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평 할아버지가 지난 12월 2일 퇴원하셨습니다.
2개월만에 퇴원하셔서는 저에게 웃음을 선물합니다.
할아버지의 눈물 젖은 인생대로라면 웃음은 커녕
신세타령을 하고 원망할 만한데도 그저 웃습니다.
유씨 할아버지는 지난 10월 8일 방화로 발생한
무료급식소 화재 당시에 화마(火魔)를 피하려다 추락하면서
골반 뼈와 팔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날 화재로 할아버지뿐 아니라 10여명이 병원에 실려가
다들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중상자인 유씨 할아버지 혼자
그 다음 날, 기브스를 한 채로 와서 인사하시는 것입니다.
병원 치료를 받지 않고 왜 오셨느냐? 여쭈었더니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이 우리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치료까지 해주시느라
돈이 없어서 늘 쩔쩔매는 것을 보고 병원비가 많이 나오면
목사님이 부담될까봐 걱정이 돼서 그냥 나왔습니다.
더구나 급식소에 불을 지른 사람이 쉼터에서 지내던
중국동포라는데 제가 무슨 염치(廉恥)로 병원에 있겠습니까?"
유씨 할아버지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이
황당하기도 하고 가슴 찡하기도 했습니다.
능력 없는 제가 쉼터와 급식소, 병원을 운영하느라
빚에 쪼들려 한숨짓는다는 것을 알고 염려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병원비가 많이 나올까봐 의사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무작정 병원을 나와 다리를 절뚝이며 임시 피난처로 찾아와서
태평스럽게 웃음 짓는 할아버지를 병원에 다시 입원시켰습니다.
“할아버지 식사 잘하고 계세요?”
“목사님, 그냥 안 먹고 있습니다.”
“아니, 왜 그러세요. 어디 불편하세요?”
“제 대소변을 받아내려면 간병인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가족도 없고 해서 밥을 거의 안 먹고 있습니다.“
화재 수습 때문에 경황이 없어서
병원에 입원시켜 드린 지 닷새 만에
문병을 갔더니 할아버지가 침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듣는데 슬픔과 부끄러움이 가슴을 쳤습니다.
내 아버지였다면 과연 이리 했을까? 하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에게 사과를 드린 다음에 병원에 간병인을 부탁했습니다.
능력도 사랑도 부족한 제가 여러 가지 일을 한다고 이리저리 뛰는 동안
저의 사랑과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이렇게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외부 일을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왔더니 할아버지가
반바지에 얇은 옷만 입고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웬일이냐고 여쭈었더니 옷가방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니 양말도 신지 않았고 신발은 슬리퍼입니다.
할아버지가 입원해 계시는 동안 옷과 신발 등이 없어진 것입니다.
쉼터라는 곳이 이런저런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다 보니 소지품이
없어지는 소동이 종종 벌어지곤 합니다. 그러다 싸움도 벌어집니다.
할아버지의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고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다급한 대로 보관했던 저의 내복과 옷가지 등을 챙겨서 입혀드렸더니
목사님 옷을 입어서 너무 행복하다며 함박웃음을 터트리는 것입니다.
이주민을 돕는 사역을 30년가량 하면서 깨달은 것은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자기밖에 모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준다고 주어도 고마워하는 마음보다 왜 더 주지 않는 거야!
욕심과 불만을 터트리기 일쑤이고, 보따리 내 놓으란 일도 흔합니다.
심지어 자기들을 이용해 잇속을 챙긴다는 말까지 지어내 유포합니다.
이러한 배은망덕한 행위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혈기 그대로의 저라면 이주민 사역을 진즉에 때려치우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방화와 자살사건 등 각종 사건사고와 거듭된 운영난에 지쳐
포기하고 절망하는 저를 위로해주시려고 유씨 할아버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작은 배려가 지친 저에게는 큰 용기가 되어 힘을 내게 하십니다.
유태평 할아버지는 어떤 목사님의 소개로
지난 5월 초순에 이주민 쉼터에 오셨습니다.
일흔 다섯, 그 인생 내력을 들어보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할아버지는 1939년 왕십리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살았지만
한국 사람이 아닙니다. 화교 출신인 아버지는 떠돌이로 살다
행려병자로 세상을 떠났고, 자신 또한 늦게 결혼해 아들을 두었지만
아내는 곁을 떠났고, 올해 마흔 한 살인 아들은 소식조차 끊겼습니다.
남의 신세를 지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할아버지는 심장병 때문에 막일도,
폐지를 줍는 일도 할 수 없게 되자 자살을 시도하려고 했답니다.
한국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생계비나 의료비 도움을 받을 수 없어서
세상을 등지려고 했던 할아버지를 하나님이 저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세상에 의지할 데가 없어서 저를 찾아오신 할아버지께 소망을 여쭈었더니
목사님 곁에서 살다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울먹이십니다.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의 하나님 아버지!
몸은 병들고, 돈은 떨어지고, 가족조차 없어서
이 세상을 끝내려는 벼랑 끝 사람들을 잘 돌보겠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죽는 날까지 그들과 함께하겠습니다.
유씨 할아버지를 아버지처럼 지극정성으로 모시지는 못하겠지만
가난한 급식소 밥을 함께 먹으면서 병든 몸을 살펴드리겠습니다.
병들고 지친 할아버지가 떠나시면 육친을 대신해 장례를 치르겠습니다.
아버지께 다만, 간구 드리는 것은 유태평 할아버지를 비롯한 이주민들이
나그네로 떠돌다 하늘나라에 가면 그 나라에서는 안식을 허락해 주옵소서!
* 다문화 희망의 종을 울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