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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의 민족생명체
민족회의 통일준비정부(집행부) 대표로 2009년 9월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 간도반환 제소. 개천절 세계평화축제 조직위원회 위원장. 사단법인 기천문 본원장. 민족자주연맹 상임대표. 저서로 ‘기천’, ‘고조선 철학과 민족중건’, ‘한조선의 세가지 큰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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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가장 무서워한 독립군 총재 백포 서일

글쓴이 : 김영기 날짜 : 2011-08-26 (금) 01:59:35

일제가 가장 무서워한 독립운동의 대부,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끈 북로군정서 백포(白圃) 서일(徐一) 총재와 자유시참변의 독립군들을 사상 처음 90년만에 위령(慰靈)합니다.


민족회의가 8월 27일 조계사 옆 불교역사문화기념관 대강당(예술공연장)에서 백포 서일 총재 및 자유시참변 제 90주기 추모대제전(대회장 서영훈)을 거행합니다.

백포 서일 총재는 단군의 대단한 도력을 지니신 종사로, 청산리 대전투를 승리로 이끈 북로군정서 총재로서, 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독립운동가 이셨습니다. 이러한 백포 서일 총재에 대한 연구와 선양(宣揚)과 보훈(報勳)과 추모(追慕)가 대한민국 훈장인 독립장 밖에 없었다는 것은 도리가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독립운동의 최대 비극이자 참사인 자유시 참변을 되새김으로써 역사와 외교 전쟁의 무서움을 각성해야 합니다. 2011년은 백포 총재 서거(逝去)와 자유시참변 90주년으로 역사적 전환기이며, 민족의 한을 풀어주는 결정적 순간입니다.

 

▲ 백포 서일 총재 어록비

이제 우리는 선조 독립군님들의 역사적 맥과 홍은을 받아, 새로운 시대의 민족중건을 해야 합니다. 이는 간도 반환제소를 하여, 민족주권을 세운 민족대표자회의체, 이 시대의 통일제헌의회인 민족회의를 구심점으로, 새로운 차원의 민족생명체를 세움으로써 가능할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민족회의가 주관하는 오늘의 추모대제전과 이번 10월3일 개천절에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리는 개천절세계평화축제로부터 시작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오늘 청산리 항일대첩을 이끈 북로군정서 총재 백포서일 총재님과 독립운동 최대 비극인 자유시 참변을 당한 독립군 수천명을 위령 추모하면서, 제대로 인지가 안된 백포 서일 총재를 선양하고, 자유시 참변의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면서, 향후 백포 서일 총재의 동상,기념관 및 자유시 참변 위령탑을 건립하기를 제안합니다.

모든 독립군들이 하나로 뭉쳐, 일제를 물리쳐 내었듯이, 이 시대의 우리들도 백포 서일 총재의 단군 정신으로 하나로 뭉쳐, 새 시대의 민족 미래를 제시하고, 새로운 민족의 역사, 민족생명체를 일구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가 백포 서일 총재님의 정신으로 하나로 뭉칠 때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하면서, 백포 서일 총재를 추모하고자 합니다.


임형진 민체연구소장(고려대 겸임교수)의 ‘백포 서일의 독립정신과 자유시 참변’에 관한 글을 소개합니다.


백포 서일은 누구인가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행복은 100여 년전 일제하에서 희생되신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노고와 헌신 덕분이다. 그분들의 목숨을 내건 항일투쟁이야 말로 민족의 생존은 물론 유지 보존의 절대적 공헌이었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렇기에 그들의 후손이고자 하는 우리는 그분의 높고 고귀한 희생(犧牲)을 단 한시라도 잊을 수 없으며 힘닿는 데까지 그들의 업적을 선양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데 게으름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후손들의 아무리 지극한 칭송이라도 하더라도 결코 선열들의 고귀함에는 미칠 수가 없다. 그만큼 그들의 희생은 천하를 다 담을 수 있을 만큼 크고, 바다 심연의 깊이보다도 깊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들의 업적을 잊거나 선양하기를 방기(放棄)한다면 다시 또 국난이 처해졌을 때 그 이상의 희생이 민족에게 요구될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는 너무나 많은 선열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얼굴도 이름마저도 찾아내지 못했고 있다. 일제하의 지난한 항일투쟁에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희생된 선열들이 정확이 몇 명이나 되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에 우리의 죄는 아무리 용서를 구해도 찾아지지 못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백포 서일 장군에 대한 기억이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한다. 그는 나라 잃은 암울(暗鬱)한 조국을 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주장하고 또 가장 앞장서서 실천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나라를 되찾을 방법이 무력투쟁임을 알지만 그 선결과제는 무엇보다도 민족정신으로 각성된 국민들의 주체성 회복이었다. 그가 대종교에 입도하고 또 대종교의 민족정신을 통한 국민들의 자각과 민족 정체성 회복운동을 행한 이유는 그것이 항일무장투쟁을 위한 전제였기 때문이다. 깨어 있고 자각한 민족만이 국난을 극복하고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늘 국민계몽을 위한 민족주의 교육을 중요시 여겼다. 민족교육을 통해 각성된 제자들을 중심으로 그는 조직을 만들었고 그 조직이 항일무장투쟁의 선봉대들이었으며, 그들이 청산리 항일대첩의 주역들이었다.


백포 서일은 일제 하 41년이라는 짧은 생애동안 종교활동과 민족교육 사업 그리고 항일무장투쟁 단체의 조직과 무력항쟁의 진행 등 실로 엄청난 업적을 쌓은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연구는 여느 독립운동 지도자에 비하면 의외일 정도로 일천하고 빈약하기 짝이 없다. 그의 성품 자체가 항일운동이라는 본연의 일 자체보다 이름을 우선 거들먹거리며 앞장서는 세속적 인물들과는 워낙 다르기 때문에 두드러지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약화된 대종교의 교세를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서일에 대한 연구는 항일무장투쟁분야에서 칭송되는 북로군정서의 청산리 대첩에서 조금 언급되는 정도이지만 이도 김좌진 장군이나 이범석 장군 등에 가려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하물며 대중적 차원의 인지도(認知度) 역시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술한 청산리 대첩은 물론 1910년대와 20년대 초반 빛나는 항일투쟁의 성과에는 반드시 백포 서일의 존재가 드러난다. 그는 결코 매명에 힘쓰는 사람이 아니었고 스스로 무슨 무슨 단체의 장이 되기를 원했던 사람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추대에 의해 늘 최고 지도자로 전면에 등장한다. 봉오동, 청산리의 승리를 앉고 집결한 독립군 부대가 일사불란(一絲不亂)한 조직체계를 완성하기 하기 위해 만든 대한독립군단의 총재도 서일이었다. 그의 나이 불과 40살 이었음에도 그는 홍범도, 김좌진, 최진동 같은 쟁쟁한 지도자들에 의해 영수로 추대될 정도의 인물인 것이다.


당시 만주지역 최대 종단이었던 대종교의 2대 교주 김교헌은 그에게 교통을 전수해 주고자 했지만 그는 이마저도 거절했다. 우선은 항일투쟁이 시급하다며 사양했고 향후 5년 정도 지난 다음에 받겠다고 했다. 백포 서일은 모든 명예나 권한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 타인의 공으로 돌렸다. 바로 이러한 인품이 오늘 서일을 낯선 인물로 만들었다면 이는 후손들의 절대적인 잘못이다. 아무리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서운해 하지 말라고 했지만 후배들은 그런 선배를 더욱 높이고 경모(敬慕)해야 한다. 오늘 이 기회가 그런 우리들의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더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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