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다보면 우리가 한국에서 발음하는 외국어와 외래어가 이곳에서는 다르게 발음되는 경우가 많아 당황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연전에 이 칼럼을 통해 한국의 ‘록펠러’가 미국에 오면 ‘라커펠러’가 된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지요.
요즘 저를 애먹이는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아이티입니다. 지난 달 아이티에서 대지진이 발생한 이후 아이티를 놓고 말과 글을 달리하느라 곤욕(困辱)을 치릅니다. 아이티를 미국에서는 ‘헤이티’라고 발음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이티가 옳습니다. 스펠링은 ‘Haiti’지만 프랑스어와 아프리카어가 혼재된 크레올어 발음으로는 아이티니까요. 그런데 미국사람들은 고유한 나라 이름마저 자기식으로 발음합니다. 어느 방송을 봐도 ‘헤이티’지 아이티라고 하는 법이 없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t’가 연음화돼 ‘헤이리’라고 합니다. ‘헤이리’와 ‘아이티’, 정말 엄청난 차이 아닙니까?
제가 이곳의 한인라디오방송국에서 매일 진행하는 코너가 있습니다. 라디오인만큼 응당 발음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데요. 원칙적으로 미국에서 통용되는 발음을 쓰고 있습니다. 덕분에 한국에서 굳어진 단어를 고쳐 부르는 일도 여러 차례 겪었습니다. 가령 슈퍼맨은 ‘수퍼맨’, 슈퍼볼은 ‘수퍼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참 고민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특히 나라 이름과 같은 고유명사(固有名詞)가 그렇습니다. 고유명사는 미국식이 아니라 원 발음대로 부르자는 원칙을 세웠는데 아이티라는 나라는 예외가 되고 말았습니다. 뉴욕에는 아이티계 주민들이 12만명 이상 살고 있어서 이들과 교류하는 한인들이 미국인들마냥 ‘헤이티’라 하고 아이티 사람들을 ‘헤이션(Haitian)’으로 부르는 현실을 고려했기때문입니다.
덕분에 ‘아이티’에 익숙한 초짜 이민자들만 헷갈리고 있습니다. 매일 출고하는 기사는 아이티로 쓰다가 방송에서는 ‘헤이티’로 불러야 하는 저 역시 여간 혼동스러운 게 아니었구요.
반면, 한인신문들은 본국 언론처럼 아이티로 통일하고 있습니다. 문자 매체의 특성도 고려하고 상당 지면을 한국에서 공급받기 때문에 통일하지 않으면 독자들에게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기때문입니다.
십수년전 LA에 갔을 때 한인신문사가 메이저리거 랜디 존슨을 ‘랜디 좐슨’으로 쓴 것을 보고 신기해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응당 존슨이지만 미국인들은 100% 좐슨으로 발음하니 원어에 충실한 표기법인 셈입니다.
그런만큼 발음에 대한 한인신문의 고민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록펠러를 라커펠러로 하자니 그렇고 한인들이 많이 사는 플러싱(Flushing)은 후러싱이 되기도 합니다. 뉴저지의 한인타운 포트리(Fort Lee)도 아랫 입술을 살짝 윗니로 물며 ‘폴~리’라고 해야 미국인들이 알아듣습니다. 쓰기 따로, 발음 따로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요.
미국식 발음에 익숙해지다 보니 글을 쓸 때도 무심코 사람 이름 ‘존(John)’을 ‘좐’으로, '데이비드(David)’를 ‘데이빗’으로 쓰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월스트릿’을 ‘월스트리트’로 ‘센트럴팍’을 ‘센트럴파크’로 ‘허쓴 강’을 ‘허드슨 강’으로 쓸 때면 어색하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어찌됐건 미국에서 미국말을 미국발음대로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겠지요. 문제는 아이티를 헤이티로 부르는 미국식 일방주의에 우리 고유명사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젠 모르는 미국인들이 없을 만큼 세계적인 기업이 된 삼성이 그렇습니다. 삼성 관련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귀에 거슬리는 게 있습니다. 행사장의 미국인들이 열이면 열 모두가 ‘쌤성’하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아다시피 삼성의 영어스펠링은 ‘Sam Sung’입니다. ‘Sam’은 ‘Samuel’의 약칭이고 사무엘이 아니라 ‘쌔뮤얼’로 발음합니다. 미국인들이 ‘쌤성’으로 발음하는 이유입니다. 더구나 ‘엉클 쌤(Uncle Sam)’이 미국인의 별칭(別稱)일만큼 친숙하다보니 ‘쌤성’은 더더욱 당연해 보입니다.
우스운 것은 미국인들이 ‘쌤성’한다고 삼성 관계자마저 ‘쌤성’하고 맞장구치기도 한다는 겁니다. 어쩌면 삼성은 인지도(認知度)가 낮았던 시절 미국인들이 ‘쌤성’하자 ‘엉클 쌤’ 마케팅을 떠올렸는지도 모릅니다. 적극적으로 ‘삼성’으로 불러달라고 했다면 아무리 일방통행을 좋아하는 미국인인들 멀쩡한 남의 이름을 바꿔 부르는 무례는 저지르지 않았을테니까요.
‘쌤성’할 때마다 쌤통이 떠오르는건 저만일까요? ‘석 삼’자가 ‘석 쌤’자로 바뀐 것도 아닌데 남의 이름을 멋대로 발음하는 미국인들의 잘못을 이제는 고쳐줘야 합니다. 제 이름 ‘창현’을 ‘챙~휸’으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듯이 말입니다.
* 위 칼럼은 2010년 2월 8일 뉴시스 통신사 뉴욕특파원 시절 송고한 것으로 평창 올림픽 기간중 ‘평~챙’이라는 잘못된 발음을 끝까지 고수한 미국의 올림픽 주관 방송사 NBC 문제에 대한 참고글로 올렸습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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