않은 것은 적어도 한 사람이 북한내 체류하고 있다는 동선(動線)이 파악됐거나 1인자와 2인자가 동시에 자리를 비우기 힘들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입니다.
그렇다해도 김정은의 방중이라고 무게중심을 둔 것은 나름 믿을만한 제보가 있었을 것이고 기자(데스크)의 판단이 가미(加味)됐을 것입니다. 일단 제목 1보를 띄운 이후에 정부 당국자의 재확인을 거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연합이 1보를 5월 20일 오전 9시11분에 긴급으로 띄우고 별 망설임(?)없이 7분만에 확인됐다고 베이징/선양발로 2보를 전한 것은 이미 김정은의 방문을 확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현지에 파다하게 퍼진 소문을 근거했느냐입니다. 1보이후 현지 인터넷에 소문이 떴다고 소개한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게다가 정부 당국자마저 “그런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기에 김정은 방중이 대세로 굳어진건 아닐까요.
확인보도가 나간 이후엔 일사천리로 준비된(?) 아이템들을 쏟아냈습니다. 어지간한 언론사라면 언젠가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할 것에 대비해 다양한 관련기사들을 준비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이후 8시간안에 무려 35개의 속보들이 이어진 이유입니다.
연합의 불운은 이같은 판단을 주워담을 뚜렷한 반전(反轉)의 징후(徵候)가 몇시간동안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정보망이 크게 떨어지는 여타 언론사들은 다른 외신의 확인보도나 정부당국자의 입만 바라볼 뿐 달리 방법은 없었겠지요.
정부가 비판받을 대목은 김정일의 특별열차가 중국에 도착한 후에도 확인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까지 중국당국으로부터 확인을 받지 못했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고 알고도 즉답을 피했다면 이미 엄청난 오보가 전 세계로 퍼진 상황을 너무 가볍게 본 것은 아닌지요.
한바탕 ‘오보 한마당’을 펼친 대부분의 언론은 정부와 정보당국의 정보력 부재를 비판하며 날을 세우는 등 책임전가(責任轉嫁)식 보도행태를 보였습니다. 연합도 속이 끓었겠지만 자의적 판단에 의해 1보를 날린 점, 정부와의 특별한 관계를 고려할 때 비판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왜 우리 언론은 오보 수습과정이 명쾌하지 않고 독자에 대한 사과에 인색할까요.
유감스럽지만 또 연합을 예로 들어야겠습니다. 김정일의 방중이 확인된 이후 20시와 20시23분, 22시 33분 세차례 간헐적으로 관련 소식을 전한 연합은 23시27분부터 <김정일 방중>이라는 꺽쇠제목을 달고 자정까지 33분간 총 31개 기사중 무려 27개의 속보를 올리는 괴력(?)을 발휘했습니다. 대부분 이미 송고한 김정은 기사들 김정일 기사로 살짝 손질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보일듯말듯 ◆알림◆이라는 작은 제목이 있었습니다. 클릭했더니 아래 내용이 뜨더군요.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정부관계자를 인용해 김정은 방중을 보도했다구요? 긴급으로 전한 연합의 1보는 물론 이어 올린 기사들을 확인해 볼까요.
김정은 방중 소식, 中인터넷서 출현 2011/05/20 09:16 송고
(베이징=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20일 투먼을 통해 중국을 전격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중국 인터넷에서도 방중 관련 소문이 포착됐다. 중국의 한 네티즌은 19일 밤 QQ닷컴 마이클로블로그에 "김정일의 아들이 중국에 왔다. 투먼에 계엄령이 내렸다"라는 글을 올렸다. 투먼 소식통들에 따르면 투먼과 북한의 남양을 잇는 다리 주변 등 시내 전역에 공안들이 배치돼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다. 주민들 사이에 북한 고위 인사가 방문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어 2분후인 9시18분 '방중2보'로 띄운 뉴스는 투먼의 소식통을 인용한 것입니다.
北 김정은, 투먼 통해 방중(2보) 2011/05/20 09:18 송고
(베이징.선양=연합뉴스) 북한의 2인자인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20일 새벽 중국 투먼(圖們)을 통해 방중한 것으로 확인됐다.
투먼 현지의 한 소식통은 "김 부위원장이 오늘 새벽에 투먼에 도착한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어디로 이동했는 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날 새벽 투먼 일대에 경비가 대폭 강화된 가운데 북한 고위인사의 방중설이 나돌았다.
투먼과 북한의 남양을 잇는 다리 주변 등 시내 전역에 공안들이 배치돼 삼엄한 경비를 펼쳐졌다.
그리고 3보(인터넷소문을 포함하면 4보)에서 투먼 현지소식통을 인용하고 뒷부분에 비로소 정부 고위관계자의 입을 빌어 “좀 두고봐야겠지만 김정은이 방문한 것으로 안다. 김정일과 같이 갔는지 단독방문인지 좀 지켜봐야 하지만 일단 혼자 간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北 김정은, 투먼 통해 방중(3보) 2011/05/20 09:38 송고
(서울.베이징.선양=연합뉴스) 북한의 2인자인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20일 새벽 중국 투먼(圖們)을 통해 방중한 것으로 확인됐다. 투먼 현지의 한 소식통은 "김 부위원장이 오늘 새벽에 투먼에 도착한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어디로 이동했는 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날 새벽 투먼 일대에 경비가 대폭 강화된 가운데 북한 고위인사의 방중설이 나돌았다. 투먼과 북한의 남양을 잇는 다리 주변 등 시내 전역에는 공안들이 배치돼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좀 두고봐야겠지만 그동안의 정황으로 봐서 오늘 새벽 김정은이 방중한 것으로 안다"면서 "단독방문인지, 김정일과 같이 갔는지는 좀 지켜봐야 하지만 일단은 혼자 간 것으로 보이며 방문지는 베이징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확인했다.
김 부위원장은 열차 편으로 평양을 출발해 함흥, 청진, 남양을 거쳐 중국 투먼으로 간 것으로 보이며 옌지(延吉)와 창춘(長春)을 거치는 이른바 창춘-지린-투먼 집중 개발 플랜인 이른바 '창ㆍ지ㆍ투(長吉圖)계획'의 핵심지역을 둘러볼 공산이 커 보인다. 또는 투먼에서 훈춘(琿春)을 먼저 둘러보고 창지투 지역으로 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김 부위원장이 지난해 9월 노동당 대표자회를 통해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오름으로써 사실상 2인자로 부상한 가운데 첫 방문이라는 점에서 중국 방문에서 어떤 인물을 접촉할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 부위원장이 창춘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과 회동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지난해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했을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창춘을 직접 방문해 란후 호텔에서 회동한 바 있다.
보셨다시피 <알림>을 통해 정부 관계자를 인용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이미 3차례 보도를 통해 김정은의 방중을 보도해 놓고 책임을 정부관계자에 돌리다니요. 솔직하지 않은 자세입니다. 오보 원인을 명시하고 독자들은 물론, 연합에 전재료를 지불하는 미디어 고객들에 사과하는 것이 국가기간통신사다운 태도였을 것입니다.
알림의 방식 역시 기사 리스트 속에 슬쩍 넣을게 아니라 프런트면에 배너광고에 준하는 크기로 독자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보를 시인하는 언론사의 입장을 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밀어넣고, 그나마 내용도 틀리게 기술하면 곤란하지요.
김정은 오보의 원인을 설명한 '김정은 단독방중 착시현상 왜 빚어졌나' 라는 기사도 오보라는 명시적 표현대신 착시현상이라는 두루뭉술한 단어를 동원한 것이 영 개운치 않습니다.
김정은 방중과 관련한 35개의 관련기사들은 만 하루가 안돼 연합 홈페이지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알림을 통해 <김정일 방중>으로 수정 대체하겠다고 고지(告知)했으니 수치스런 흔적을 청소할 수는 있지만 오보도 사실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래는 김정은 기사들이 완전히 사라진 해당시간대 기사리스트입니다.

관련기사들을 모아둔 덕분에 이번 칼럼을 쓸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칼럼은 연합의 흠집내기가 아닙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언론의 구태의연한 병폐(病廢)를 고치려는 자성(自省)의 목소리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08년 10월 21일 모 인터넷 신문이 오보를 사과하는 기사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가짜 연합뉴스 기사에 낚여 김정일이 사망했다는 보도를 했기때문입니다. 당시 이 매체는 편집장의 이름으로 독자들에게 머리숙여 사죄했고 연합뉴스에도 사과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이 사과문에 딸린 댓글을 몇 개 소개하며 이 칼럼을 맺습니다.
애독자 ( 2008.10.21 ) 추천: 12 반대: 3
000 그동안 잘 했습니다. 힘내십시오!
사과 ( 2008.10.21 ) 추천: 14 반대: 6
오보내는 언론이 한두곳인가요.
편집장이 사과하는 유일한 언논
도꼬다이 ( 2008.10.21 ) 추천: 22 반대: 5
000뉴스가 그래도 제일 고군분투 하는거 같더군요
용기 잃지 마세요! 000뉴스 아침마다 보는 독잡니다
김정일을 둘러싼 ( 2008.10.21 ) 추천: 10 반대: 4
김정일 사망설을 둘러쌓고 말들이 분분하고 오보된 기사도 실리고 하였지만,
연합뉴스 기사는 네티즌이 올릴수 없는 기사입니다.그런데,연합뉴스 기자가
어떤 인터넷게시판에 연합뉴스 기사가 나서 연합뉴스로 가져와 올린 것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