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식물원에 일하러 갔던 어느날 늘 그래왔듯이 숲 속 오솔길을 가로질러 바삐 가고 있는데 길목에 선 한 사람이 미동조차 없이 한 방향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 지나치려다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여 다가가 나즈막히 물었다. "뭐가 있어요?" "저기 저 높은 가지 위에 부엉이가 앉아있어요. 보이죠?" 행여 새가 날아갈까봐 들릴듯 말듯한 숨죽인 목소리였지만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세히 보니 갈색빛을 띈 몸집이 큰 조류 한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앞 모습이 아니라 하필 뒷태여서 나처럼 야생 조류에 까막눈인 사람에게는 그게 매인지, 부엉이 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운이 좋은 날이면 독수리를 포함, 여러 새들을 본적은 있지만 부엉이는 처음이라 '멀리있어서 봐도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부엉이가 맞긴 맞아요?'라고 응수하니 망원경까지 내밀면서 '찬찬히 봐요. 머리에 귀 깃 이렇게 긴 눈썹이 치켜 올라간 것이 보이는데.....' 라며 친절하게도 귀 깃 모양을 두 손가락으로 직접 연출 해 보였지만 시간을 재며 바삐 가던 길인데다가 밤도 아니고 낮에 부엉이가 출현할리가 있나 싶어 'Good Luck' 이란 인사만 남기고 총총히 자리를 떴다.
지난 주말, 현충일이 낀 연휴였던 5월 23일 토요일 신 새벽 I-95를 타고 워싱턴 디씨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어둠이 걷히고 여명이 밝아오면서 도로 양 옆으로는 신록의 계절답게 초록빛 투성이였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 추모 모임에 가는 자리여서 그랬는지 달리는 내내 6년전의 풍경들이 오버랩 되었다. 노제가 치뤄지던 서울시청 앞 광장 하늘을 수백의 만장들이 뒤덮던 풍경하며 '내 마음속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인쇄된 노란 풍선들이 사방천지에 매달려 있던 광경 그리고 '지켜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라는 리본들을 매단 시민들에게서 읽혀지던 통한(痛恨)과 회한(悔恨)의 눈빛들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모임장소에 들어서니 '노무현 대통령 서거 6주기' 라는 노란바탕에 검은색 글씨가 한 눈에 들어왔다. '노무현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글귀가 날줄과 씨줄 처럼 맞닿아 있었으며 사이사이 노란 풍선들도 보였다.
세월이 흐르고 해를 거듭할수록 그의 부재가 더욱 크고 그리워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유신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난 지금 공안정국으로 회귀한 참담한 정치상황 때문인지, '모름지기 대통령은 이래야 한다'라는 자격과 역할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뒤늦은 후회인지, 그도 아니면 다섯시간을 달리는 내내 차창 밖으로 보이던 싱그러운 풍경들이 그의 애창곡 '상록수'와 딱 맞아 떨어져서 나도 모르게 감상적으로 흐른 탓인지도 모르겠다.
올해로 3년째 접어든 추모 모임은 '사람사는 세상을 위한 미주 희망연대'의 주관으로 정기적인 전국대회를 겸해서 3일간에 걸쳐 매해 워싱턴에서 치뤄지고 있었다. 미주 각 지역에서 모인 시민들과 회원들이 한데 모여서 강의와 세미나를 겸한 간담회 그리고 추모 모임으로 이어졌는데 가깝게는 5.18 민주항쟁에서 멀리는 조선의 500년 역사를 거슬러 부정과 부패에 항거했던 한민족의 연대의 역사를 시대별로 짚어보는 시간도 가졌다.
역사는 무릇 승리한 권력자에 의해 기록되어진다고 했던가. 권력을 쟁취한 연대는 혁명으로, 실패한 연대는 반란으로 혹은 반정으로 기록되온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지금처럼 교학사 사태 및 뉴라이트 재단의 끊임없는 역사교과서 수정시도 등을 접하면서 왜 역사를 엄중하게 배우고 알아야 하는지, 후대에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왜곡으로 점철된 역사가 종내엔 무엇으로 귀결되는지 등을 자성하며 고찰해 보았다.
시작에 앞서 '연대가 힘이다(Union is Strength)'라는 1분 짜리 짧막한 동영상을 감상했다. 강의를 시작한 장호준 목사님은 이런 주문을 했다. "각기 다른 동영상이 있습니다. 이 속에는 세 분류의 공통된 역할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역할들이 무엇인지 찾아 내 보십시요."
첫번째 영상에서는 한 마리의 거대한 갈매기가 모래사장에 있는 작은 게를 발견하고 잡아먹으러 돌진하려하자 주변의 모든 동료들을 불러보아 하나의 집단으로 막아서니 공격을 시도했던 갈매기는 게를 잡아먹기는 커녕 도리어 수많은 게들의 높이 쳐든 집게발들로 해서 깃털이 사정없이 뽑혀나간다는 통쾌한 줄거리였다. 두번째와 세번째는 개미와 펭귄이 등장했는데 공통점은 거대한 포식자(捕食者)가 있다는 것, 대중을 이끄는 지도자의 역할, 하나로 뭉쳐 따라주는 민중의 역할, 이렇게 세가지로 나뉘어져 있었다.
'띠풀'. 잔디나 고구마 감자 처럼 한 떨기나 줄기로 엮어진 것을 말하는 것 즉, 잇닿을 연, 띠 대 연대(連帶)를 뜻하며 '공통의 분모로 결집'했을때 거대한 갑질 횡포를 일삼는 포식자로 부터 지켜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배웠다. 더불어 집단이나 개인의 사사로운 이기주의를 벗어나 대의(大意)와 정의(正意)를 목표로 삼을 때만이 진정한 민중의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음도 상기시키는 자리가 되었다.
그럼 지난날 연대에 실패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일제 강점기에 주입된 식민사관, 날조된 패배의식, 무력주의, 내 일이 아니라는 무관심, 교육 부재, 프랑스 처럼 혁명의 선행 효과가 없었기에 모래알 부서지듯 하나로 뭉쳐지지 못했던 것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다. 30여년 전 미주에서 청년운동을 시작했던 한 발표자는 시민들의 건강한 양심세력과의 연대야말로 부정하고 부패한 정권을 심판할 수 있으며 민주적인 정권을 창출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궁극적으로 평화를 정착하고 통일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런 뜻이 초석(礎石)이 되어 '꿈과 희망을 가지고 함께 나아가자' 라는 취지로 시민운동이 태동하게 되었음을 설명하면서 30년과는 달리 동포사회의 역량이 신장되고 역할도 달라진만큼 건강한 연대가 형성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보듬어주는 '포용력'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덕목이라고 주지시키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소통이란게 증발하고 무관심이 난무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사회지도층에서는 통합대신 지역 및 계층간의 분열을 일삼고 공익이 아닌 사익(私益)을 쫒는 이들이 넘쳐나는 탓에 나라의 격이 떨어지고 국체(國體)가 곤두박질치며 국고(國庫)가 피폐해져 가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그뿐인가. 미군이 항공 우편물로 오산기지 실험실에 보냈다는 '탄저균'은 우리를 경악케 하고 있다. 세계 도처에 있는 미군기지에서의 첫 실험으로 한국을 택했다는 것도 끔찍하거니와 사드(THADD) 문제를 포함, 대량살상을 가능케 하는 생화학무기의 미국의 한국으로의 반입은 한민족의 생명과 한반도 전체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음을 심각하게 상기해야 할 싯점에 와 있다.
벽면에 걸려져 있던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유고는 연대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했으며 그 중요성과 당위성을 간과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그렇게 남았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백승(百戰百勝) 이란 말이 있듯이 본질을 제대로 꿰뚫어보는 것에서 부터 시민의식의 연대는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추모 모임 끝에는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라는 의장의 질문에 이런 대답들이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님은 원망과 그리움 자체입니다" "백년 만에 맞은 대통령" "우리에게 할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준 사람 아닐까요"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말고 군림하지 말라는 별을 심어준 사람 " "대통령이기 앞서 순수했던 인간적인 사람이었죠" 전직 대통령 5명을 모두 만나봤다는 백발이 성성한 한 분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 하지만 매해(추모식에서) 만나는 사람 그래서 늘 가슴속에 있는 사람" 이라고 표현해서 모두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 노무현 대통령은 과연 내게는 무엇으로 남았을까 곰곰 생각해보았다. 토론시간에는 입 속으로만 맴돌았을뿐, 입 밖으로 선뜻 튀어나오지 않던 단어가 있었는데 그것은 '부엉이'였다. 그는 부엉이 중에서도 토종의 '수리부엉이'가 아니었을지..... 지난 식물원에서 만났을때 반신반의(半信半疑) 하여 믿지 않았던 부엉이의 존재를 식물원 홈페이지를 방문해보고 사진과 생태에 대한 검색을 한 뒤에서야 부엉이가 살고 있음을 밤 뿐만 아니라 낮에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느날 부엉이를 다시 보게 된다면 더군다나 이 계절에 만난다면 맹금류 이전에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듯 친근하고 반갑게 맞을것 같다.
▲ 삼국지에 ‘死孔明 走生仲達(사공명 주생중달)'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긴다고 하지 않던가. '수리 부엉이'에 대해 찾아보았다. 한국에서는 '부자새'로 서양에서는 '지혜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으며 천연기념물 324 호로 지정되어 있다. 올빼미목 올빼미과 중에서 가장 큰 맹금류로 수리부엉이는 부엉이중에서도 제일 사납고 몸집이 크며 보통 나무나 바위에 직립 자세로 앉는다.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 함께하는 텃새로 알려져 있으며 인간과 비교해서 55000 배의 청력을 가졌다고 한다. 주식으로 꿩, 멧토끼, 개구리, 뱀, 쥐, 닭, 등을 잡아먹는다고 하는데 특히 쥐를 사냥하는데 뛰어난 솜씨를 자랑하고 있어서 '날개 달린 고양이'라고도 불리운다. <사진=www.en.wikipedia.org>
끝으로, 고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 통기타를 치며 즐겨 부르곤 했던 '상록수'를 오월의 마지막 날에 다시 한번 음미해 본다.

1절.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라.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2절. 서럽고 쓰리던 지난 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치른 들판에 솔잎 되리라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3절.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 크로키 설명 Old Man's Portrait Croquis. 2009. 종이에 연필. 설명/ 서양에서 상징하는 슬기로움과 지혜로운 노인으로 종종 그려내고 있다. 이 크로키 모델을 통해서 부엉이가 상징하는 의미를 전달 해 볼 수 있을까.
kimchikimnyc@gmail.com