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삶을 달걀을 한 바구니 앞에 두고 누가 빨리 먹나 시합을 한 적이 있었다. ‘야야~ 천천히 들 먹어라. 체할라. 절대 먹는거 가지고 빨리 먹기 내기나 시합하는 거 아니다. 그것만큼 미련하고도 미련한 짓이 없다’ 라고 할머니께서 말씀 하셨다.
그래, 빨리 많이 먹는 것은 당연히 소화도 안되고 먹는 모양새가 흉하여 보기에도 미련한 짓 임을 잘 알고 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미국 에서는 그런 미련한 짓을 ‘빨리 먹기 대회’라는 이름으로 여기 저기에서 심심치 않게 열리고 있다. 그냥 동네에서 하는 수준이 아니라 신기록을 매번 갱신할 정도로 국제적으로 이름난 대회들도 적지 않다.
그 먹기 대회 라는 것은 대부분 정해진 시간 (대략 10분) 동안 얼마나 많이 그리고, 빨리 먹느냐 인데 등장하는 음식들을 보면 대부분 숫자를 쉽게 셀 수 있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삶은 달걀, 피자, 햄버거, 아이스크림, 감자 튀김, 닭다리 튀김, 호박 파이, 새우, 팬 케익, 남미 음식인 토말리 와 브리또 등등이 있다.
심지어는 맨 입으로는 한 개 조차도 먹기 힘든 할라페뇨 라는 매운 고추까지 온갖 종류의 먹을 거리를 가지고 ‘빨리 많이 먹기’ 대회를 한다. 개중엔 우리의 상상을 불허할 정도의 엽기적인 것들도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짜장면 빨리 먹기 대회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 '먹는것 가지고 장난 치는게 아니다' '배부르게 먹되 넘치도록 먹지는 말아야 한다' '밥 한 숟갈 더 먹고 싶을때 숟가락을 놓아라' '과식 만큼 미련한 짓이 없다'..할머니의 말씀이 '국제 핫도그 먹기 대회'를 보면서 자꾸만 되뇌어진다. 제목:Full Figure.s 종이에 닭 털 펜 그리고 물감 2008.
뉴욕에서는 매년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 브루클린의 코니 아일랜드에서 한 소시지 회사가 주관하는 핫도그 대회가 있다. 독립기념일 날이 마치 핫도그 먹는 날 처럼 인지된 데에는 대표적인 미국 음식으로 핫도그가 상징이 된 이유도 있지만 100 여 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 대회와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핫도그 먹기 대회의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보니 예전엔 1 분에 1개 씩만 먹어도 챔피언 대열에 올랐지만 이제는 얼추 10초 상관으로 1 개씩을 그것도 10분 동안 내리 입 안으로 밀어 넣어 줘야만 이기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먹는 숫자가 달라진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것이다. 현대인의 먹는 속도가 빨라진 탓인지 아님 옛날 사람들이 천천히 먹어서 인지는 모르겠다. 오래 전에는 아마도 핫도그를 몇 개쯤 먹어야 배부를까 재는 것은 먹는 재미를 추구한 것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세월과 더불어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 대한 태도나 예우가 달라진 것 탓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에 보이는 달라진 풍속도 뒤에는 먹는 것에 대한 경기라기 보담 승부나 기록에 대한 집착과 상금의 유혹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어찌되었든 핫도그 먹기 시합은 크지 않은 체격의 일본인이 6년을 내리 1등을 하면서 더욱유명세를 탔다. 그러다가 지난 3년 전부터는 조이 체스넛(Joey Chestnut)이라는 캘리포니아의 산호세의 26세 청년이 1등 자리를 고수 하고 있다.
미국에 살면서 뉴욕에서 열리는 먹기 대회를 참관한 적이 여러 번 있는데 참가 선수들이 등장 할 때 마다 이름, 나이, 체중, 키, 출신지역, 별명과 더불어 어떤 것을 먹어서 유명한 선수인지, 무엇을 가장 빨리 많이 먹는지 등 기록과 화려한 수상 이력이 소개 된다. 마치, 대회의 경기내용 만이 다를 뿐 권투나 레슬링 선수 소개하는 자리와 별 반 다를 게 없다.
‘시작!’ 이라는 신호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허겁지겁 10분 동안 먹는데 이것을 먹는다거나 삼킨다는 표현대신 밀어 넣고, 구겨 넣는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목 넘김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서 소시지를 싼 빵을 먼저 소다나, 물, 커피, 주스 등에 듬뿍 적셔 가면서 구겨서 미친 듯이 마구 입으로 미어지도록 쑤셔 넣는 과정은 하는 이나 보는 이나 가히 고난의 형국이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면서 입으로 겨우 들어간 음식이 반은 도로 기어 나와 흥건하게 얼굴을 덮어 보기에도 여간 고역스러울 뿐만 아니라 고통스럽게 보이기때문이다.
그 뿐인가? 몸을 비틀어대고 위장에 잘 들어가도록 펄쩍펄쩍 뛰기까지 하니 점입가경이 따로 없다. 경기가 끝난 직후 몇 몇은 급히 입을 틀어막고 어디론가 정신 없이 찾아 들어가는 모양도 보인다. 먹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 그 속이 어떻겠는가.
올 해도 변함없이 20 여 명의 선수가 수백의 군중이 소리를 질러대는 소란한 상황에서 그것도 30도가 넘는 후덥지근하면서도 뜨거운 날씨 속에서 치러졌다. 한 낮의 태양에 얼굴이 벌개진 채 땀으로 목욕을 하면서 빨리 잘 넘어가라고 온 몸을 비틀고 펄쩍펄쩍 뛰면서 안간힘을 쓰는 그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면서 밥을 미리 먹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조이 체스넛이 챔피언이 되었지만 68개 이상을 먹어 신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라고 호언장담은 물 건너 갔으며 오히려 평소보다 부진한 기록인 54개에 미쳤다.
이렇듯 뜨거운 날씨 속에서 경쟁을 하는데다 비슷한 기량을 가진 선수랑 같이 나란히 경쟁 하지 않고서는 어떤 신기록도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해 선수가 아닌 일반 관람객으로 코니 아일랜드를 찾은 예전의 챔피언 고바야시는 이번 경기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자못 궁금했다.
이번 대회엔 아시안계 여성 2명도 참가해서 주목을 받았는데 그 중의 하나인 쏘냐 토마스 (Sonya Tomas)는 한국계 여성이다. 이미 각종 먹기 대회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그녀는 105파운드의 왜소한 체구임에도 먹성의 속도가 대단해서 더 블랙 위도우(The black widow) 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교미가 끝난 후 수컷을 잡아 먹어 버린다는 위험한 검은 거미를 상징하는데 애칭으로 삼기엔 불명예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기에도 모자란 시대를 살았던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또, 아직도 기아와 가난으로 어느 곳에서는 헐벗고 허덕이는 현실을 떠올리면 음식을 가지고 경외감 없이 재미있자고 보는 이들 즐겁자고 그런 내기나 경기를 하는 게 얼마나 미련스런 짓인가. 한편으로 물자와 식량이 넘치고 남는 이 미국이란 곳에서 ‘빨리 많이 먹기 대회’ 는 보는 이에 따라서는 흥미로움과 재미를 증폭하는 별난 대회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대중의 관심과 재미를 이끌어내고 궁극적으로는 상업적인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리기 위해서 식 음료 회사를 중심으로 시작한 이 대회들이 이제는 일종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이 체스넛 조차도 기피하는 대회를 꼽으라면 마요네즈 먹기 대회라는데도 만약, 상금이 많다면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하니 대회와 돈이 절대로 무관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참고로, 지난 해 그가 빨리 먹기 대회의 우승 상금으로 벌어드린 돈은 자그마치 20만 달러를 넘는다고 한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는 미국의 7월 4일은 일년 중 에서 핫도그가 제일 많이 팔려 나가는 날 이라고 한다. 독립기념일 상징이 되어버린 듯한 핫도그를 제일 많이 먹는다는 이 날 음식 다루기를 참 소중하게 하셨던 할머니께서 시합을 보셨다면 ‘에이, 이런 몹쓸 경우가 있나. 귀한 음식들을 가지고 저런 장난질을 하다니….쯧쯧쯧!’ 이라며 혀를 차실 게 분명하다.
시대가 변하고, 지역이 다르고, 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음식이란 모름지기 입에 들어오기까지의 많은 이들의 수고로움에 감사한 마음으로, 천천히 꼭 꼭 씹어서 맛있게 먹을 일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남 보기에도 역겹지 않게 예쁘게 먹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