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주일에 한번씩 나가서 자원봉사를 하는 곳에 하얀 고무신을 신고 오는 분이 있다. 별로 말수가 없고 개인적인 친분을 쌓을 기회는 없었지만 같은 한국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반가워서 그런지 얼굴 보는 계기가 생기면 뭔가를 챙겨와서 살짝 건네주곤 했다.
어느날은 간장에 삭힌 고추를, 또 어느땐 한국에서조차 보기 드문 정갈한 모양의 연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고 한 달 전에는 간장에 넣어 먹으면 봄내음이 물씬 날거라며 야산에서 캐온 달래 한주먹을 쥐어 주었다.
미국에 살면서 ‘산달래’ 라는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던 나는 어느 동네에서 났는지 무척 궁금했다. 그래서 물으니 뉴욕시로부터 150 마일 정도 북서쪽 떨어진 캐츠킬 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캐츠킬 산(Catskill Mt)의 해발 800 피트(feet) 중턱에서 자란 산나물이라는 것을 듣자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혹, 정기적으로 등산을 하기 위함에 가시는지? 아니면 약초나 나물 캐는 취미가 있거나 직업적인 것과 어떤 관련이 있으신지? 물으니 그런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반야를 만나러 가요.” 거길 다녀오는 이유는 두가지인데 불자(佛子)로서 절을 찾아 참선을 하는 즐거움과 더불어 절에 자신이 데려다 놓은 ‘반야’라는 개를 돌봐야 하는 의무감 같은 현실적인 이유가 있어서 16년 째 매달 두번 이상 날을 정해서 다녀오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로 16살 된 녀석이 하루가 다르게 노쇠해가는 것을 보면서 절에서 섭취하기 힘든 단백질 즉, 고기를 먹여서 조금이라도 영양상의 균형을 맞춰주기 위해서도 그렇고 심각하게 아픈곳은 없는지등등 살피기 위한 책임감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고보니 견공 이름에 ‘반야’ 라고 붙인 경우 이번이 두 번째다. 두 해 전 남도땅의 깊은 시골로 귀농한 지인의 집을 방문했을때 반기던 강아지 이름이 반야였다. ‘불자’로서 신심이 깊던 지인이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법과 환생법에 따라 다음 생에는 이생에서처럼 개로 태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을 담아서 짓다보니 ‘반야’라는 함축적인 이름이 나오게 되었다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었다.
산스크리스트어인 ‘파냐(paññā)’가 어원인 '반야'가 우리말로는 ‘지혜’라니 견공에겐 얼마나 우아하고 뜻깊은 이름인지!
첫번째 어린 '반야'는 내가 만났을때가 겨우 젖을 뗀지 얼마 안되는 때로 이쁜짓을 한창 하던 사람만 보면 분홍빛 혀를 내밀려 폴짝 폴짝 뛰어대던 엄청나게 귀여운 짓을 하던 강아지로 뉴욕에 돌아와서도 계속 눈에서 삼삼하여 쉬이 잊혀지지 않았다.
▲ 두 해전 처음 본 나를 반기며 펄쩍 뛰어오르던 이 귀엽기 그지없는 강아지의 이름도 '반야' 였다.
나중에는 어찌나 보고 싶어지던지 확대한 사진을 현관에 붙여두게 되었고 들며나며 보게되니 어린 강아지 '반야'의 주소지는 멀리 한국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아주 친근한 ‘추억속의 애견’으로 깊숙히 각인되어 있다.
뉴욕에도 ‘반야’라는 이름의 견공이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단박에 만나러 가고 싶어질 정도로 관심이 생겼다. 단지 ‘반야’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부쩍 호기심이 높아진 어느 날 그 분을 쫒아 반야가 살고 있다는 캐츠킬 산의 백림사(白林寺) 라는 절에 가게 되었다. 버스로 대략 2시간 반 정도가 소요되는 꽤 먼거리였지만 강아지 반야를 떠올리며 비슷한 뉴욕의 반야를 만날 생각에 아이처럼 가는 길 내내 자못 들떠 있었다.
▲ 절 집의 반야의 이미지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누군가를 조용하게 기다리는 모습이다.
“반야야, 엄마 왔다. 반야 어딨니?”
마치 집에서 엄마가 아이를 이름을 부르듯이 불러대니 멀찌감치부터 반겨 달려드는 녀석은 내가 한국에서 만났던 그 반야가 아니었다. 진돗개의 혈통을 부분적으로 받은 반야는 개 평균수명을 훨씬 웃도는 16살이라고 했다. 사람으로 비교하자면 대략 백살이 넘은 나이에 해당이 된다고 했다.
▲ 두 달된 반야를 절에 데리고 와서 16년 동안 돌보고 있는 이는 '반야 엄마'이다. 털을 빗겨주는 것을 마냥 즐기고 있는것을 보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사랑을 먹고 사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16살박이 반야는 일반 가정집에서 크는 녀석들과 비교해서 볼 때 건강이 그리 나쁜편은 아닌듯 해 보였다. 하지만 여러 기능들이 크게 쇠퇴했다고 한다. 특히나, 소리를 잘 못 듣고 잘 못 보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동작도 예전과 비교해서 엄청나게 굼뗘졌다고 했지만 뭐랄까, 어떤 위엄마저도 유감없이 느껴졌다.
절에서 사는 개들은 보통 가정집에서 사는 경우와 사뭇 다른 것 같다. 웬만해서는 크게 짓지를 않았으며 동작이 신중하고 함부로 달려들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있는듯 없는듯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 마치 어떤것에도 집착을 하지 않는 수행자의 모습을 닮은듯 보였다.
▲ 목탁소리는 곧 중생을 제도하는 소리라고 했던가. 반야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이 소리를 들으면서 절에서만 16년을 보냈다.
대부분 줄을 매지 않고 풀어놓고 키우고 있었음에도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 없으며 절에 오는 숱한 사람을 대하는 모습에서 마치 개의 경지를 넘어선 느낌으로 올 때도 많았다. 사람도 지긋이 분별해서 보는 그런 시선 같은 것을 느낄때면 ‘개라고 다 같은 개가 아님’을 실감했다.
재미난 것은 절에서 사는 견공(犬公)들은 하나같이 독특한 이름들을 가지고 있었다. 길고 유유히 흐른다는 뜻의 마곡사의 ‘장강이’, 성냄이 없다는 경남의 사찰에서 본 ‘무진이’, 강원도 깊은 암자에서 키우던 수도승들이 여러곳을 돌며 하는 수행을 하는 것을 뜻하는 ‘만행이’ 등 등 범상치 않은 이름들이 많은 것 같다.
▲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에 부처님 오신날을 기리는 연등이 걸려있다.
버스를 타고 가고 오던 길 내내 ‘반야’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마치 자식자랑을 하는 팔불출 엄마처럼……무엇보다도 두 달된 갓 젖을 뗀 반야를 그 절에 데려다 준 이후 16년이 되도록 돌보고 있지만 여느 애완견처럼 사람들에게서 듬뿍 사랑 받지 못하고 산 속에서 외롭게 살게 하는 것이 마음에 쓰인다면서 갈 때 마다 미안함에 고기를 챙겨서 먹이거나 정성들여 털을 빗겨주고 목욕을 시켜주는 일로 대신한다고 했다.
하지만, 근래들어 목욕시키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진다고 했다. 씻길 때마다 어디가 아픈지 낑낑거리고 발버둥을 쳐서 이마저도 하지 말아야 하나 고민된다고 ‘반야엄마’로서의 애로사항(隘路事項)을 털어놓았다.
10년 전 산에서 내려온 야생 곰과 1대1로 붙어 한판 승부를 벌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뒷다리에 입은 상처로 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걷는 것도 불편하고 심지어 앉는 자세마저도 달라졌다면서 이젠 살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고 안쓰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절에 머무는 내내 나는 마치 연예인을 쫒는 파파라치처럼 반야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똑딱이 카메라로 사진을 꽤나 많이 찍었다. 유난히 카메라만 보면 얼굴을 돌리는 기피현상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서 인내심을 가지고 연거푸 찍어대야 했다.
사진 정리를 하면서 다음에 반야 엄마를 만나면 목욕시키던 모습부터, 비를 맞고 어슬렁 거리던 모습, 털 빗길때의 느긋한 모습, 개를 붙잡고 마치 아이에게 이야기 하듯 하던 모습까지를 파노라마 처럼 엮어서 사진첩을 만들어 건네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엊그제 그만 반야가 차에 치이는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덜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보내줘야 할 것 같은데 차마 어떻게 해야 할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을 토로했다.
지난 방문에서 스님을 뵈었다. “어찌 왔는고?” 머리를 긁적이면서 경황없이 대답하기를 “아, 예……실은 ‘반야’를 보려고 왔습니다” 했더니 “반야를 보러? 그것도 불심이라……반야가 지혜라.”
대중들 앞에서 있었던 석탄일 법회에서 그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음이 곧, 부처라……마음과 부처가 다르지 않다는 것! 살면서 사는 이치를 깨닫는 것, 탐진치(貪嗔癡)로부터 벗어나서 지혜로워지는 것 그것이 곧 부처가 되는 길이라……불교는 곧 자각(自覺)하는 것. 바로 깨달음이라…..”
▲ 절 들어가는 입구에서 아주 인상깊은 풍경을 보았다. 왼편으로 꺾지는 쪽에는 연등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고 동시에 오른쪽으로는 가정집 앞에 가지런히 줄 맞춰 널어져 있던 빨래들......다 허물어져 가는 방앗간 모양의 건물을 배경으로 대조적이면서 마침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반야지혜(般若知慧)’ 라는 말이 있다. 찾아보니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공을 초월해서 각자가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회복하고 자신의 삶을 깨닫도록 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하는데 반야지혜를 체득함으로서 부처님과 같은 지혜와 자비를 실천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반야 그리고 지혜’ 라는 두 단어는 부처님 오신 날이 있던 오월에 받은 화두가 아닐 수 없다.
“반야야, 다음 세상에 나오거든 지혜로운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디 사랑 많이 받으렴…….”
▲ Rainy Day. 2006 엽서에 수채물감. 설명 / 엊그제 '반야'가 떠나던 날도 이렇게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09:53:15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