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에게,
오늘 뉴욕문화원에서 열린 ‘평화봉사단-PEACE CORP 과 KOICA’ 사진 전시회에 다녀왔지. 행사를 진행하던 사회자가 이런 말을 했어.
“어느 평화봉사단원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1960년대 당시에 한국은 너무나 슬프도록 가난해서 차마 사진에 담지 못했어요. 내가 찍은 사진들은 이 비극 속에서 ‘희망’ 을 상징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가난...가난의 비극...배고픔.. 우리 부모님들은 ‘보릿고개’를 겪지 못한 사람은 가난의 비극을 알지 못한다고 하시지. 한국전쟁 후 ‘가난의 비극’ 은 한국인 모두에게 주어진 운명같았지. 차마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혹독(酷毒)한 가난을 우리 민족이 경험한거야.
진저리치는 가난의 비극은 바로 전쟁과 분단, 욕심과 공포로부터 시작되었지...그리고 아주 긴 세월을 끈질기게 따라붙었어.
그런데 지난 여름 20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는데 잘 사는 사람들은 정말 너무나 잘 살더라. 여기 뉴욕의 부자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정말 한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잘 사는 사람은 너무나 편하게 잘 살고...잘 사는 사람끼리 어울리는 것을 볼 수 있었어.
평화봉사단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손길과 봉사로 가난의 운명을 변화시키려고 머나먼 한국땅으로 간거야. 그렇게 도움 받던 한국이 이제는 KOICA(UNESCO 부속)라는 또다른 평화 봉사단을 통해 받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돌려주는 심정으로 제3세계를 돕기 시작한게 20년이 지났다고 하지.
평화의 아름다운 ‘행동’ 을 보여준 평화봉사단 자원봉사자들에게(PEACE CORP. VOLUNTEERS)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어. 그리고 가난의 비극대신 희망을 사진에 담은 평화봉사단원들에게도 깊은 경의를 표하고 싶어. 넌 이 전시회에 가서 또 놀란 것이 있지... 한국인의 ‘끈’ 그리고 이 세계가 그렇게 크지가 않다는 사실...어떻게 이렇게 끈으로 우리는 다 묶여 있을까.
그날 사회자가 어느 ‘KOICA 봉사자’ 에게서 온 편지를 읽었지? 네가 사는 뉴저지 동네에서 이 편지가 왔다고 해서 조금은 귀가 반짝 했지만, 그냥 무심코 들었어. 행사가 끝날 무렵 열심히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데 잘 아는 부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더구나. 너무 반가와서 “안녕하세요? 어떻게 여기까지.. 그리고...식사좀 하세요...” 마치 네가 문화원 주인인양 행세를 하면서 이 부부를 접대했지? 그분들은 심재경 심규창 부부였어.
그리고 뜻밖의 사실을 알았지. 이 부부가 1990년도에 첫 ‘KOICA’ 봉사단으로 Nepal 에 가서 봉사한 한국의 분들이라는 것을. 믿어지지가 않았어. 어떻게 이렇게 내 주위에 훌륭한 분들이 있었을까? 우리 한국 정부(총영사관/문화원/ Friends of Korea)는 좀 미리 KOICA member 들을 찾아내지.
심 재경님 말로는 뉴욕 뉴저지에만 10분이 넘는 KOICA 봉사단 멤버들이 살고 있다고 해. 이번 행사는 이 분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한데 정작 주인없는...외국 사람들만 또 주인공이 되었을까? 안타까움을 느꼈어. PEACE CORP 과 KOICA 를 함께 떠받들려 했다면 좀 열심히 KOICA 봉사단들도 미국에서 찾지...왜 그렇게 등잔불 밑이 어두운지 말이야.
심 재경 씨 부부 말로는 .아무도 KOICA 와 PEACE CORP 행사에 관해 알려주질 않았다고 해. 우연히 신문기사를 읽고 심재경 씨가 문화원에 전화를 했는데….
심재경: 안녕하세요? 신문기사 보고 전화하는데...화요일에 있을 평화봉사단과 KOICA 사진 전시회에 관해 알고 싶은데...언제...그리고 누구와 연락을 해야 하나요?
문화원 직원: 저희는 장소만 빌려 주기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그리고 이 행사는 초대 받은 사람만 올 수 있습니다.
심재경: 저는 1990년도에 KOICA 멤버로 Nepal 에 가서 봉사 한 사람인데...이 행사에 꼭 참석하고 싶은데...혹시 담당자와 연락 할 수 있게 할 수 있나요?
문화원 직원: 여기 행사가 너무 많이 있어서...일일이 담당자를 알 수가 없거든요? 지금은 그 담당자가 누구인지 모르니..다시 전화하세요.
이렇게 전화통화가 시작되어...결국은 남편인 심규창씨가 이 행사 사회를 본 Mr. Ali의 이메일 주소를 어렵게 알아내 편지를 띄웠다고 해. 그래서 부랴부랴 거의 행사가 끝날 무렵에 문화원에 올 수 있었어.
은주 너는 ‘connect the dots’ 놀이를 삶을 통해 실천하고 있지? 될 수 있으면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려고 ‘미련하게’ 애 쓰고 있는건 아닌지. 심규창-심재경 부부와 Bruce Ballard 선생님을 연결 시켜 주었잖아.
Bruce Ballard 선생님은 1975년도에 한국에서 평화봉사단 멤버로 일을 했고...지금은 Bronx 의 어느 초등학교(Charter School)에서 한국어를 흑인학생들에게 가르치고...또 Teacher Developer 로 열심히 살고 있는 분이지.
이 Bruce Ballard 교사가 너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재미있는 일이야. 3년전 한국어를 정규과목으로 가르치길 원하는 학교를 대상으로 LA에 있는 한국어진흥재단과 은주 네가 20년간 몸 담고 있었던 한인교사회(KATANY) 그리고 회장을 4년동안 맡았던 이 기관과 함께 한국어 개설 설명회를 열었잖아. 이 공문을 읽고 Bruce Ballard 선생님이 너에게 편지(e-mail)를 썼지. 그후 수십통의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너는 Bruce Ballard 선생님을 외국인으로는 사상 처음 교사회 회원으로 등록했었지.
Bruce Ballard 선생님은 평화봉사단의 경험으로 인해 한국을 사랑하게 되었고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널리 널리 알리는 한국어 대사가 된거야. 이 분은 말로만 “한국어를 세계화하자!” 고 외치는게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주는 분이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뉴욕 Bronx 에 있는 학교에서 가야금 치면서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브루스 발라드 선생님.
이 분에겐 특별한 친구가 있지. 평화봉사단 시절 동기이기도 한 스티븐스 전 주한대사말이야. 스티븐스 대사를 찾아 자신이 한때 살았고 봉사했던 한국을 다시 밟았어. 정말 이 분이말로 진실된 ‘Friends of Korea’가 아닐까.
미국에 사는 한인으로서 Bruce Ballard 선생님을 생각하면 정말 자랑스럽지 않니? 사랑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 정말 멋있지 않니? 교사회에서 맺은 인연으로 Bruce Ballard 선생님은 네가 설립한 ‘뉴욕한미교육회-TLC-CARE’ MEMBER 가 되었지. 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학생들, 소수 민족, ‘사랑과 평화의 손길이’ 필요한 내 이웃을 위해 만들어진 ‘교육회’ 에 합류해 일을 하고 있어. 심규창-심재경 부부도 우리 ‘교육회’ 에 초청해 그들의 삶을 평화와 사랑으로 실천하는 ‘교육회-TLC-CARE’ 가 되길 기대하고 있지.
뉴욕한미교육회 (TLC-CARE)는 누구든지 가르칠 수 있고 누구든지 배울 수 있고 ‘나와 남이 다른 것’을 인정하는, 아주 포용력이 넓은 Mission Statement 로 나날이 성장하고 있지.
그리고 사랑과 희망의 실천(實踐)으로 ‘가난의 비극’도 넘어 설 에너지를 찾고 네 자신을 더 발전 시켜야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 인해 희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너는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안겨주는지, 혹은 절망을 안겨 주는지 깊게 생각을 해야겠다.
인생은 참 아름답게 살 수 있는데...인생은 참 긍정적으로 희망만 불어 넣으면서 살 수 있는데...순간순간 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네 주위를 살펴보면서 어떻게 ‘끈’ 을 연결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하고 또 실천해야 하는 것 아닐까?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나는 반성한다. 오늘을 평화롭게 살았는지, 오늘은 무슨 ‘끈’ 이 되었는지, 그리고 내일은 나로 인해 평화가 전달될 것인지, 그리고 내 학생들에게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 주는 절대적인 스승이 될 것인지, 그렇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준비와 사랑이 듬뿍 담긴 수업을 할 수 있는지, 뿌리로부터 하늘 높이 어떻게 가지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지, 내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오늘도 땅에 떨어진 낙엽을 보고 깊은 상념(想念)에 빠져 본다.
은주가....은주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