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밀대에서 만난 사람들
이날 을밀대에서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일행과 함께 내려오는데 공원 깊숙이 한켠에서 60~70대로 보이는 여성 6명이 돌 탁자에 둘러앉아 무언가를 하는듯한 모습이 보였다. 기자로서 호기심이 일었다.
슬그머니 다가갔다.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듯 왁자지껄 떠들며 웃음보를 터뜨리는데 무엇이 저리도 즐거운지 궁금했다. 해외에서 온 동포라고 소개하자 “아..예~”하며 너나없이 반가워한다.
북녘 땅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해외동포라고 하면 대부분 환한 표정으로 맞아준다. 손님을 잘 접대하는 것은 우리네 미풍양속이기도 하거니와 한 조상으로부터 피를 나눈 동포, 그것도 해외에서 온 손님인지라 한결 반가운 마음이 들 것이다.
이들이 둘러 앉은 돌탁자 위에는 네모난 종이가 있었고 체스의 피스같은 게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얼핏 윷놀이처럼 보였지만 윷가락이 보이지 않았고 돌판 위에서 그걸 던질리도 만무했다.
“아주머니들 지금 뭐 하시는거냐?”고 물었더니 “조선민족의 놀이, 윷놀이를 합니다” 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로 만든 윷가락이 아니라 손가락만한 크기의 플라스틱 윷을 사용하고 있었다. 위는 까맣고 아래는 하얀 윷을 가볍게 던져 정사각형의 말판종이에 길 따라 체스 피스를 움직였다.
윷가락이 밤톨만한 작은 플라스틱이라 공원 돌탁자에 몰려 앉아 손쉽게 즐기는 것이었다. 호기심이 일어난 김에 “혹시 후퇴도가 있나요?” 물었더니 안쪽에 점 표시가 된 윷을 보여주며 “아, 훗도(후퇴도)가 있다마다, 훗개(두훗도, 후퇴개)도 있수다”고 한 술 더 뜬다.
“야 이거 더 재밋겠네요.”
북에선 지난 2009년 윷놀이 규칙을 새롭게 손질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퇴개는 이때 새롭게 생겨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도’ 자리나 ‘개’ 자리에 말이 놓였을 때 ‘훗도’나 ‘훗개’가 나오면 말이 거꾸로 빠져나간 것으로 치는 행운을 누렸지만 새 규칙에 따르면 말이 판에서 후퇴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 시작해야 한다.
또 한가지 우리와 다른 것은 상대방의 말을 잡아 윷을 다시 던져셔 ‘모’나 ‘윷’이 나오면 또한번 던지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북에선 더 이상 던질 수 없게끔 만들었다. 좀더 公正性(공정성)을 기한 셈이다.
그런데 가만 지켜보니 처음 듣는 단어가 나온다.
“슝이다 슝” “야야 개로 나가고 슝으로 달라.”
“잠깐요, 죄송한데 지금 슝이라고 하셨나요? 슝이 뭔가요?”
“네 개가 뒤집히면 슝입네다.”
도개걸윷모가 아니라 도개걸‘슝’모라는 것이다.
알고보니 북녘 주민들은 윷을 ‘슝’이라고 부른다. 도개걸윷모는 돼지, 개, 양, 소, 말을 뜻하는데 북에선 소의 옛 말이 슝이었다. 그게 윷놀이 용어로 정착된 것이다. 흥미롭게도 제목은 ‘윷놀이’인데 정작 윷은 없는 셈이다.
을밀대를 산책하노라면 곳곳에서 흥겨운 춤판을 목격할 수 있다. 음악이 나오고 춤판이 벌어지면 모르는 사람들도 어울려 춤을 춘다고 한다. 역시 '흥부자' 우리 민족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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