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이라면 어느곳에서나 장엄한 일출을 감상할 수 있지만 정동진이 대한민국 최고의 해돋이 명소가 된 것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드라마 ‘모래시계’의 무대였던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됐습니다.
아마도 정동진은 드라마나 영화의 무대로 히트친 최초의 사례가 아닌가 싶은데 요즘엔 드라마 촬영지라고 홍보하는 곳들이 하도 많아 질릴 정도입니다.
정동진에선 명물인 ‘모래시계’를 비롯하여 박물관 등 볼거리가 많은 곳입니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썬크루즈 호텔일 것입니다.
미국에 오기전인 2002년 어느날 강릉에서 정동진으로 향하다 깜짝 놀랄 구조물을 보게 됐습니다. 바닷가가 내려다 보이는 벼랑위에 거대한 배가 우뚝하고 서 있었기때문입니다.
유람선으로 보이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배가 마치 산위에서 좌초한 것처럼 올라 있는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했습니다. 나중에 그것이 세계 최초의 육상크루즈인 썬크루즈 리조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썬크루즈가 개장된지 만 10년만에 강원도 여행의 대미로 둘러볼 기회를 가진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발상의 전환이라는 말을 합니다만 절벽위의 크루즈 호텔은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입니다. 사실 저는 한국이니까 산위에 저런 유람선 호텔도 지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미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이라면 아무리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나온들 환경이나 주변 경관을 생각해서라도 허가를 내줄리 없기때문이죠. 그래서 일부에선 썬크루즈가 정동진의 경치를 망쳐버렸다고 비난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제 썬크루즈는 정동진의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되었고 이곳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관광객들도 적지 않습니다.
본래 이곳은 정동진이 해돋이 명소로 유명해지면서 언덕에 낡은 기차 전동차를 올려놓고 카페로 개조해 ‘기차 카페’로 인기를 모으던 곳이었습니다. 이후 정동진 조각공원과 해돋이공원이 조성되고 2002년엔 세계 호텔로선 유례가 없는 산위의 크루즈 호텔이 들어선 것이지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데 저 배엔 사공이 얼마나 많았길래 이렇게 높이 올라왔나하며 싱거운 농담을 하는 사이 썬크루즈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호텔로 들어가기 위해선 일인당 5천원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사전 정보가 없다면 아니, 호텔에 들어가는데 무슨 돈을 받아, 하고 뿔이 날 법도 합니다. 미국에서 온 이 몸이야 달러로 속셈을 하는 습관이 있어 ‘5달러도 안되네’ 했지만요.
뉴욕주 모홍크라는 곳은 가을 단풍과 호수의 조화가 아주 아름다운 곳이 있는데 이곳의 절경은 비싼 호텔 식사를 해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썬크루즈 역시 정동진 최고의 경치 조망을 독점하고 있으니 입장료를 받는게 당연하겠지요.
이곳에서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을 위해 일출 30분전부터 호텔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투숙객은 물론 입장료를 내지 않습니다. ^^
호텔 로비로 들어서는 양쪽엔 거대한 연못이 조성돼 있습니다. 명색이 크루즈인데 이런 물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는 길목엔 로마의 트레비 분수를 흉내낸듯 동전을 던져 소원이나 행운을 비는 곳도 있었습니다.
호텔 로비엔 멋진 요트도 전시돼 있었는데 요트를 타고 주변 바다를 항해하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비싼게 문제지요. ㅎㅎ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에 위치한 전망대로 올라갔습니다. 남산전망대처럼 회전이 되는 전망대 카페인데 한시간만 앉아 있으면 360도 파노라마 경치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커피와 음료, 주류, 케익 등의 값이 결코 싸지는 않지만 편안히 앉아 담소를 나누며 경치를 즐기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이용객들은 입장료 일부를 환불해 주는 마케팅을 하더군요.)
계속 회전하고 있기 때문에 해가 강하게 비치는 방향에선 이렇게 여종업원이 커튼을 일일이 내려주고 있습니다.
40분 정도 앉아 있다가 건너편 전망대로 나갔습니다. 정동진 바닷가의 아름다운 해안선. 안그래도 높은 벼랑위에 우뚝 솟은 유람선 꼭대기에서 감상하니 감탄사가 절로 납니다.
해수풀장이 보입니다. 아직 철이 아니라서 물은 없지만 이제 곧 바다를 감상하며 풀을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나겠지요.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다 눈을 돌리면 멋진 태백산맥 줄기의 산자태가 반깁니다. 우리가 들어온 주차장이 있는 남쪽입니다. 연못의 형태가 이렇게 보이네요.
저 아래 고기떼들이 보이시죠? 우와~ 팔뚝만한 잉어가 수천마리는 되는 것 같네요.
전망대 가운데엔 연인들이 걸어놓은 사랑의 열쇠들과 카드가 꽂혀 있습니다.
맞은편에 썬크루즈의 역사를 알려주는 전시관도 있었습니다. 이곳엔 썬크루즈의 창업주가 어떤 연유로 만들게 되었는지, 유람선 호텔을 완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상세한 안내가 사진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썬크루즈가 위치한 해안절벽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헌화가의 배경으로 소를 타고 가던 노옹이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에 반해 절벽에 핀 꽃을 꺾어 바치며 사랑의 노래를 한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프로포즈 객실도 운영한다는군요. 연인들을 위한 로맨틱 마케팅인 셈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호텔이 유람선 형태로 만든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알고보니 실제로 조선소에 길이 165m 높이 45m의 3만톤급 유람선의 틀을 주문제작해 이곳에서 조립 완공한 대역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 항해를 한 유람선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유람선 호텔에 와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안될 것 같습니다. 객실도 당연히 유람선의 외양을 하고 있구요. 일정하게 고동도 울리니 배를 탄 느낌도 듭니다. 그것이 바다가 아니라 산에 올라와 있긴하지만요. ^^
그런데 전시관을 나갈 때 김이 좀 새더군요. 생뚱맞게 왠 아파치 추장이랍니까? 썬크루즈 호텔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함수관계가 무엇인지 아리송했습니다.
전시관을 나와서 본 회전 전망대입니다.
바로 아래는 기념품 판매소가 있었습니다. 한가지 조언을 하자면 전시관과 기념품을 하나의 동선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시관을 쭉 한바퀴 돌고 썬크루즈의 역사를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기념품을 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분리돼 있으면 그 효과가 떨어집니다.
또한 전시관도 사진들과 설명문 위주로 돼 있는데 동영상 등 볼거리를 다채롭게 하고 호텔 준공당시의 설계도라든가 작업서, 간단한 작업도구 등을 옛 물건들을 전시하는 것도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기념품 판매대로 연결이 된다면 뭐 하나라도 사고 싶은 충동이 일겠지요. 기념품도 썬크루즈와 사진 관련 로고 등을 넣어 더욱 다양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호텔 뒷문으로 나서니 조각공원이 펼쳐집니다. 콘서트등 야외 공연도 가능한 무대가 있고 과거 기차카페 시절 활용한 낡은 전동차들도 보였습니다.
해안을 조망하는 간이 전망대엔 밑이 반투명한 구조로 되어 스릴감을 안겨줍니다.
시간이 없어서 바닷가쪽으로 내려가지는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크루즈 앞쪽으로 돌아나왔습니다.
엄청난 크기의 스크류도 갖췄으니 정말 유람선처럼 실감이 나지요?
제가 왔을때는 아직 초봄의 찬 바람이 불 때라 야자수들이 겨울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들이 전시관에서 아메리카원주민의 조각상을 본 것처럼 어색했습니다. 열대야자수가 자랄 수 없는 환경에 왜 구태여 야자수를 심어놓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었겠지만 강원도와 동해안을 상징하는 식물 등 자연을 조성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국적 불명의 공원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하기야 절벽위에 유람선을 올려놓겠다는 것부터 엄청난 파격인데 북풍한설에 몸을 떠는 열대 야자수가 무에 대수이겠습니까.
호텔 앞에 있는 해돋이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거대한 손 조각상(?)이 눈에 띕니다. 이름하여 ‘축복의 손’이라고 하는데 어째 좀 엉성합니다. 슬쩍 만져보니 돌이나 석고같은 것이 아니고 마분지같은 종이를 발라 만든 느낌이 나네요.
이곳에서도 아래도 내려가는 길이 있지만 안전문제때문인지 막아놓은 상태였습니다. 바다는 언제 봐도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 정동진과 작별해야 할 시간입니다. 언젠가는 동해안의 일출을 볼 수 있겠지요.
해는 내일 또다시 떠오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