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을밀대를 올랐을 때 근처에 한 노인화가가 낡은 캔버스에 그림을 전시하고 앉아 있었다. 을밀대 風光(풍광)을 그린 것이었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관광객들이) 한 스무달러(20달러) 줍니다”라고 한다. 흥정도 할 법 했지만 목에 카메라 한 대 걸고, 양손에 셀폰 카메라 두대를 쥐고 있는터라 짐을 만들 수가 없었다.
동행한 권용섭 화백은 ‘독도 화가’로 잘 알려진 주인공이다. 특히 그는 세계적인 관광명소에서 즉석 수묵화 퍼포먼스를 해서 여러번 주목을 받았다. 길거리에 흰 천을 펼쳐놓고 15분에서 20분 사이에 즉석에서 수묵화를 그려내면 사람들의 감탄사가 쏟아진다.
그는 이번 방북기간중 세 차례 수묵화 퍼포먼스를 예정하고 있었다. 우리 국토의 막내둥이인 독도에 대한 애정과 분단된 조국의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그의 작업이 과연 북에서도 성사될지 솔직히 확신은 없었다.
방북 직전 그는 서양화가인 부인 여영난 화백과 함께 고향인 부산에서 오륙도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평화기원 수묵화 퍼포먼스를 한 차례 열었다. ‘부산에서 평양까지’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남북의 화합과 통일을 기원하는 수묵화 프로젝트를 기획한 터였다.
모란봉 을밀대가 바로 첫 번째 퍼포먼스 장소였다. 다행스럽게도 북 당국도 그의 비정치적인 예술작업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을밀대 앞에 천을 펼쳐놓고 작업을 하는 그의 모습은 평양 시민들에게도 확실히 이색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을밀대를 등진 채 가끔 고개를 돌려가며 빠르게 그려나갔다.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을밀대와 권화백이 정면에서 보이도록 사진 촬영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을밀대를 찾은 가족 행락객과 10대 여학생들, 대학생 청년들이 둘러싼 가운데 흥미롭게 지켜봤다. 그림을 팔던 무명의 노인화가도 궁금한 듯 다가와 지켜보았다.
불과 15~20분 사이에 을밀대 수묵화가 완성되자 경탄의 소리가 나왔다. 마침 을밀대를 찾은 남자 대학생 10여명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청했더니 기꺼이 응해 주었다. 역사적인 평양의 첫 즉석 수묵화를 펼쳐들고 함께 특별한 추억의 사진을 만들 수 있었다.
권화백은 이후 두 차례 더 수묵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두번째는 김일성광장이 맞닿은 대동강변에 나가 주체탑을 배경으로 동평양 시가지를 그렸고 세 번째는 한국의 3대 폭포로 불리는 개성 박연폭포에서 멋진 수묵화를 완성해 성공적인 평화 퍼포먼스를 완결지을 수 있었다.
을밀대 모란봉은 평양 시민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휴게공간이다. 휴일이면 수많은 행락객들이 찾아와 여가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저기서 고기를 굽고 술을 기울이는가 하면 곳곳에서 단체로 춤을 추는 모습도 보인다. 음악이 나오면 모르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지나간 모진 세월속에서도 북녘 주민들을 포함하여 우리 민족은 역시 흥이 넘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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