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목소리가 이명박같이 되네?”
와~하고 웃음이 터졌습니다. 역시 정치인은 유머가 있고 볼일입니다. 미국생활이 얼추 10년이 되가다보니 미국정치인과 한국정치인을 곧잘 비교하게 됩니다.
제가 미국정치인에 대해 느낀 것 두가지만 꼽으라면 유권자라면 하늘처럼 섬긴다는 것, 그래서 늘 “나이스”하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유머가 넘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정치인도 두가지가 있긴 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선거철에 국한된다는 것, 또하나는 어설프고 설렁한 유머라는 것이죠. 저는 지금 서울에 와 있습니다. 2012년 재외동포기자대회에 참석중입니다.
한국기자협회와 재외동포언론인협의회가 공동주최하는 재외동포기자대회는 올해로 11년째입니다. 개인적으로 뉴욕생활 9년째이지만 재외동포기자대회는 2010년 뉴스로(www.newsroh.com) 창간을 계기로 작년에 처음 참석했습니다.
사실 뉴스로는 한국과 미국 등 세계 10여개국의 필진과 기자 100여명이 참여하는 ‘글로벌 웹진’인만큼 딱히 동포언론이라고 제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의 주 활동무대가 뉴욕이고 재외동포기자의 역할도 하는만큼 이 행사에 참석하지 못할 이유 또한 없지요. ^^ 올해는 4월 총선으로 예년보다 한달 정도 일찍 시작됐는데요. 일주일간 서울과 충남, 경남, 전남 등지를 돌며 서울시장과 도지사 등과 간담회를 갖고 해당 시도의 명승지와 중요 행사도 둘러보는 등 다양한 일정을 소화합니다.
주마간산 Corea를 통해 이런저런 뒷이야기와 고국의 새로운 풍물을 많은 사진들과 함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배경설명은 이쯤에서 그치구요. 한국과 미국의 정치인 비교를 한 이유를 말씀드리죠.
재외동포기자대회가 개막된 12일 행사장인 광화문의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엔 여야의 정치인들과 언론계 대표, 기자협회 회장을 역임한 원로 언론인들도 축하차 참석했습니다. 일부 정치인들의 짧은 축사가 있었고 미국서 한인 최초로 시장과 연방하원의원을 역임한 김창준 한미재단이사장도 축사를 했습니다.
여독이 채 안풀린 재외동포기자들의 졸음을 확 달아나게 만든 것은 단연코 김창준 이사장이었습니다. 10여분의 축사를 느릿느릿하게 하면서 유머와 위트를 적절히 배합해 청중들을 계속 웃게 했기때문입니다.
‘내 목소리가 왜 이명박같이 되는거야?“ 한 것도 바로 김창준 이사장입니다. 중간에 목소리가 잠기며 쇳소리처럼 변하자 ‘MB표 보이스’라고 말한 것이지요. 김 이사장은 서두부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재외동포기자대회 일정을 언급하며 ”부럽네요. 기자들이 쎄긴 쎕니다. 뭐 부여에서 곤드레돌쌈밥? 이런걸 먹고, 충남에 경남에 전남에 대단하네요. 난 한국에 오니까 돈안드는 창덕궁이나 구경시켜 주던데...” 하더군요.
유머엔 톡 쏘는 풍자가 있어야 합니다. 김 이사장은 역사적인 재외선거를 앞두고 재외국민들의 등록률이 너무 낮아 국내 일부에서 재외선거 무용론이 제기되는 것과 관련, 이렇게 쏘아붙였습니다.
“이번엔 (재외국민들이) 당만 찍습니다. 국회의원을 못찍고 당을 찍는데 비례대표가 누군지도 몰라요. 이걸 참정권이라고 합니까? 공천제만 해도 그래요. 선거에서 떨어지면 몰라도 (당이 지명하는) 공천에서 떨어지면 못참죠. 화가 나면 3대가 갑니다. 죽을 때 원수 갚아달라 이래요. 공천은 미국처럼 돌려줘야죠. 왜 당이 결정합니까. (쉰목소리가 되자) 이거 목소리가 이명박같이 되는지..”
“비례대표는 없애는게 좋아요. 당에서 그냥 주는거다. 이거 신이 내린 국회의원이지. 그것뿐인가? 면의원 군의원, 구청에도 비례대표 있어요.”
그러면서 대담하게(?) 마초적인 말도 이었습니다.
“(한국에선) 남자가 할게 별로 없어요. 여자들한테 말 잘못하면 여성부에 끌려가고..그러니까 국회에서도 수류탄(최루탄 투척사건 풍자)이나 던져야지..미국같으면 감옥가는데 위원장으로 진급하대. 맞사모라고 알아요? 맞고 사는 남편 모임..회원이 5만2천명이래..웃을 일 아니에요? 이거 사이트 보면 정보를 주는데 손톱에 할퀴면 무슨 약을 바르면 좋다..뭐 이런게 나와..”
대충 이런 요지로 축사를 했으니 끊임없이 웃음이 터질밖에요. 미국서 단련된 베테랑 정치인다운 해학이 자못 즐거웠습니다. 아마도 우리 정치인들이 이런 여유있는 유머를 즐길 줄 안다면 여야가 첨예한 대립을 할지언정 날치기 통과나 그걸 막으려고 멱살잡이와 업어치기 눈찌르기 신공에 소화기를 뿌리고 햄머로 회의장문을 부수는 난장판은 벌어지지 않을겁니다.
이렇게 오전 행사를 마치고 점심은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주재하는 오찬을 겸한 핵안보정상회의 설명회가 았었습니다. 3월 26일과 27일 양일간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는 대한민국 정부가 G20 정상회의에 이어 또한번의 국가적 역량을 발휘하는 행사로 의미를 부여했는데요.
이번 회의는 핵테러 대응과 핵물질 시설방어, 핵물질 불법거래방지 등 3개 의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그런데 겁나는 정보가 있더군요. 현재 지구상 핵무기는 12만6500개에 달하고 플루토늄 등 핵물질의 분실사고가 매년 200~250건에 달한다는겁니다.
영화에서 보듯 핵무기를 테러그룹이 탈취하는 일은 아니지만 이런 분실사고가 자칫 테러그룹의 핵무기 제조로 이뤄진다면 다리뻗고 자기는 힘들 것입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첫 행사를 워싱턴 D.C.에서 했는데 당시 47개국이 참가했습니다. 이번 서울회의는 가봉 등 아프리카 국가와 덴마크, 리투아니아, 아제르바이잔, 헝가리, 루마니아 등 6개국이 새롭게 참여하고 인터폴도 처음 참석키로 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진짜 핵없는 세상을 바란다면 핵무기를 보유한 소수의 국가들도 전량 폐기해야 마땅한데 “형님국가들은 조금 갖고 있을테니 니들은 가지면 안돼”, 하고 강짜를 부리는 것은 뒷골목 조폭의 세계같아 찝찝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