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성당에 가다

에카테린부르그는 러시아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2세와 가족들이 비극적 최후를 마친 곳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사회주의혁명 이후, 니콜라이2세는 가족과 함께 유폐(幽閉)되어 거주중이던 한 주택에서 1918년 7월 여름밤에 재판도 거치지 않고 갑작스레 처형당하게 된다.
당시 소련 당국은 니콜라이2세 가족의 처형 사실을 비밀에 부치거나 혹은 거짓 정보를 흘리는 등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막으려 무척 애썼다.
소련이 무너진 후 황제가족 처형의 진실이 알려졌고 시신들이 묻힌 장소도 발견되었다. 이후 여러 우여곡절 끝에 니콜라이2세는 소련의 정치적 피해자로 인정되어 복권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러시아정교회에서는 그를 성인으로 시성(諡聖)했다.
지금은 황제가족이 처형되었던 장소에 ‘피의 성당’이라고 이름 붙여진 성당이 세워져 역사적 비극을 기념하며 황제가족의 영혼을 위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성당은 매우 큰 규모였다. 성당 내부는 여느 러시아 성당들처럼 그리스도교 성인들과 성서적 사건들을 담은 벽화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성당 깊은 안쪽엔 니콜라이 2세 가족의 죽음을 상징하는 관이 어둠 속에 안치(安置)되어 있었다. 방문했을 당시에 관 앞에선 몇몇 사람이 묵상하며 참배하고 있었다. 성당 한쪽엔 황제가족을 기념하는 박물관도 있었다. 박물관엔 니콜라이2세와 가족들의 평화로웠던 일상생활이 담긴 유물들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성당을 둘러 보면서 나는 예전 읽었던 책에서 "소련 사회주의는 시작할 때 죄 없는 (황제의) 아이들을 살해했던 것에서부터 이미 그 운명이 정해져 있었다" 라고 썼던 어떤 러시아 역사학자의 말씀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원일의 모스크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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