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와 스탠포드가 줄다리기를 하고 마크 저커버그가 만나달라 요청했다는 한국의 천재소녀는 결국 희대(稀代)의 거짓말 소동으로 결론(結論)이 났습니다.
김정윤(18) 양의 아버지 김정욱(47) 씨는 11일 워싱턴의 한국특파원단에 보낸 이메일에서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그는 "아이가 얼마나 아프고 힘든 상태였는지 제대로 살피지 못한 점, 오히려 아빠인 제가 아이의 아픔을 부추기고 더 크게 만든 점을 마음속 깊이 반성한다"면서 "앞으로 가족 모두 아이를 잘 치료하고 돌보는데 전력하면서 조용히 살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어떤 상황에서도 저에겐 세상에 둘도 없이 소중한 가족이다. 아이와 가족이 더 이상의 상처없이 치유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김씨는 당초 딸의 합격증이 위조됐다는 대학당국의 발표에 대해 믿을 수 없다면서 변호사를 통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결국 의혹제기 사흘만에 이메일 사과문으로 머리를 숙였습니다.
김씨는 이날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으나 '아픔'과 '치료'라는 단어를 통해 딸이 모든 거짓말의 진원지이고,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동정과 비판이 엇갈립니다.
얼마나 명문대 합격의 중압감에 시달렸으면 그랬겠냐는 의견도 있고 사문서를 위조한 명백한 범죄행위에 언론까지 이용한 사기극이라는 비난도 쏟아집니다. 김양의 이야기를 경쟁적으로 확대 재생산한 언론에 대한 반감(反感)도 거셉니다.
알려진대로 김양의 이야기는 워싱턴중앙일보의 6월 2일 보도가 시작이었습니다. 사실 미국에선 여러 곳의 명문대에 합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하버드와 스탠포드 동시 합격은 주목할 뉴스가 아닙니다. 미국 최고의 명문대 두곳이 김양을 잡기 위해 대학을 반반씩 나눠다닌후 졸업을 선택하도록 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입니다. 이런 것을 듣고도 취재를 안하면 기자로서 직무유기가 될 판이었습니다. 게다가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가 김양의 천재성에 놀라 페북 친구가 되었고 진로 고민을 할 때 파나마에서 직접 전화로 조언해줬다는 에피소드는 신선한 충격의 ‘뉴스’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쓸 수는 없었지요. 먼저 최초 기사를 쓴 전모 기자에게 연락을 해 사실 확인을 했습니다. 전 기자는 모 경제신문 기자출신으로 2002년 도미, 워싱턴중앙일보에서 교육전문기자와 편집국장까지 지낸 베테랑 언론인이더군요. 5년전부터 교육전문 객원기자로 일하며 진학컨설팅을 돕고 있다고 했습니다.
워싱턴특파원 출신인 김양의 아버지 등 가족을 잘 알고 지냈고 김양은 어렸을 때부터 영특한 아이였다고 밝혔습니다. 영재들만 다닌다는 토마스제퍼슨 과학고에 진학, 여러차례 외부 수학경시대회에서 수상소식을 접했지만 최고의 명문대 두곳에서 교차 입학 제의를 한 것은 전례없는 일이어서 그 역시 믿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에게 김양측에서 제시한 두 대학 합격증과 유명 교수들과 주고받은 이메일 등 50건, 20쪽에 달하는 문서들은 완벽한 증빙자료(證憑書類)였습니다. 김양의 어머니 조나영 씨도 저와의 인터뷰에서 워싱턴중앙일보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했고, 저커버그가 전화통화로 나눈 유쾌한 대화, 스탠포드대 교수가 매일 전화를 걸어 입학을 종용(慫慂)했고, 미국최고의 수학자가 김양을 찾아와 격려한 이야기까지 상세하게 덧붙였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소동이 국내 언론이 사실확인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물론 저를 포함, 해당 언론은 오보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독자들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것에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하물며 김양 가족과 인터뷰 하지도 않고, 출처를 밝히지도 않고 베껴 쓴 언론은 고개를 들기조차 힘들 것입니다.
한가지 부연(敷衍)할 것은 미국에선 학생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합격여부를 확인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상대가 기자라 하더라도 적법한 절차나 합리적 이유없이 정보를 제공할 수가 없기때문입니다. 하버드와 스탠포드가 김양의 합격증이 위조된 것이라고 확인한 것은 이미 김양의 고교와 한국에서 의혹이 공론화되었고, 해당 학교의 공신력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한국에 송고한 기사를 받아쓰고도 출처조차 밝히지 않은 언론은 응당 비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언론을 같은 잣대로 융단폭격을 해서는 안됩니다. 충분히 합리적인 취재과정을 통해 사실을 확인했다면 믿고 쓰는 것이 상식입니다. 가족이 제시한 합격증을 못믿겠다고 학교측에 물어보는 기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정상적인 경로로 학교는 확인을 해 주지 않습니다. 아무런 논란이나 의혹도 없는데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입니다.
김양 이야기는 워싱턴중앙일보를 통해 1차적인 검증이 끝난 셈이고, 김양의 어머니를 통한 2차 검증도 확인되었습니다. 김양 어머니 조나영(47) 씨는 뒷이야기와 정보를 추가로 흥미진진하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러고도 못믿어지면 기사 자체를 안쓰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번 사건은 한 소녀의 자작극(自作劇)으로 결론을 내리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나 많습니다. 무엇보다 김양의 스토리가 대단히 구체적이고 관련 서류, 다양한 교수들과의 이메일 교류, 까메오(?)처럼 등장한 저커버그의 에피소드까지 한편의 영화를 만들어도 좋을만큼 흥행이 되는 스토리 라인입니다. 과연 연루된 사람은 없을까요?
김양 아버지의 사과문도 미심쩍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한 것으로 알려진 김양 아버지는 '거짓말을 했다'는 표현대신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물의를 일으켰다'는 완곡한 어법으로 입장을 밝혔습니다. 사과는 했으되 사실은 털어놓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아이가 얼마나 아프고 힘든 상태였는지 몰랐다"며 "아이와 가족이 더 이상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부탁도 했습니다. 아직 어린 김양에 대한 연민의 정은 금할 수 없지만 가족 모두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호소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아이가 아프니 조용히 치료할 수 있도록 잊어달라구요? 세상에 둘도 없는 천재인양 동네방네 자랑할 때는 언제고 아이와 가족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더 이상 관심을 갖지 말아달라는 것이네요.
김양 아버지가 부탁하지 않아도 희대의 거짓말 사건으로 바보가 된 언론이 다시 다루기는커녕 쳐다보기도 싫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김양 부모가 이번 사건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지는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아이가 아프다고 칭병(稱病)하는 것은 혹여 사법적 책임이나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막기 위한 고도의 연막탄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옵니다.
대체 아이가 언제 어디서부터 거짓말을 시작한건지,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병때문인지 고의로 벌인 일인지, 부모는 이 지경이 되기까지 아무것도 몰랐는지, 모든 사실을 털어놓아야 진정성이 묻어나는 사과가 될 것입니다.
네티즌 rebe****는 "미국 제퍼슨고등학교 학부모들 난리났다던데..저렇게 한번 학교이름 안좋게 알려지면 실제 하버드에서 해당고교출신 안뽑는다고.."라며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했습니다.
또한 "앞으로 TJ고교에서 한인학생 거부할까 걱정된다."(volv****), "저게 병이다 불쌍하다 할게 아닌데..? 한국인들은 사회탓만 하며 이상한데 온정주의를 베푸는데 그게 더 문제야~ 미국에서 사문조 위조에 명문고등, 대학 유명인 이름까지 판 희대의 사기극이다."(leem****)라는 지적도 잇따릅니다.
달랑 열 줄의 모호(模糊)한 사과문으로 덮어버리기엔 이번 사건의 상처가 너무 깊고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