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꽃샘추위’가 한창이라는데 아랫녘 미국(미동부)은 잠시지만 초여름을 방불케하는 날씨를 즐겼습니다.
미북동부도 지금은 엄연히 겨울입니다. 뉴욕의 경우, 이따금 4월초까지도 눈이 내리기도 하니 섣부른 봄타령을 부를 수가 없는데 2월하고도 21일은 정말 너무했습니다. 아침엔 따사로운 봄이요, 오후엔 에어컨을 틀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더위를 느꼈으니까요.
맨해튼의 기온이 화씨 78도(섭씨 26도)까지 올라갔고 워싱턴DC는 82도(섭씨 29도)로 전형적인 여름 날씨였습니다.
문득 2015년 크리스마스가 떠오르네요. 자못 신기했던 이상난동(異常暖冬)이었거든요. 당시 맨해튼 센트럴파크는 화씨 66도(섭씨 18.9도)를 기록, 1982년 이전 최고기록인 64도를 33년만에 깨뜨렸습니다.
덕분에 크리스마스에 야외 바비큐를 즐기는 진풍경(珍風景)도 연출해봤는데요. 2년여만에 한술 더 뜨는 날씨를 경험하게 될줄 알았겠습니까.
이날의 기온은 1930년 2월 21일의 화씨 68도(섭씨 20도)를 무려 10도나 경신한 88년만의 신기록이었습니다. NY1에 따르면 뉴욕은 지난해 11월 3일 화씨 70도를 마지막으로 한번도 70도 이상이 된 적이 없었다는군요.
암튼 이렇게 포근한 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이웃지기 조성모화백님과 ‘2월의 여름’을 기념하는 산행(山行)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
조화백님과는 지난해 가을 도합 세차례 가벼운 등산을 했는데요. 우리가 ‘사랑마운틴’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슈네먼크 마운틴’ 말이죠.
며칠전까지 쌓였던 눈은 녹았지만 돌길 등 아직 미끄러운 곳이 많아서 평소 오르던 코스와는 다르게 완만한 곳을 선택했습니다.
조화백님의 사랑채 옆으로 흐르는 개울은 설악산 계곡을 방불케 합니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을 숲가에 널부러진 천연(?) 지팡이를 짚으며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오솔길 곳곳에 초록의 이끼가 융단(絨緞)처럼 피어났고 능선의 돌과 바위들도 파랗게 빛나서 ‘블루 마운틴’ 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평소에도 등산객을 거의 만날 수 없는 지역이지만 2월의 아침에 나선 산행인지라 사랑마운틴은 온전히 우리들의 차지였습니다.
워낙 기온이 높은 탓에 금세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합니다. 한시간쯤 올라가 능선 한켠에서 맑은 바람을 쐬며 더위를 식혔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등산입니다. 오르는 동안 바위 주변엔 석이(石耳)버섯 천지더군요
한국에선 꽤 귀한 야생 석이버섯이지만 사진에만 담았습니다. 미국에서 잘못 채취하다 적발되면 벌금이 장난이 아니거든요.
석이버섯만이 아닙니다. 나무 위에 불끈불끈 솟은게 있어 뭔가 했더니 영지(靈芝) 버섯입니다. 항암효과가 뛰어나 현대의 불로초(不老草)로 불리는 영지버섯이 저렇게 많다니..그래도 그림의 떡입니다. 벌금도 벌금이려니와 나무를 타고 올라야 하니 잘못하면 중상입니다.. 역시 패스..^^
그런데 정상에 오를 무렵, 정말 예상치 못한 조우(遭遇)를 했습니다. 앞선 조화백님이 저거 보여요? 하고 소리치는데, 허걱, 독수리(Vulture)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 있는게 아닌가요.
불과 2~3m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인기척이 나도 전혀 피할 생각을 않더군요. 우리와 등지고 있는데다 살짝 나무들에 가려 스마트폰에 제대로 담기 어려운게 아쉬웠습니다.
아마 녀석들도 이런 시간에 깊은 산중에서 사람들을 만날 줄은 몰랐을 겁니다. 계속 머물다간 독수리들의 여유로운 휴식을 방해할 것 같아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전에도 소개했지만 사랑마운틴은 3억4천만년전 바다속에 있는 땅이 융기(隆起)해 바위에 조개껍질같은 것들이 박혀 있고 암반이 다리미가 다린듯 맨질맨질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데 두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게 되더군요. 다행히 푹신한 땅에 주저앉아 다치는 일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거인의 발자국과 발을 대보았습니다 ^^
본래 코스라면 하산은 바위틈 급경사로 내려와야 하지만 미끄러운 길을 고려해 완만하게 오솔길을 끼고 돌아가는 코스를 택했습니다. 걷는 거리는 늘어났지만 안전이 중요한게 아니겠어요?
마을이 가까워지니 높은 철탑 두 개가 보입니다. 큰 길에선 산 중턱으로 아스라했는데 바로 옆에서 보니 엄청 높더군요.
마을로 접어들었습니다. 누군가 버린 차가 방치돼 있네요.
미국의 산동네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이곳은 사계절 사는 주민들도 있지만 겨울을 빼고 사는 별장같은 seasonal house도 제법 됩니다. 맨해튼에서 1.5시간 거리지만 집값도 아주 싸구요.
티벳불자가 사는듯 경전을 적은 오색깃발 '타르쵸'가 걸려 있다
오늘 산행은 총 3시간, 약 4.5마일(7.3km)을 걸었네요. 비오듯 땀을 흘렸지만 겨울속 여름을 만끽했던 2월의 특별한 산행이었습니다.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노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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