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주머니를 열기전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역사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오래된 미래다.”
2012재외동포기자대회 둘째날 일정에는 국가브랜드위원회 이배용 위원장과 강연을 겸한 오찬이 있었습니다. 국가브랜드위원회는 이명박 정부들어 대통령 직속으로 생긴 기구입니다. 대한민국의 국가브랜드를 높이기 위한 전략적 조직이 가동된다는건 대단히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그런만큼 국가브랜드위원회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이배용 위원장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이배용 위원장은 이대총장을 역임한 역사학자입니다.
이배용 위원장은 약 30여분에 걸쳐 준비한 프로젝션을 통해 ‘국가브랜드와 역사문화의식’에 대한 강연을 했습니다. 청중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편안한 강연이었습니다.
이배용 위원장은 국가브랜드를 대외적으로 제고하기 위해선 한국인의 혼이 필요하다는 얘기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일본이 ‘상냥한 일본인’이라는 이미지로 브랜드 전략을 세웠다면 한국은 역사속에 면면히 흐르는 ‘따뜻한 미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문화는 그 시대의 정신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면 八萬大藏經(팔만대장경)도 한낱 빨래판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찬란한 문화유산에 새겨진 이미지는 과거의 것이 아니라 내일의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이 위원장이 예로 든 것을 몇가지 소개하면 우선 신라의 27대 선덕여왕의 역사적 의미를 들 수 있습니다. 선덕여왕은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았고 이 시대 창조적 문화유산인 첨성대와 황룡사9층목탑이 세워졌습니다.
첨성대는 정교한 기하학적 건축물로 361.5개의 돌로 세워졌고 하늘의 별자리와 해와 달을 정확하게 관측한 놀라운 천문대입니다. 고려때 몽고의 침략으로 소실된 황룡사 9층목탑은 무려 82m 높이의 거대한 건축물이었습니다.
신라는 불교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9층목탑은 당시 신라가 물리쳐야 했던 9개의 적을 상징하며 이 탑을 도는 탑돌이를 통해 나라의 安危(안위)를 빌었던 것입니다. 몽고군이 황룡사 9층 목탑을 불태운 것은 고려인의 혼을 빼앗고 완전한 복속을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엔 백제금동용봉향로입니다. AD 7세기초에 만들어진 이 향로는 64cm의 작은 크기이지만 우주의 森羅萬象(삼라만상)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역시 이 무렵 조성된 것으로 서산마애삼존불상이 있습니다.
이배용 위원장은 불상의 은은한 미소에 주목을 했습니다. 이 불상은 아침 해가 뜰때부터 솟아오르면서 각도에 따라 微笑(미소)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1300년을 쉼없이 웃고 있는 마애삼존불상처럼 “우리 민족의 DNA는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찾아가는 것”이라며 “미소의 DNA를 찾자”고 제안했습니다.
합천 해인사에 보존된 팔만대장경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인류의 보물입니다. 8만4천개의 법문이 총 5200만자로 구성된 팔만대장경은 아시다시피 고려때 몽골의 침략을 맞아 조정이 강화도에 피난하면서 불력을 통해 적을 물리칠 수 소망을 담아 16년간 제작한 것입니다.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만 팔만대장경을 무려 600명이 함께 참여했는데 글자들이 마치 한 사람이 작업한 것처럼 균일하게 만들어졌다는군요. 또한 대장경이 보존된 곳은 놀라운 자연 향습기능으로 800년 넘는 세월을 아무 문제없이 견딜 수가 있었다는 겁니다.
이날 강의에서 눈길을 끈 것은 경복궁 근정전의 돌계단 앞에 있는 원숭이상입니다.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아닙니다만 이배용 위원장은 “이름모를 석공이 만든 이 원숭이상의 표정이 너무도 오묘해서 저는 이것을 철학자 원숭이라고 부른다. 백성의 안위를 생각하며 정치해달라는 인간주의적 소망을 형상화한 것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위원장은 국가브랜드의 대표적인 하나를 말하라면 한글을 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은 가슴 따뜻한 임금이었다. 길 잃은 아이의 엄마를 찾아주듯 따뜻한 연민의 세종대왕은 1426년 노비들에게 출산휴가를 100일이나 주었고 4년후엔 또한달의 휴가를, 또 4년후엔 남편에게도 한달의 휴가를 주는 등 부부합산 1406일의 휴가를 주었다.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려해도 글을 몰라서 어려움을 겪자 한글을 창제한 것이다. 오늘날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기리고 있는데 이날은 바로 세종의 탄신일이다.”
즉 한글은 단순히 하나의 문자가 아니라 국민을 생각하는 소통과 배려의 문자요, 우리것에 대한 존귀함을 시사한다는 것입니다. 세종의 진정성을 다시 한번 생각게 하는 지적이었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歲寒圖(세한도)를 아시지요? 24살에 과거에 급제했지만 어지러운 정치에 휘말려 제주로 9년간 유배되는 시련을 겪을 때 그린 작품입니다. 학자가 겪는 가장 큰 괴로움은 책을 못읽는 괴로움입니다. 세한도는 바로 제자가 유배된 스승을 위해 중국에서 여러 귀한 책자를 구해 보내준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의 마음을 담은 것입니다. 책도 구하기 힘든 시절, 운반도 만만치 않던 시절 스승을 위한 제자의 마음이 얼마나 대견한 것인가요.
세한도. “날이 차가워진 다음 소나무는 늘 푸르름을 보인다”는 뜻입니다.
이배용 위원장의 물흐르듯 막힘없는 역사문화강연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궁금증이 일더군요. 아니 저런 역사학자가 지근거리에 있는데 대체 우리의 이명박 대통령과 주변 인물들의 역사관은 왜 그리도 뒤떨어져있냐는 것입니다.
혹시나 이배용 위원장은 강의만 명문일뿐 대통령과는 소통이 되지 않는것인지 의심도 들었습니다.
늦었지만 첫날 저녁 晩餐(만찬) 풍경을 살짝 소개합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마련했는데요. 장소는 세종문화회관 수피아 홀에서 자리했는데요.
박원순 시장은 “해외동포 750만명은 재외동포숫자로는 세계4위에 해당되고 어지간한 나라의 국민보다 많은 숫자”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재외언론인들의 역할을 당부했습니다. 사실 덴마크가 500만명, 핀란드가 400만명이니 재외동포의 숫자가 엄청난것은 사실입니다.
기념사진도 촬영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만찬장에서 참석기자들은 술잔을 기울였고 그렇게 서울 일정의 첫날밤은 깊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