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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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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방선생 49재가 뉴욕사찰서 열린 까닭은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5-10-04 (일) 00:3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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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춤의 최고봉 우봉(宇峰) 이매방((李梅芳) 선생의 49재가 최근 뉴욕 원각사(주지 지광스님)에서 엄수(嚴守)되었습니다.

 

지난 924일 원각사 큰법당. 스님들의 구성진 독경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이매방 선생의 영정(影幀)을 들고 한복차림의 여성이 경건한 자세로 서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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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49재엔 원각사 주지 지광스님은 물론, 보스턴 문수사의 회주 도범 큰스님까지 자리하고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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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7일 삼성서울병원에서 89세를 일기로 타계한 이매방 선생을 대부분 잘 아실겁니다. 전통춤 이수자로는 유일하게 승무'(27) '살풀이춤'(97) 등 중요무형문화재 2개 분야를 보유한 선생은 호남춤을 한국은 물론, 일본, 미국 등지까지 전승시킨 주인공입니다. 1998년엔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이 서훈(敍勳)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춤을 대표하는 인간문화재의 49재가 뉴욕에서 올려진 것은 고인과 박수연 한국공연예술센터KAPAC) 회장의 특별한 인연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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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이매방 선생은 7세 때부터 권번 기생(券番妓生)들을 가르치던 할아버지(이대조)에게서 춤을 배웠다고 합니다. 15세 때 판소리 명창 임방울의 공연에서 승무(僧舞)를 춘 것을 계기로 유명세를 얻었고 기교가 뛰어난 호남 지방의 승무를 전국구로 확산시킨 인물이기도 합니다.

 

200명이 넘는 그의 제자 중에 뉴욕에서 활동하는 전통무용가 박수연 회장이 있었습니다. 맨하튼 미드타운에 위치한 한국공연예술센터는 2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데요. 미국내에선 가장 뛰어난 기량의 공연예술단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최근 단원들과 함께 도미니카 공연을 다녀왔는데 현지 언론에서 대서특필되는 등 주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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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궁중무용과 민속무용은 물론, 정악(正樂)과 산조, 판소리 그리고 퓨젼음악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로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으며 매년 가야금, 해금, 장구, 대금 등 전통악기와 판소리 무료워크샵도 개최하고 있습니다.
 

7살때부터 경향 각지의 소리명인과 춤꾼으로부터 사사한 박수연 회장은 80년대초 미국에 이민와 30년 넘게 우리의 춤을 미국땅에서 보급하고 있습니다. 그이가 이매방 선생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국에 갈 때마다 스승의 집으로 달려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옆을 지키며 배워나갔습니다. 잘못된게 있으면 성인 제자라도 거침없이 매를 대는 엄한 스승이었지만 생전에 박수연은 소리속도 알고 장단속도 알고 춤속을 다 알아 춤집도 예쁘다"고 못내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마침내 그이는 2003년 이매방 살품이춤 이수자가 되었고 2009년 이매방 승무 이수자가 되었습니다. 이매방 살풀이 이수자는 박수연 회장을 비롯해 미국에 3명이고, 승무는 그이가 유일합니다. 박수연회장은 미연방정부예술진흥회(NEA)로부터 한국의 인간문화재에 해당되는 내셔널 헤리티지 펠로(national heritage felloow)에 지정되기도 했는데요. 그런 그녀가 이매방 살풀이춤과 승무를 동시에 이수했다는 것도 스승과의 남다른 인연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날 부처님전에서 의식을 마치고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가의 49제를 위한 특별한 춤공양 음성공양이 이어졌습니다. 먼저 성악가 박소림씨가 '왕생극락(往生極樂)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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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박소림씨는 "이매방 선생님과 개인적인 인연은 없지만 49재 소식을 듣고 꼭 참여하고 싶었어요. 선생님을 모신 영단 앞에서 노래를 들려드려 너무나 감사했어요"하고 말하더군요.

 

이번엔 이송희씨의 지전춤이 이어졌습니다. 지전(紙錢)이란 종이돈을 말하는데요. 이 춤은 호남지방의 씻김굿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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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창호지로 만든 수십장의 지전을 80가량 내려뜨린 것을 양손에 쥐고 사방으로 휘저으며 춤을 춥니다. 씻김굿은 망자(亡者)가 이승에서 풀지 못한 원한을 풀어주어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굿입니다.

 

마침내 박수연 회장의 살풍이 춤이 펼쳐졌습니다. ‘살을 푼다혹은 액을 푼다는 뜻의 살풀이춤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춤인데요. 본래 무당들의 굿판에서 시작됐지만 굿판 뒤풀이로 모인 사람들이 함께 추다가 조선말기이후 예술적으로 다듬어지면서 교방예술로 자리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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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흰 치마·저고리에 가볍고 부드러운 흰 명주 수건을 들고 춘다고 해서 수건 춤이라고도 하는데요. 이매방류 호남 살풀이춤은 치마저고리에 무복이라고 부르는 두루마기를 입고 머리엔 조바위를 씁니다. 더러는 쪽진 머리에 비녀를 꼽기도 합니다. 남자의 경우 두루마기 차림에 남바위를 쓴다고 합니다.

 

한국무용의 특징인 고요함 속에 동작이 있는 균형미의 극치를 이루는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춤사위로 구성됩니다.

 

한국춤은 정중동(靜中動)과 동중정(動中靜)이 있어야 해. 신체로 따지면 배꼽아래가 정()으로 암컷이고 배꼽 위가 동()으로 수컷이야, 고요함속에 움직임이 있어야 하고 움직임속에서 고요함이 있어야 해..” <2004년 이매방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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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풀이 춤에서 수건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서무(序舞)에서 짐짓 느리게 거닐다가 이따금 수건을 오른팔 ·왼팔로 옮기고, 때로는 던져서 떨어뜨린 다음 몸을 굽히고 엎드려 두 손으로 공손히 들어올리기도 하는데요. 떨어뜨리는 동작은 불운의 살이라 할 수 있고 다시 주워 드는 동작은 기쁨과 행운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박수연회장이 살풀이 춤을 춘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겠지만 이날의 춤은 특별했을 것입니다. 문외한이 보기에도 마치 삼매의 경지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얼마전 발목 수술을 했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만큼 스승이 화현한 듯 너울대는 몸동작은 보는 이들의 넋을 잃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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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이매방 선생은 한국춤의 발전을 위해 원형과 기본을 보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새것을 만들어내고 외국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원형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스승의 49제를 모시며 춤을 춘 그이의 소회(所懷)는 어떠했을까요.

 

"제가 어찌 감히 은사님앞에서 춤을 출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제 미국생활에서, 춤인생에서 목적을 제시해주신 분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늘 해주시던 말씀이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는 것이었어요. 그 말씀 속에서 하심(下心)을 배웠구요. 선생님 영전 앞에서 춤을 추며 행복했습니다. 앞으로 미국땅에서 선생님 춤을 계속 전승하고 계승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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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사진 6장 한겨레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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